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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도, ‘악질사장’도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전교조 창립 30주년 기획]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③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5-02 18:01:01
수정 2019-05-02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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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5월 28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습니다. 민중의소리는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교조 30년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세번째 기사에서는 전교조 설립 당시부터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 도입에 관해 살펴봅니다.

1) 전교조 30년, 한국 교육이 변했다
2) 학교 현장이 바뀐다 ‘딥 체인지(Deep Change)’
3) 제2의 구의역 김 군·이민호 군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4) 특권과 승리가 아닌 삶과 행복을 위한 교육
5) 싸움만 한다구요? 국민과 함께 하는 전교조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 군(19)은 달려오는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졌다. 2017년 1월 23일 전주시 덕진구의 한 저수지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 모(19)양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홍 양은 2016년 9월부터 전주 소재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에서 근무했는데, 사측의 실적 압박과 고객들의 폭언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 2017년 11월 9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신분 이민호(19) 군은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한 음료 공장에서 기계를 수리하다 제품 적재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열흘 뒤인 19일 숨을 거뒀다.

2019년 1월 28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청소년 가운데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은 적이 있는 응답자가 34.9%,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16.3%에 달했다. 고객으로부터 언어 폭력과 성희롱, 폭행을 당한 경험은 8.5%였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70.9%는 이 같은 부당처우를 계속 참고 일했다고 답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김슬찬 인턴기자

일하는 청소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이어지는 것은 청소년들이 노동의 가치와 의미,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권리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로 일터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책마련하는 현실 안타까워”
“노동인권교육은 학교교육이 담당해야”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초대 사무처장과 9대 위원장을 역임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사회적 비용을 많이 치르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런 걸 예방할 수 있게 교육하고, 교육 과정에 노동 인권에 대한 내용을 반영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학교 교육이 당연히 담당했어야 하는데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학생들 대부분이 고등학교, 대학 졸업 후 노동자가 된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른다. 살벌한 노동현장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 사업을 하게 될 학생들도 타인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합법적 경영을 하려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수호 이사장 지적처럼, 학생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지만 적지 않은 숫자는 사장이 된다. 치킨집, 편의점이라도 직원을 두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하대하며 ‘갑질’을 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악질사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동인권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는 “이제 외국 사례를 드는 것도 구차하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 인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부터 체계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자”고 말했다.

없음
 

교육 받은 학생들..부당처우에 적극적 대응
현장 교사 다수 “노동인권교육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노동인권교육’을 충분히 받는다면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부당처우를 견뎌야만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실태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19~24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황여정 외 3인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연구(2014)’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부당 처우를 당했을 때 다양한 대응태도를 보였다. ‘참고 계속 일했다’는 응답이 40.9%, ‘일을 그만 뒀다’는 응답이 36.7%였다. ‘개인적으로 항의했다’는 19.8%, ‘어디에다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몰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답변은 12.7%, ‘주변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11.4%, ‘고용노동부나 경찰에 신고했다’는 답변은 6.2% 였다.

2018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함께 발간한 ‘노동인권교재 개발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는 위 실태조사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해 냈다. 학생들이 노동인권교육 경험에 따라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응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의 경우 ‘개인적 항의’, ‘주변인의 도움’, ‘노동부 경찰 신고’ 등을 하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응했다고 답한 비율이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청소년들이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으면 부당대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드러난 조사 결과다.

없음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교사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전교조는 자신들의 ‘참교육 실천 강령’에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을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는 2015년 11월 조합원 39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인권교육 실태 및 조합원 의식 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8%(매우필요하다 77%, 필요하다 21%)가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노동인권향상 해결책의 1순위로 ‘학교에서 체계적인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76%)을 꼽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교육 자료 발간
전교조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 노동교육 시작” 평가

이처럼 효용성, 필요성이 대두되자 지자체, 교육청, 단체 등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의 ‘노동인권교육 지원의 실태와 과제(2019)’보고서에 따르면, 현재(2018년 10월 기준) 전국 총 67개 기관과 단체에서 총 211개의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중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월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에 따라 올해부터 일반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발간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사진 제공 = 서울시교육청

교육청 관계자는 “2019년 일반고·특성화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활용 연수’를 실시하여 학교 현장에서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라며, ‘2019년에는 중학교용, 2020년 초등학교용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달 16일엔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동영상’을 개발하여 관내 중·고등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서울시교육청의 시도에 대해 전교조는 ‘노동인권 교육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인 노동교육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자신의 노동을 긍정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가르치는 것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인권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승욱 교수는 위의 보고서에서 “중앙정부의 총괄적이고 정책적 지원이 없는 채 각 지역 및 단체 별로 노동인권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교육의 지속성 및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교육대상과 그의 상황에 따라 주무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관할 문제, 예산 배분 문제가 발생한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총괄할 주무 부처를 정할 것, 노동인권교육 지원법을 제정할 것,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할 것, 관련 강사 인력을 관리하고 교육할 것, 교재를 만들고 강의안 등을 개발 배포 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한국 노동교육의 진단과 미래방향’이라는 보고서(2019)에서 정홍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필요성 제기에 비해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노동인권교육이 부족하다’ ,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교과목에 노동인권이 없다’, ‘상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특강형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기보다는 단순 지식 전달에 그치고 있다’, ‘교원들이 충분한 교육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 외부 강사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등의 한계점을 짚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초등~고등학교 과정의 노동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것, 관련해 교육과정을 개편할 것, 교사들이 중심이 돼 노동교육을 수행할 것 등을 제안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민중의소리

교육과정에 노동 관련 내용 담은 유럽 국가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는 ‘노동자’

해외에서는 어떻게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면 우리 학교 교육이 노동인권교육 커리큘럼을 어떻게 정립하고 실행해 나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교과 안에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담아 교육과정 전체에 반영하고 있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를 ‘노동자’로 꼽고 이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교육한다. 프랑스 역시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과목을 통해 노동문제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유, 평등, 인권 등과 함께 노동권에 대해서도 배우며, 교과서는 시위나 파업 등 노동 쟁의가 자연스러운 노동자의 권리행사임을 인식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사회’와 ‘실업’과목에서 노동인권에 대해 다룬다. 사회 과목에서는 노동의 사회정치적 측면에 대해 가르치며, 노동조합 내, 노사관계에서의 민주적 갈등해결 원칙, 공동결정 원리 등에 대해 전달한다. 실업 과목에서는 노동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배우도록 하는데, 인간과 기술·사회 간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고 장래의 직업 선택 및 노동 생활을 준비토록 교육한다. 각 과목의 교과서에는 노동관 및 직업관부터, 사회 시스템 내에서 노동의 역할, 사회 변화에 따른 노동방식의 변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노동에 관한 내용을 담는 것은 물론, 초등학교 8~9학년(한국의 중학교 2~3학년)에게 2주간에 걸쳐 ‘진로교육 및 직업체험’(PRAO)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직접 노동현장에 가서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떤 일들을 시키는 지를 직접 보게 된다. 직업체험 과정과 교육내용, 규정은 교육적 목적을 고려하여 학생, 학교, 기업 측면에서 모두 세심하게 정해져있다. 청소년들은 해당 과정을 거치며 미성년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기본 내용도 배울 수 있으며, 향후 직업을 위해 어떤 고등학교 프로그램을 선택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국가들은 학교에서 개인의 노동관에서부터 노동과 노동자의 사회적 의미, 실제 노동 현장의 분위기와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 제도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가르친다. 학생들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렇게는 안 된다. 어떻게든 가르쳐 보내자” 
노동인권교육 하러 애쓴 전교조 교사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전교조가 30여년 전 설립 당시부터 학생들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려고 애썼던 데 대해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전교조에 실업학교 선생님들 중심으로 ‘이거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지 가르쳐서 보내자. 따로 교과서라도 개발하자. 어떻게든지 교육과정 속에 넣어보자’며 애썼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은 교직에 몸담을 동안 특성화고인 선린인터넷고(구,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현장에 가는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필요했다. 더 문제가 됐던 건, 고교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이 점을 교묘히 악용해서 이익을 편취했다. 임금을 떼이는 것은 보통이고, 임금에서 일정액을 남겨놓고 ‘그만둘 때 모아서 준다’는 명목으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치료비용을 기업주가 부담하고 정부가 책임지고 치료해준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필요성이 인식되니 교사들이 ‘노동인권교육’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그는 “교육과정에 넣고 교과서 만들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당장 나가서 일해야 하고 졸업하면 현장에 가야 하니 꼭 필요한 내용이라도 단시간에 배우게 했다. ‘이런 것이라도 알고 가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그는 아직도 학교에서 제대로 노동인권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노동인권교육이 학생들이 취업했을 때나 아르바이트 할 때 사측에 어떻게 대응할 지, 불이익 당하지 않게 어떻게 노력할 지 같은 구체적 현실적 내용과 함께 노동의 가치와 의미 등 본질적 근본적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우리 사회가 노동형태나 노동의 질, 이런 것들의 변화가 심하다. 요즘은 IT산업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와서 노동의 여러 가지 형태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을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줄어들고 있다. 사회가 변했다. 지금은 플랫폼 노동이란 게 등장했고, 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나.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 문제인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자로서의 자세나 태도, 사회관계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 속에서 혹은 자본주의 문화에서, 일 안하고 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는데 굉장히 문제다. 자기에 맞는 일을 적당히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 일과 놀이, 일과 휴식, 일과 문화생활 이런 것들의 의미와 경계에 대해서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김슬찬 기자

학교에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는 노동인권교육
“법·제도 개선과 더불어 교사 자율성도 보장되어야”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인권교육이 현장에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며 “선생님들이 노동인권이란 주제를 가지고 각 교과의 특성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 미술과에서는 노동자들의 몸을 그리고, 국어과에서는 인터뷰 글쓰기 부분에서 노동자들을 인터뷰 한다. 사회과에서는 노사 교섭, 사회권으로서의 노동인권, 헌법에 노동인권은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나 등을 가르친다”고 사례를 들었다.

이어 “교과수업 뿐만 아니라 학급활동 시간이라든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영화 등 노동 관련한 자료들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며, “노동절에는 노동절 관련 역사를, 때로는 최저임금에 대해서 짧게 나마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교과목 중엔 노동인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교과영역은 아니지만 범교과영역 범주에 노동인권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답하며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의 일부 단원에서도 언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동인권교육 관련법 제정, 교과목 신설, 개별 교과서 편찬만큼이나 중요한 점이 ‘노동문제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교육 주제로 자리잡는 것’이라며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본질적인 내용을 더 충분하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노동인권교육이 잘 되게 하려면,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님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필요한 것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입시교육으로부터 자율성을 부여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최근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안전’, ‘인성’ 교육을 강조해왔지만, 하루아침에 학교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행정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다”라며, “제도를 바꾸는 것은 물론,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좀 더 멀리를 내다보며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위한 2019년 전교조의 계획
‘지역 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게 할 것’

학교 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본격화하기 위한 전교조의 노력은 2019년 더욱 활발해질 예정이다.

전교조는 올해 사업 계획을 통해 ‘참교육 실천 역량을 늘리기 위한 기본사업’으로 ▲계기수업자료 개발·탑재 ▲ 교육활동 자료 제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에는 노동인권교육을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계기수업(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신문기사, 사설, 칼럼 등의 다양한 부교재를 통해 알기 쉽게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해왔다. 올해에는 분과나 지부에서 공동으로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자료 개발과 지원에 힘쓰기로 했는데, 이 계기수업 주제들 중 하나에 ‘노동인권’이 포함되어 있다. 또 현장 교사들이 교과수업·비교과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교육자료도 제공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노동·직업’ 주제가 들어있다.

또 직업교육위원회 차원에서도 계획을 내고 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노동인권실태 파악 및 대책 활동’을 진행해, 지역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 내 노동인권교육이 포함되도록 할 예정이다. 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 제정, 정책 개발, 교육청과의 단체 협약 체결 등을 시민사회와 손잡고 추진해 갈 방침이다. 이외에도 노동인권교육이 학교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사 연구회, 학생 동아리 활동 활성화에 힘쓰기로 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노동인권교육 도입 가로막는 보수언론
전교조, 진보교육감에 대해 이념공세 펼쳐

이처럼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분명하고, 학교에 도입하려는 각계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막아서고 비난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의 전교조에 대한 공세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수호 이사장은 “노동인권교육에 대해 전교조가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써왔는데,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좀 어렵게 된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안 알려지고 어쩔 수 없이 ‘법외노조 철회’ 투쟁하면 그것만 보수언론에 나온다. 그러면 정치적 비난이 쏟아진다. ‘교사들이 애들이나 잘 가르칠 일이지, 그런 것 가지고 난리냐’는 것이다”며 답답해했다.

이어 “현장에서 구체적 교육내용으로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많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실천하는 전교조 선생님들도 많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교교육을 바로 잡고,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건 잘 안 알려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전교조의 상황”이라고 짚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민중의소리

보수언론들은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 지도자료’를 냈을때도 몰려들어 포문을 열었다.

한 보수신문은 기사에서 “상생이나 협력을 강조한 분량은 적고 노사 간 대립과 집단 행동을 강조한 분량은 많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 “기업의 긍정적 역할이나 협상의 중요성을 별도로 다룬 단원이 없다”, “불법 파업이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언급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편향된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사회과 과목인 ‘법과 정치’, ‘경제’ 등의 교과서에는 기업과 기업가의 긍정적 역할, 파업 등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내용은 오래전부터 교육과정에서 다뤄왔지만, 노동자와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다룬 바가 거의 없으니 이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이 교육 자료를 퍼낸 것이다. 지도 자료가 발간된 맥락에 대해서는 교묘히 숨기고 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보수 신문은 기사에서 더 노골적으로 “좌편향식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보수신문은 사설을 통해 “직접 노동인권 교육 자료를 만든 저의부터 의심스럽다”며 “교육 오염이 현실화하기 전에 전량 회수, 폐기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같은 보수언론들의 주장은 경영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2011년,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며, 이를 위해 교육청 안에 노동인권 교육을 담당할 민주시민교육팀을 신설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노동인권 교육은 어느 교사들이 맡게 되든지 간에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출신의 교육감이 이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이념노동운동가의 양성을 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노동인권교육은 이념적인 편향성과 결부되어 학생들에게 반기업 정서, 반시장경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사건 사이에 8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경영계의 인식과 보수언론의 인식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깊게 뿌리내리려면 이런 장애물들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 ‘전태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을..전태일 재단의 도전

서울시교육청과 전태일재단은 2018년 11월~12월 동안 공동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서울시내 노동인권 관련 현장 탐방지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중고등학생 900명(30학급)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학생들은 종로구 소재 평화시장 및 전태일다리 주변에 있는 노동인권 관련 장소를 연결한 코스를 다니며 전태일과 노동인권에 대해 배웠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에 대해 “현장체험 중심이고 단기간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최소한의 기본적 경험을 하게 했다. 학생들이 전태일을 알고 노동과 노동자의 여러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대다수 평가”라고 밝혔다.

전태일재단에서는 노동인권교육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왔다.

이 이사장은 “아이들이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한 후에 평화시장과 전태일 다리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여기에 온다. 그럼 강의를 해주고 관련 장소를 보여준다. 그렇게 오기 힘들 경우 재단에 요청을 하면 저희가 강사를 파견한다. 최근에 광주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모둠학습을 한 후에 강사를 파견해달라고 해서 사무총장님이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주고 왔다. 그 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번에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만드는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비용에 저금통을 깨 얼마라도 보태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구체적인 참여와 행동은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교육 요청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서, 이에 맞춰 다양한 교육 내용과 형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전태일기념관이 마련돼 교육 여건이 더 나아지자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 문의와 신청이 많이 온다. 거의 줄이 서 있는 형편이다. 주중과 주말까지 매일 하루 몇 팀씩 온다”

“기념관의 전시물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관련 공연을 보여주며 교육하는 등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방문한 학생들의 형편에 맞춰서 한 시간 가량 기념관 둘러보는 것에서부터 몇시간 투자해 현장에 다녀오는 것까지 만들 계획이다. ‘맞춤형 체험학습 프로그램’인 셈이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애니메이션 ‘태일이’ⓒ애니메이션 ‘태일이’ 스틸컷 이미지

향후 전태일재단과 전태일기념관은 연극, 음악, 웹툰,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전태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밖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개봉할 예정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희망의 불꽃이 된 대한민국 노동 운동사의 상징적인 인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을 그린 감동 드라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성과를 내고, 영화 ‘카트’를 통해 노동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 온 명필름이 전태일 재단, 스튜디오 루머와 공동제작한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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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 1만원 이상 후원하면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소개된다. 현재 (4월 25일 기준) 16,727명(단체 포함)의 시민들이 참여해 정성을 보탰다.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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