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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붕괴론’의 허상

‘북한붕괴론’의 허상<칼럼>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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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4 0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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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3개월이 다되고 있다. 1년 3개월은 김정은 당 제1비서가 2012년 4월 11일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북한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조선노동당의 최고수위인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이후부터 산정한 것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 내외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 몇 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치적으로는 남한의 박근혜 정부, 북한의 김정은 정권, 미국의 오바마 2기 정부, 중국의 시진핑 체제, 일본의 아베 내각, 러시아의 푸틴 정권 등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군사‧외교적으로는 북한의 로켓발사 및 제3차 핵실험으로 인해 UN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있었고 이에 대해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여 한반도에 전운이 짙게 감도는 상황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4월 11일 남한의 대북 대화제의 이후 갑자기 정반대의 대화국면이 조성되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의 ‘광명성 3호 2호기’ 로켓발사를 UN이 중대한 도발로 보고 2013년 1월 22일 대북 제재 결의 2087호를 발동한 이후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촉발된 긴장국면은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키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다행히 남한의 4월 11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대화 제의 이후 대화국면이 조성되었고 북한의 6월 6일 당국간 대화 제의로 시작된 당국간 회담 개최문제가 ‘회담대표의 격’ 문제로 무산되었지만 전반적으로 한반도 정세는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다. 북미 관계 및 핵문제는 5월 22일 최룡해 군총정치국장 방중시 6자회담 참여 의지 표명, 김계관 외무성 제1 부상의 6월 18일 방중시 6자회담 복귀 의사 피력, 북한의 6월 16일 대미 고위급 회담 제의 등에 따라 대화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이즈음에서 등장하고 있는 주장이 김정은의 리더십 부재,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 등이다. 2012년 북미간에 도출된 ‘2.29 합의’가 실행되기도 전인 4월 13일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로켓발사를 시행한 점, 남한대선과 오바마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인 12월 12일 로켓을 발사한 점,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한 점, 남한과 미국에 대한 핵공격 위협, 4월 8일 햇볕정책의 옥동자인 개성공단의 근로자 출근을 중지한 점, 군사적 공세로부터 갑자기 정책을 전환하여 6월 6일 남북당국간 대화 및 6월 16일 북미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점 등은 김정은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고 정권이 불안정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이 길게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고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정권 붕괴론’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 풍미했던 적이 있다. 김 주석 사망 직후에는 ‘사이비’ 북한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김정일 후계체제는 “3일 아니면 3년 내에” 붕괴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이러한 분석이 1994년 10월 ‘북미제네바 합의’를 가능하게 하였다. 북한이 곧 붕괴될 터이니 북한이 원하는 북미관계 개선 및 경수로 건설을 합의해 줘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고 경수로 건설 중 북한이 붕괴되면 그것은 어차피 남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북미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면서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됨으로써 북한의 대미 불신이 매우 커졌고 북한이 미국의 대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발이 되었다. 즉, 미국은 북한체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든 북한이 붕괴되기를 바란다는 인식이 북한 지도부에 박히게 된 것이다. 북미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의 정착 없이는 어떤 합의나 성명도 그 뒤에는 북한붕괴 의도가 숨어있다는 극단적 생각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북한붕괴론’이 팽배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시기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최고책임자들 모두가 ‘북한붕괴론’을 믿고 있었다. 이런 믿음은 대북 압박정책으로 나타났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북한이 붕괴되든지 무릎을 꿇고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북 강경책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북한이 중국과 더욱 밀착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북한은 부존 광물자원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는 붕괴는커녕 오히려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북한이 남한의 대북 지원에 의해 지탱되는 것으로 오산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대북 퍼주기론’이 자리 잡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기에 북한에게 ‘퍼주어서’ 붕괴될 김정일 정권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것을 끊으면 북한은 붕괴될 것이라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고 우리의 숭고한 민간인과 군인들의 희생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철학부재와 오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우리는 당시대에 목도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북한의 대중 경제 경도가 중국의 대북 압박을 유효하게 만들어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와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만 높여주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바로 이것을 가져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면 지금의 ‘김정은 정권 붕괴론’은 어떠한가? 김정은 제1비서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하지 못한데다 정책 혼선까지 빚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과한 평가이자 예측이다.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6월 15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과 당을 장악했기 때문에 섣불리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선 김정은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김정은 체제를) 이미 다 구축해 놓았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붕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희망사항을 얘기했을 수도 있고 붕괴되지 않도록 많은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북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국의 고위당국자가 이런 얘기를 할 때는 근거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곧 북한체제의 ‘특수성’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전에 이미 김정은 체제를 다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수령체제의 특징은 수령제를 유지하기에 적합한 시스템이 모두 구축되어 있고 시스템의 머리만 바뀐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고지도자가 교체되어도 제도나 법, 인물들이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 자유주의 국가의 권력교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김정은의 경험 유무는 별문제가 안 된다. 핵문제나 미국문제만 보더라도 강석주를 비롯해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노회한 관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정책의 일관성 문제만 보더라도 북한은 전통적으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왔고 김일성 빨치산 시기부터 난국 돌파를 위해서 반드시 강‧온 양면책을 구사하였다. 이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난관을 돌파함과 함께 상황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북한의 ‘빨치산식’ 생존전략으로서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북한과의 관계가 잘 될 때는 안 될 것을 대비해야 하고 잘 안 될 때는 잘 될 때를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도 모두 금물이다. 완전한 의미의 평화상태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북한의 정책행태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하는 것은 혹시나 박근혜 정부도 이전 김영삼 정부나 이명박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붕괴론’에 빠져있지 않나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북한붕괴론’이 일부 학자나 탈북자들의 의견으로만 제시될 뿐이고 정부관료들 의견은 아닌 것 같지만 혹여 고위관료들의 마음속에 그런 것이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 정권의 재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두 가지이다. 즉, ‘북한붕괴론’에 빠지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이 미국이나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과 대북 압박 정책 가능성 등이 있다. 모두 다 피해야 할 사안들이다. 인간간의 관계에서 ‘신뢰’나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불신과 증오가 가득한 남북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한은 상대방을 무력이나 공작에 의해 붕괴시키려 한다는 불신을 서로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북한은 최근 중국까지 북한에 대해 ‘저강도’ 제재에 가담함으로써 극도의 ‘피포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일단 궁지에 몰리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 최악의 선택까지 고려하게 된다. 북한은 늘 궁지에 몰렸을 때 ‘항복’보다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었다. 따라서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자신이 언제 공격받을지 모르고 대화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 북한체제가 안정적으로 갈 것을 전제로 남북대화가 진행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정성 있는 대화가 된다. 비록 북한이 진정성 없이 대화에 임하더라도 우리만이라도 진정성 있게 임해야만 북한의 ‘빨치산식’ 협상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나 회사간의 거래에 있어서도 상대방이 곧 죽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상대 회사가 곧 망할 것으로 판단한다면 무슨 진정성 있는 대화가 될 것인가?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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