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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개입은 ‘음습한 정치공작’ 단죄해야… 타협할 수 없어

 

 
 
국정원 선거 개입 사실인데, 박근혜 대통령 입 ‘꾹‘ 닫아버려
 
耽讀 | 등록:2013-06-23 09:05:36 | 최종:2013-06-23 09:11: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하필이면 12월 11일이었다. '12·12군사반란'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18대 대선을 불과 일주일 남짓 앞두고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는 민주당 폭로는 충격이었다.

1979년 12월 그날 밤과 다른 점은 전두환 일당이 무력으로 민주헌정을 유린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2012년 그날 밤은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앞에서 문을 열어 달라는 민주당 의원들과 경찰 요구에 끝까지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직원과의 대치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봤다는 점이다.


2012년 12월 11일과 1979년 12월 12일

박정희-전두환 두 독재정권이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를 '정권안보'를 위해 동원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들에게 국정원 선거개입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그리고 국정원도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선거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을 강하게 부인했고, 오히려 민주당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처음에는 "우리 직원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가 "맞다"고 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특히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개인의 사적 주거공간에 무단 진입해 정치적 댓글 운운한 것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달 14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공당이 젊은 여성 한 명을 집단 테러한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라고 문재인 후보를 맹비난했다.

특히 그는 "민주당이 한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은 이 현장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증거주의, 영장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사생활보호 그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심지어 그들은 이 여직원의 오피스텔 호수를 알아내기 위해 고의로 주차된 차를 들이받고 경비실에서 주소를 알아냈다고 한다.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을 동원해 여직원의 집을 알아냈고 이것을 SNS를 통해 사방에 뿌리기까지 했다"고도 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여성인권을 짓밟은 '성폭행범'에 비유할 정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면 "문재인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박근혜 후보가 3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거의 '망치'자, 경찰은 그날 밤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국정원 직원이 임의제출한 노트북과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증거물에서 문재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 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선거는 끝났다.


"음습한 정치공작과 허위·비방 단호히 분쇄할 것"

여섯 달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저는 이 순간부터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며 "이 땅에 음습한 정치공작과 허위·비방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를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지켰을까? 아니 지킬 마음은 있을까?

검찰은 지난 14일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의혹 사건'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소장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결국 피고인은 국가안보 본연의 기능에 한정한 국가정보원법의 원칙과 한계를 뛰어넘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대통령과 정부여당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과 단체 모두를 종북세력으로 규정, 직원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각종 정치 이슈와 선거에 관해 이들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낙선운동을 했다."-14일 <연합뉴스> 대선 개입' 원세훈·김용판 공소장 주요 내용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실인데, 민주공화국 박근혜 대통령 입 '꾹' 닫아버려

이 공소장에 근거해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여섯 달 전 "이 땅에 음습한 정치공작과 허위·비방"을 한 정치세력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국정원이라는 말이다. 민주당과 시민들은 원세훈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최고 지도자와 박근혜 선거캠프 인사도 관련됐다면서 더 철저한 조사를 위해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만약 원세훈 국정원, 아니 '정권정보원'이 한 일을 미국 중앙정보부(CIA), 영국 국내정보국(MI5), 프랑스 국내중앙정보국(DCRI), 독일 연방정보국(BND), 이스라엘 MOSSAD, 호주정보청(ASIS)가 저질렀다면 이들 나라 지도자가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침묵은커녕 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야당이 단순히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검찰이 정보기관이 야당 후보 낙선운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럼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향해 민주주의 근간를 지키지 않았다며 분노했던 격정과 결기를 국정원을 향해 드러내야 한다. 민주공화국 대통령이라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입을 '꾹' 닫아버렸다. 원세훈 전 원장이 끝이 아니다. 함께 불구속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원이 선거개입 사실을 왜곡·축소·은폐를 지시했다.

피고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가 당선되게 하기 위해 허위 보도자료를 경찰서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게 해 정치운동 금지 규정을 위반하고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실체를 은폐한 허위의 수사 공보를 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했다."-14일 <연합뉴스> 대선 개입' 원세훈·김용판 공소장 주요 내용은


국정원 선거 개입, 침묵은 민주주의에 '독'

서울경찰청장이 선거운동을 했다. 조금 과하게 연결하면 미국 FBI가 선거에 개입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대통령 닉슨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 한 이유는 민주당 선거 본부를 '도청' 자체도 문제였지만, 이후 진행 과정에서 닉슨이 축소·은폐를 지시하고 거짓말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축소·은폐하려는 것이야말로 도청보다 더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정보기관을 동원해 야당 후보 낙선을 지시하지도, 축소·은폐를 지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서울경찰청장이 축소·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상대 후보인 문재인 후보 낙선을 위해. 그럼 대통령으로서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약속해야 한다. 더 이상 국정원과 공권력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철저히 개혁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취임 초 야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에 딴죽을 건다고 '주먹'까지 지면서 비판하지 않았는가? 정부조직법 개정을 자신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분노는 하면서 국정원과 경찰이 선거에 개입했는데도 침묵이다. 이런 일에 침묵은 금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독'이다.

대통령이 침묵하면, 새누리당이라도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수사검사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 '색깔론'을 제기하고, 댓글이 73개밖에 없다며 '별' 것 아닌 것을 크게 만든다고 비난이다. 남의 집을 침범해 물건을 한 개만 훔쳤다고 그 사람이 도둑이 안 되나. 1개를 훔치든, 10개를 훔치든, 100개를 훔치든 같은 도둑이다. '법과 질서'를 좋아하는 새누리당 아닌가. 그 좋아하는 법과 질서로 댓글이 73개 밖에 안 달려도 엄벌을 촉구해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NLL포기'발언을 들고나온 새누리당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다. 민주시민이 일어나야 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을 두고 '좋은 게 좋다'거나, '이미 선거는 끝났다'라는 논리는 안 된다. 이는 패배주의요, 정의가 아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음습한 정치공작' 단죄해야… 타협할 수 없어

대통령과 여당이 국가를 경영하면서 야당과 정책을 놓고 대립할 때는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그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은 타협할 수 없다. 타협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없다. 특정정당 후보를 당선을 위해 다른 후보 낙선운동을 하는 정보기관의 '음습한 정치공작'을 단죄해야 한다. 민주시민은 저항의 불꽃을 타오르게 해야 한다. 타오는 저항을 옥죄이면 더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불꽃을 끄는 방법은 선거에 개입한 자를 단죄하고, 국정조사 실시 그리고 다시는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도록 야당이 바라는 것보다 더 철저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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