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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사람’ 문재인-안철수의 지난 발자취를 찾아서

 

알콩달콩 재미, ‘문-안투어’를 아십니까?
 
[‘부산공감’의 현장답사기] ‘부산사람’ 문재인-안철수의 지난 발자취를 찾아서
 
김욱 | 2012-10-12 08:34: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은 '부산 사람'이다. 두 사람은 대학 입학 전까지 부산에서 자랐다. 문재인은 남포동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이, 안철수는 서면의 신도심이 생활권이었다. 문재인의 남포동에서 안철수의 서면까지는 지하철로 20분 거리다. 두 사람의 가장 근접한 생활권은 고등학교인데 문재인의 경남고와 안철수의 부산고는 직선 거리로 1.4km,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인접해 있다.

부산에서 살면서 문재인과 안철수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몇 번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안철수가 남포동 부품상가에 라디오 부품을 사러갔다 방학 때 집에 온 대학생 문재인을 스쳤을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지금은 없어진 서면의 '동보서적'에서 같은 책에 손 때를 묻혔을 수도 있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의 단일화는 기정사실이다. 3자대결로는 여권 후보가 모조리 이기고 단일후보와의 대결은 대부분 야권 단일후보가 이기는 걸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단일화는 양쪽 모두에게 절실한 과정이다. 아마 두 사람의 단일화는 이번 선거 최대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이런 두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올해 대선 또 하나의 흥미 요소다.

 

'부산공감' 회원들은 번호 순서대로 빨간 선을 따라 움직였다

지난 10월 6일 부산의 소셜미디어 유저 모임인 '부산공감'(필자도 이 모임의 회원이다) 회원들과 함께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의 부산에서의 자취를 찾아보는 '문안투어'를 다녀왔다. 이날 '부산공감'의 회원들은 문재인의 남항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안철수 부친이 얼마전까지도 운영했던 범천의원까지 두 사람의 초·중·고등학교와 살던 집을 찾아 봤다.

익숙한 부산의 공간 속에서 둘의 자취를 찾아보니 두 사람이 부산 사람이라는 게 새삼스레 다가왔다. 대통령 후보로 멀게만 생각되었던 두 후보가 영도 문재인, 범천동 안철수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정서적인 거리감이 좁혀진 건 필자와 후보 사이만은 아니었다. 둘의 생활권을 몇 십분만에 넘나들다 보니 두 사람이 드라마 속의 드디어 기다렸던 대결을 펼치는 숙명적 라이벌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같은 지역 출신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두 명이 대결하는 선거는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두 후보의 자취를 몇 시간만에 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대통령 선거는 확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백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흥미롭고 희귀한 투어를 최초로 시도하고 소개한다.

 

 

 



 

'흥남철수' 때 남쪽으로 내려온 문재인의 부모님은 피난지 거제도에서 문재인을 낳은 후 문재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왔다. 남항초등학교는 원래 작은 학교인데 피난민들 몰려들어 문재인이 입학할 당시 한 학년에 1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은 3학년 때까지 가교사에서 공부해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 문재인의 기억은 가난 때문에 그리 즐겁지 않다. 배급 강냉이죽을 받아 먹기 위해 친구의 도시락 뚜껑을 빌렸다거나 월사금을 내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난 걸 문재인은 초등학교 기억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문재인은 이런 가난이 자신의 독립심을 기를 수 있었던 선물이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신선성당과 남항초등학교에서 신선성당으로 올라가는 경사길

 

남항초등학교 바로 위에는 1955년 문을 연 신선성당이 있다. 당시 성당은 구호식량을 배급해 주었는데 문재인은 배급날이면 학교 뒤편 경사길을 올라 성당 앞에 줄을 섰다. 그때가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다. 수녀님들은 배급을 기다리는 꼬마 문재인의 손에 사탕이나 과일을 쥐어주었는데 문재인에겐 그런 수녀님들이 천사처럼 보였다. 문재인은 3학년 때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문재인의 어머니는 사목회 여성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성당을 둘러보다 만난 관계자 한 분에게 문재인 후보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문 후보의 어머니는 아직도 이 성당에 다니신다고 한다. 그런데 문재인의 어머니인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문재인의 어머니가 그런 말을 안하고 성품도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부산 경남중학교

문재인은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알았다. 당시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갔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늦게까지 공부시켰는데 그때 문재인의 성적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은 당시 부산에서 최고의 일류 학교로 꼽혔던 부산중학교에 합격했다.

초등학교가 가난을 알게했다면 중학교는 문재인에게 불공평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경남중학교 인근 대신동이 당시 부산의 부촌이었다. 경남중학교 학생들도 대체로 부유했다. 문재인은 정원과 일하는 사람도 있는 집에 사는 친구를 보고 주눅이 들었다. 자신과는 씀씀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문재인은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산 경남고등학교

 

문재인은 야구광이다. 시위로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지금의 아내가 문재인을 기쁘게 할려고 모교의 우승 소식이 적힌 신문기사를 들고 왔을 정도이다. 문재인은 야구를 좋아할 뿐 아니라 잘하기도 한다. 대학시절에는 학년 대항 야구시합에서 주장을 맡아 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야구를 알게 해준 것은 야구 명문인 그의 모교 경남고등학교다. 전설적인 투수 최동원과 현재 일본에서 활약 중인 이대호 선수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경남고등학교 도서관과 뒷산

 

경남고등학교는 오래된 원형건물이 독특하다. 지금은 도서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이 과거엔 교실이었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 문재인 후보의 후배 두 명이 이 도서관의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학교 뒷산은 문재인에게 '문제아'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지금의 모범생같은 모습과 달리 문재인은 한때 문제아로 찍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뒷산에서 술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다가 유기정학을 받았다.

 

부산고 교가 기념석

문재인을 지나 이제 안철수로 가보자. 안철수도 문재인처럼 야구광이다. 롯데가 부진할 때면 마음이 아파 경기를 못본다고 할 정도의 야구광인데 안철수도 문재인처럼 야구를 고등학교에서 알게 되었다. 안철수의 부산고는 문재인의 경남고처럼 야구 명문인데 안철수가 재학할 당시엔 전국대회에서 3년 간 5번이나 우승했다. 혈기 왕성하던 고등학생 안철수에게 모교의 야구 우승의 기억은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한 지역의 야구 명문인 두 학교가 라이벌이 아니라면 이상할 것이다. 문재인의 경남고와 안철수의 부산고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고교 야구 라이벌이다. 대충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얼마나 라이벌이냐면 두 학교의 올해 친선 경기에 김연아가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두 학교의 경기가 빅매치라는 것인데 이런 두 학교의 라이벌 관계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선경쟁을 숙명적 대결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부산고는 특이하게도 교가를 새겨넣은 돌을 학교에 세워두고 있는데 가만 보면 그 이유를 알만하다. 부산고의 교가는 청마 유치환 시인이 작사를 했고, 세계적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이 작곡을 했다. 윤이상 선생은 부산고에서 교편을 잡은 인연으로 부산고 교가를 만들었다.

 

 

 

예전의 부산 중앙중학교. 현재 부산교육청 운영 '궁리마루'로 바뀌었다

 

안철수가 다닌 중앙중학교는 지금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아있다. 폐교된 건 아니고 2013년 정관 신도시에서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중앙중학교 건물은 현재 부산교육청의 '궁리마루'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중앙중학교의 흔적을 찾으려고 건물 주위를 돌아봤지만 잘 찾아지지 않았다. 오래된 기념석 옆에 붙은 명패석에서 학교 이름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부산 동성초등학교

 

안철수가 다닌 동성초등학교다. 자신이 직접 쓴 <행복 바이러스 안철수>라는 책에서 안철수는 초등학교에 버스가 있었지만 자신은 걸어다녔다고 썼다. 안철수의 초등학교에 버스가 있었던 것은 사립초등학교이기 때문이다.
 

범천의원 건물과 병원 외부에 붙어있는 안영모 원장 문패

'문안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은 안철수 후보의 부친 안영모 원장이 올해까지 운영했던 범천의원이다. 안철수의 가족은 이 병원 3층에서 살기도 했다. 현재는 '범천의원'이라는 간판은 뜯기고 셔터는 내려진 채 병원은 버려진 건물처럼 서 있다. 지난 5월 과도한 취재에 부담을 느낀 안영모 원장은 49년 간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았다.

안영모 원장은 49년 전 이 나라가 가난했던 시대에 이 나라에서도 가난했던 이 동네에 병원을 차렸다. 가난한 이 동네는 계속 가난했고 지금은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빠져나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더 가난해졌다. 범천의원 주변엔 문을 연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49년 동안 지켰던 범천의원마저 문을 닫아버리면서 이 거리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병원 폐원 안내문

병원 셔터 안 유리문에 붙어있는 폐원 안내문의 간결한 글에 가슴이 찡해졌다. 안영모 원장의 성실한 의사로서의 삶이 이 한 문장 안에 다 들어가 있는듯 했다. 안영모 원장은 병원을 내년까지 하고싶어 했다고 한다.(일요신문 인터뷰 내용) 내년에 그만 뒀다면 저 폐원 안내문엔 49년이 아니라 50년이 적힐수 있었을 것이다.

안영모 원장이 50주년을 못 채운 건 극성스런 언론 때문일까? 대통령에 출마한 안철수 때문일까? 언론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들 안철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론이든 안철수든 상관없다. 내가 안영모 선생의 폐원 안내문에서 분명하게 느낀 건 정치에 대한 안철수의 확고한 의지다. 그러고보니 안영모 선생의 글씨체와 안철수의 글씨체는 참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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