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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찬성한 공정경제 3법, 보수균열 신호탄 될까?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0-04 16:02:33
수정 2020-10-04 16: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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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비대위원들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9.28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비대위원들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9.28ⓒ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지난달 22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로 한 사람이 다급히 들어갔다. 재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비공개로 잠시 면담을 가진 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장내를 빠져나갔다.

다음 날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김 위원장을 다급히 찾아왔다. 그 역시 비공개로 짧은 면담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박 회장과 손 회장은 김 위원장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따로 만났다.

모두 같은 목적이었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처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 처리에 찬성하면서 보수진영 균열이 예상된다.

재계 반발에도 밀어붙일 기세 보이는 김종인,
경제민주화 전도사 행보 보일까

재벌개혁과 지배구조 합리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이다. 이는 ‘일감 몰아주기’, ‘공익법인을 통한 편법 증여’, ‘복잡한 지분구조로 인한 계열사 간 리스크 확산’, ‘금융과 산업 분리’ 등 그동안 재벌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온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된 만큼 21대 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찬성’ 발언은 그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에 재계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입장은 단호해 보인다. 김 위원장은 박 회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나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관련해 공약을 만든 사람”이라며 “그때는 지금 법안보다 더 강한 공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직접 작성하고 관철한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구상대로 실현하는 데에 늘 한계가 있었다.

그는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영입돼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기도 했지만, 그 공약은 박 전 대통령 당선 뒤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30일 국민의힘 전국 지방의회 의원 연수에서 “선거 때 약속한 걸 최소한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선거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니 옛날식으로 돌아가자는 사람이 자꾸 생겼다”며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승리하니까 일반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공약의 글씨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민심이 이반되고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시절에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내던 20대 국회 때 다중대표 소송제가 담긴 상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에 들어가 있는 내용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김 위원장의 꿈은 좌절됐다.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은 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 등 부담을 우려해 철저한 보완책 없이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재계가 경영권 위협을 주장하며 이를 적극 반대하던 논리와도 같았다. 법안을 심사하는 법사위원회에서도 늘 여야 간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지난 9월 23일 국회를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국회를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이동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과거와 다른 21대 국회 분위기,
김종인의 시도가 수구세력 균열로 이어질까

하지만 21대 국회 분위기는 다르다. 여당의 총선 압승과 김 위원장의 보수정당으로 ‘이적’이 그 배경이다.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면서 공정경제 3법도 덩달아 급물살을 타게 됐고, 민주당도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은 21대 총선 직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당 쇄신 작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 3법의 찬성은 비대위가 그동안 해온 당 쇄신 작업과는 또 다른 성격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기본소득 주장, 정강정책 개정, 5.18 무릎 사과 등 과감한 외연 확장 행보를 보였다. 당명과 당색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 이러한 쇄신 작업은 국민 정서에 맞춘 선언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반면 공정경제 3법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선다. 보수정당이 지녀온 정책 기조를 실제로 바꾼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은 대기업을 지원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늘 입을 맞추면서 기업에 대한 규제도 반대해왔다.

그런데 공정경제 3법의 경우 재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도 보수야당에서 이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 됐다. 대기업에 대한 기존 보수의 입장과는 판이해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내부 반감이 보다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상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상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총선 참패를 겪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종인표 쇄신 작업에 대놓고 반대는 못 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법사위원 중 한 명인 장제원 의원만 “경제민주화는 우리의 약속이었다”며 공정경제 3법 처리에 공개적으로 찬성한 상태다.

그 외 다른 의원들은 ‘반시장적 요소는 없애야겠지만 큰 틀에서는 필요하다’는 정도의 유보적인 입장만 표명하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을 심사할 국회 정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거나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자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성일종 의원은 최근 MBC라디오에서 “왜 우리 국민의힘이 전향적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저도 그렇고 (김종인) 위원장도 그렇고, 큰 틀에서는 수정하고 시장을 보완하자는 것에 이견이 없다”면서도 “반시장적 요소가 있어서 기업을 옥죄거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으면 여야가 협의해서 그 부분을 열어줘야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서 ‘경제통’으로 꼽히는 윤희숙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현재 법안 논의는 근거도 없이 재계의 걱정을 엄살로 치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런 법안들은 다른 나라에서 입법 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들고 도입했다가 부작용으로 폐지한 나라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내 여론을 수렴한 주호영 원내대표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기자들과 만나 “쟁점 하나하나마다 기업이나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저희 의견을 정리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당내 반대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기자들과 만나 “(공정경제 3법) 자체가 큰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정할 것이 몇 개 있으면 다소 고쳐질지 모르지만 3법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의원 숫자가 많으니까 반대 의견도 제시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도 법안을 세밀하게 만들면 재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진 않을 것이라며 ‘반대파’를 달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의 ‘좌클릭’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주목된다. 특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에 김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가 동조하면서 보수진영에선 균열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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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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