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식을 시작하는 대다수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나도 그랬고 내 옆 동료도 그랬고 옆 옆 동료도 그러했다. 우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눈앞의 수익에 낙관했고 동시에 환장했다. 장담하건대 높은 확률로, 어제 시작한 사람, 오늘 시작한 사람, 내일 시작할 사람이 그러할 테다.
그러다 A기업 주식을 만났다. 정책 테마주. 한 지자체 정책에 따른 수혜 예상 기업으로, 몇 시간 만에 10%의 수익을 안겨줬다. 이 경험은 내 어설픈 투자 청사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하루에 10%씩 1년이면...', '한 1억 태워서 하루 만에 10%면...' (두근두근)
한 번의 요행을 경험하니, 내가 천재가 된 것 같았다. 두근거림 속에 그린 청사진은, 저무는 테마주의 끝을 잡게 만들었다. 그렇다. 나는 속칭 '물려' 버렸다. 하지만 물렸다고 물러설 순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물타기를 시작했다. 손실을 본 적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사면 올라야 하는데 내리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껏 잘 올랐던 녀석이지 않은가. 나의 판단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나는 천재니까.
그렇게 천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되었고, 가격이 반토막이 나서야 주식을 대거 정리했다. 2년, 내가 주식 천재가 아님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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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뉴스는 내게 아픈 기억을 되새긴다. |
ⓒ 남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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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종목은 여전히 보유 중이다. 우직했던 '자칭 천재'를 기억하기 위해 일부는 남겨 놓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2021년 1월 25일)도 해당 종목은 테마주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놀라운 것은 손절한 가격에서 50%나 올랐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것은 평단가까진 아직도 50%나 더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 지자체와 관련한 기사나 해당 회사의 상품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팔고 나서 올랐다는 아쉬움이나 아직도 원금 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다. 작은 기사 하나에도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가벼움을 택했던 내가 자꾸 떠올라서다. 화장실에 앉아서 주가창을 보며 좋아하고 걱정하던 나를 상상하면, 왜 그리 안돼 보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경험이 사무치는 이유는, 이것이 테마주로의 입성을 알리는 첫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A기업 사건에서의 아픔은 이후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탄핵으로 한 테마주가 –15.70%에서 22.09%의 급등락을 보였다. 대통령 파면에 베팅한 나는 큰 수익을 올렸다. 스릴이 어마무시했다.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떨림과 환희를 선사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A기업 사건을 아주 하찮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 달 만에 10년을 늙게 만든 사건이, 그렇게 나를 2년이라는 긴 테마 투자자의 길로 안내했다.
(*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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