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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만들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니 돌아온 건 대량해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 上] 고용 불안, 무노조에 저임금, 갑질도 참을 수밖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전, 그리고 노조 결성 이후 겪은 일들 속에는 한국사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5년 간 최저임금을 받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용역업체 변경을 통한 집단해고 시도와 '다른 곳에 가서 일하라'는 회사 입장이 돌아왔다.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되돌리기 위해 50일째(3일) LG트윈타워 로비 농성 및 선전전을 하고 있지만 LG그룹은 이들 요구에 답하지 않고 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토대로 간겁고용 노동자의 삶을 돌아봤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제한' 조항 있지만...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다.

 

LG그룹이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있었다면, 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원의 해고를 시도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직접고용 노동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조항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는 재하청 구조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다. 구체적으로는LG트윈타워 건물관리를 수행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스앤아이)과 청소·시설 용역 계약을 맺은 지수아이앤씨(지수) 소속이다. LG트윈타워를 쓸고 닦는데 이 건물에 입주한 LG그룹 본사 및 계열사와 청소노동자 사이에는 법적 고용 관계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원청인 LG그룹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만으로 노동자를 내쫓을 수 있다.


 

실제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는 에스앤아이가 지수와 청소 용역 계약을 해지하고 백상기업(백상)에 새로 청소 용역을 맡기면서 발생했다. 백상이 기존 청소노동자 고용승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수가 '사직서에 서명하면 250~500만 원의 위로금을 주겠다'며 청소노동자들에게 사직서 서명을 종용한 일도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지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으로 분산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청소노동자들은 마찬가지로 이를 거부했다. '일하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라는 것을 고용승계로 볼 수는 없고 실제 노동자들이 다른 건물로 가면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노조 입장이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수가 제안한 대로 다른 곳에 갔지만 관리자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결국 퇴사한 청소노동자가 있다"고 했다.


 

▲ LG트윈타워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는 청소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헌법에는 노조할 권리 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

 

간접고용 구조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노조 활동도 가로막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조할 권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해고까지 감내해야 겨우 행사할 수 있는 권리였다.


 

2019년 10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뒤 지수와 교섭을 해야 했다. 인건비에 대한 사실상의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진짜 사장' LG그룹는커녕 1차 하청업체인 에스앤아이와도 교섭할 수 없었다. 이같은 상황은 에스앤아이와 지수의 용역 계약이 종료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지수와의 교섭이 결렬돼 노조가 LG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활동을 하자 LG그룹 자회사 에스앤아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법원에 '로비 선전 1회당 200만 원을 내게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었다. 자신들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법적 사용자가 아니므로 청소노동자들이 LG트윈타워에서 노조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법원은 에스앤아이가 낸 세 번의 가처분 모두 "LG그룹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수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 용역업체 변경 이후 로비 농성이 한창이던 지난 19일 나온 가처분 결정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사이의 농성'을 금지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제한적이나마 LG트윈타워로비에서 선전활동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소송 과정의 불안감과 부담은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10년 간 유지되던 에스앤아이와 지수의 청소 용역 계약이 해지된 것과 뒤이은 사직 종용, 분산배치 시도 역시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장은 "노조를 만들고 그간 참아왔던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그게 보기 싫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는 LG트윈타워에서 일어난 용역업체 변경 등은 "노동조합 파괴를 위해 원하청이 공모해 일어난 부당노동행위"라며 지난 6일 서울지방고용청 남부지방지청에 에스앤아이, 지수,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는 백상을 고소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원청이 기존 하청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 업체와 계약한다. 그리고 새 업체는 노조를 만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도식은 LG트윈타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멀게는 2012년 홍익대학교가 똑같은 일을 했고, 가깝게는 울산 동강병원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울산 동강병원은 지난달 조리 하청업체를 바꿨고, 새 하청업체는 조리원 16명 중 12명의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울산 동강병원에서는 지난해 7월 조리원 노조가 생겼다.


 

▲ LG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프레시안(최용락)

고용불안, 노조활동 어려워 저임금도 갑질도 참으며 일할 수밖에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


 

고용이 불안하고 노동조합도 하기 어려운 간접고용 노동자가 계속 일하려면 철저하게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를 만들기 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도 '을'이었다.


 

LG트윈타워 청소용역업무를 수행한 10여 년간 청소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이었다. 5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윤을 늘리기 위한 불법과 편법도 동원됐다. 지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 시기를 4월로 맞춰 1~3월 임금인상분을 떼먹었다. 평일 휴게시간을 30분 더 잡는 '근무시간 꺾기'를 통해 격주 토요일 근무를 시키기도 했다.


 

지수는 이렇게 아낀 돈으로 이윤을 챙겼다. 지수는 LG그룹 계열의 건물을 중심으로 용역계약을 맺어 2019년 기준 25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45억여 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같은 해에 지수의 지분을 50%씩 나눠 소유하고 있던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두 고모 구미정, 구훤미 씨는 각각 30억 원씩을 배당받았다.


 

관리자의 갑질도 있었다. 청소노동자 김정순 씨는 "관리자가 '주머니에 손 넣지 마라', '웃지 마라'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며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면 관리자의 갑질이 한층 심했다"고 증언했다. 조장 수당을 현금으로 걷어가 관리자가 챙기기도 했다. 김 씨와 동료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쫓겨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관리자의 갑질을 막을 책임을 지고 있는 지수는 이런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순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은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지수 본사 직원이 처음으로 우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쓸 때 원청은 일반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용역계약을 맺으려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더라도 하청업체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지수와 같이 갖가지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파견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7%인 175만 원, 용역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51%인 156만 원이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조를 만들기도 어려워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최희석 경비 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등졌을 당시에도 고용불안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위치가 사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91043450351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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