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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입력 : 2021.02.03 06:00 수정 : 2021.02.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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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1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교육·사범대학 구조조정,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교육 방향 등 각종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1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교육·사범대학 구조조정,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교육 방향 등 각종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고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과 참여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등을 지냈다. 2018년 12월부터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시인 및 동화작가로 활동하며 <고양이 학교> <거울 옷을 입은 아이들> <그림자 전쟁> 등의 책을 펴냈다.
 

교대 정원은 왜 제자리

이해관계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더 이상 결정 미룰 수는 없어
양성 인원 줄이기로 결론 내
확정된 것 없지만 예산 지원 땐
국립 사범·교육대 통합 논의 가능

한국 사회에서 교육만큼 어려운 분야도 없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방 대학들은 학생을 유치하지 못해 존폐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에 손을 대보지만 그 순간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옥에 빠진다. 교육은 국가 예산이 70조원이나 투입되는 최고의 공공재이지만 대치동과 목동으로 대표되는 20조원의 사교육시장에 휘둘려 기를 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개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한다. 학부모는 학교와 정부를 비난하고, 학교는 교육부와 학부모에 책임을 넘긴다. 교육부는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탓을 한다. 정치인들은 교육 문제는 골치가 아프다며 회피하거나 다음으로 넘긴다. 현 정부는 책임을 이전 정부에 돌리고, 차기 정부는 지금 정부를 탓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68)을 만났다. 장관급인 김 의장은 이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교육 난제를 풀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열고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한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 및 중장기 교육정책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된 대통령 직속 민관합동 자문기구다. 한국 교육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장차 국가교육위원회로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조직의 목표다.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등 교원양성기관 구조조정 문제로 김 의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 신생아 수가 급감하고, 학령인구도 많이 줄었다. 지금대로라면 올해 교육대학 입학생들은 4~5년 뒤 임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다.

“국가교육회의는 지난해 교원양성체제 개편 방향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핵심 당사자 집중 숙의를 통해 초등은 임용 규모에 맞게 정부가 양성규모를 관리하고, 중등은 양성규모의 축소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교육부가 올해 구체적인 방법과 추진 일정을 제시할 예정이다.”

-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제기됐는데 왜 안 된 것인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결정하지 않고 떠넘긴 것도 있고….”

- 교수들이 반발하나.

“교수들도 그렇고, 지역 국회의원들도 그렇고.”

- 구체적인 방안이 올해는 확실히 나오는 것인가.

“더는 미룰 수 없다. 교육부 의뢰를 받아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작업을 벌여 양성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 예를 들어 서울대 사범대와 서울교대, 부산대 사범대와 부산교대 등의 통합 같은 방안도 나올 수 있나.

“확정된 것은 없다. 대학 이름을 거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예산이 지원되면 국립 사범대와 교육대 통합도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2~3개 교육대가 한곳으로 통합될 수도 있다. 중등 분야는 교원자격증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사범대가 설치된 대학교는 교육대학원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식이다.”

- 대입 합격자 발표 기간이다. 미충원·미등록자가 나오면 서울대의 빈자리는 연세·고려대 합격생이, 고려·연세대의 빈자리는 다른 서울지역 인기대학들의 합격생들이 채우면서 대규모 연쇄 이동을 한다.

“대학 서열화가 여전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1970~1980년대에는 명문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문대를 나오더라도 선망하는 직장이나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서울대와 연·고대 취업률이 50%가 안 된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발전 경로를 보장하고, 분야마다 다양한 정점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울대에서 제공하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고등·직업교육 개혁이 필수적이다.”

국가교육위원회 꼭 있어야 하나

대학 구조조정·등록금 인상 등
답 알면서도 말 못하는 교육 문제
밀어붙이기식 해결은 안 되지만
교육부·교육감 이끌 기속력 필요
공론화 거친다면 정치적 중립 가능

- 정권마다 입시 제도를 바꾼다. 문재인 정부도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2년 전 대입제도를 개편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모집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다만 당시 수능 문항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 불리는 어려운 문제들은 학교수업만으로는 학생들이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항들 때문에 사교육이 성행하고 입시가 불공정해진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대입제도 개편을 다시 의제로 올려 검토하게 될 것이다.”

-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치를 2028학년도 수능은 객관식 체제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이게 그건가.

“대입 시험에서 서술형·논술형 문항 도입은 국제적 추세다.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 서술형·논술형 수능은 채점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 그 많은 답안지를 제 시간 안에 채점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선다형·단답형으로 측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SAT나 ACT,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중국의 가오카오(高考) 등이 모두 서술·논술형이다. 우리나라도 채점 능력은 충분하다. 대입 수험생 자체가 많이 줄었고 논술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도 있으니 실제 채점 인원은 더 줄어든다. 1차 채점은 국가에서 하고, 2차 채점은 각 대학에서 한 뒤 두 곳의 평균 점수로 합격자를 뽑으면 공정성 논란도 줄일 수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도입하려면 국민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양극화가 더욱 커져 걱정이다.

“한국뿐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온라인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모두 교육격차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온라인교육은 디지털시대에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온라인수업에 적응한 아이들은 지금 상태가 더 좋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보다 잘 가르치는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집에서 밥 먹으면서 편하게 수업도 들을 수 있는데 왜 굳이 학교에 가야 하느냐고 한다.

“학교는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기정체성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도 한다.”

- 반대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학교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는 학부모들도 있다. 학교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학교의 돌봄 기능이나 사회성 개발 기능 등을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 정상적으로 대면교육이 이뤄지고 급식도 주어졌다면 인천 초등생 형제 화재 사고 같은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는 앞으로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량실업, 인구절벽, 가족형태 변화가 야기하는 성장 환경의 위험, 지능정보사회의 삶에서 소외될 위험 등에 안전판 역할도 해야 한다.”

미래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할 것은
학력이 아닌 살아가는 능력
교사는 ‘학생 성장 지원자’ 돼야
사회가 그런 의제 생각할 때다

- 그렇다면 미래의 학교와 교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아이들에게 학력이 아닌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안내자, 학생 성장지원 전문가, 상담가가 돼야 한다. 또 학생과 지역을 연계하는 네트워커이자 평생학습자로서 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 의제들을 놓고 사회구성원들이 고민해야 할 때다.”

-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가교육위원회(도표 참조) 설립 얘기가 나왔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문 대통령 공약이다. 백년대계의 방향과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다.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연내 출범하는 것이 목표이다.”

- 국가교육위원회가 꼭 있어야 하나. 국가교육회의나 교육부, 교육청으로는 안 되나.

“교육 분야는 정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뻔히 답을 알면서 말을 못하는 것도 많다. 대학 구조조정을 하려면 법을 바꿔 사립대의 땅과 건물을 정부가 사줘야 한다. 10년째 동결된 대학 등록금도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 교대·사범대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3년 정도는 우선 이런 현안 처리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의 결정은 기속력이 없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은 기속력이 있으므로 교육부나 교육감이 따라야 한다.”

-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과 여야가 임명하게 될 텐데 정치적 중립이 보장될지 의문이다.

“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본회의 참여자들은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다. 야당이 정권을 잡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진보·보수 어느 쪽이 만들든 시비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의 일하는 방식을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면 정치적 중립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공론화를 거쳐 사회적으로 충분히 합의된 것만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결정하는 것이다. 올해 국가교육회의는 2022 교육과정 개편을 위해 시민 10만명(목표)을 상대로 교육과정 총론에 담을 미래적·시대적 가치에 관한 토론과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큰 방향이 결정되면 국민의 동의와 승복을 얻어낼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일하는 방식은 이래야 한다.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안건을 논의하면 국가교육위원회의 중립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인사를 임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이라면 자신이 아닌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교원노조운동의 지향점이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

“교원노조가 조합원인 교사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처럼 큰 변화가 올 때는 교사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전교조도 권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사회적 흐름으로 보면 교원노조가 단순히 임금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좀 그렇다. 사회적 역할도 확대해야 한다.”

- 급식 노동자 등 학교 공간에 교사 아닌 분들도 많이 있다. 전교조가 이런 분들과도 연대를 잘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 부분도 풀어야 한다. 원래 ‘교직원노조’다. ‘교원노조’가 아니다. 학교에 비정규직 교사, 급식 노동자, 공무직 등이 많아지다보니 교사들과 갈등이 생긴다. 교원단체도 학교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역할을 지식 전수 기관으로만 보면 현실과 너무 맞지 않다. 현실변화를 읽는 시야와 조정력,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전교조가) 건강한 권익단체가 됐으면 한다.”

-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교육, 노동인권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가르치자고 최근 시·도 교육감들이 제안했다.

“민주시민 교육과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특정 과목으로 설정해 교육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교과목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새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문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학습의 양과 직결되기 때문에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수능 킬러 문항 탓 사교육 성행…서술형·논술형 시험 도입 고민할 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30600005&code=940401#csidxecdd1cfe9195551be80d8f74236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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