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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전’이 ‘원전 폐쇄’와 무슨 관계?...‘엉터리 공소장’으로 논란만 일으킨 검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03 09:36
  • 수정일
    2021/02/03 09:3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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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혐의 관련 없는 ‘국회회의록’·‘언론기사’ 삭제까지 범죄일람표에 포함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1-02-02 17:10:22
수정 2021-02-02 2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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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자력발전소(자료사진)
월성원자력발전소(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북한 원전 극비 추진 의혹'을 일으킨 검찰의 '월성 원전 폐쇄 의혹' 사건 공소장에는 '북한원전' 파일과 같이 공소사실과 관련 없어 보이는 내용까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방해 혐의와 직접 관련 없을 것으로 보이는 파일들을 삭제한 사실도 공소사실에 포함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필요 없는 논란까지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2월 23일 법원에 제출한 '월성 원전 폐쇄 의혹' 사건 공소장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인 A씨 등 공무원 3명을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방실침입 등 혐의로 기소했다.

애초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10월 국회로부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행위 여부에 대한 감사 요청을 받은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한 결과 "산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관여 의혹까지 제기됐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해당사건을 지휘하는 등 관심을 보인 사건이기도 하다.

 

공소장에서 검찰은 감사원이 산업부에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과 관련한 의사결정이나 보고자료, 산업부·한수원·청와대 등과의 협의자료' 등을 요구했으나, 2019년 11월께 A씨가 "월성1호기 관련 자료를 주말에 삭제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이에 다른 2명의 공무원이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자료를 삭제했다고 혐의 사실을 적시했다.

공소장의 범죄일람표에는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찾아낸 530여개 삭제 파일의 목록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파일 제목만 봐도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파일까지 포함돼 있다.

우선 '북한원전 극비 추진' 의혹을 일으킨 'Pohjois'(북쪽을 뜻하는 폴란드어) 폴더에 담긴 자료 17건만 해도 월성1호기 폐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특히 의혹의 핵심 근거가 됐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라는 제목의 자료의 경우, 산업부가 직접 파일을 공개하면서 "아이디어 검토 차원의 문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 파일 또한 산업부 전산망에 그대로 보관돼 있어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등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Pohjois' 폴더 내의 다른 파일도 지난 1995년 북한의 경수로 지원을 위해 설립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관련 업무경험자 명단,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관련 전문가 목록' 등으로 감사원이 원한 자료와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현재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경수로백서'와 백서의 표지 이미지 파일까지 범죄일람표에 포함돼 있다.

또한 범죄일람표에는 '국회회의록_장하나 의원 원전중단 결의안', '검토보고서_원자력발전소 신규건설 추진포기와 수명연장 중단여부에 대한 국민투표와 공론조사실시 촉구 결의안' 등 제목의 파일도 포함됐다.

지난 2014년 1월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장하나 전 민주당 의원은 신규원전 건설 포기와 노후원전 수명연장 중단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원전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놓자 이에 대응한 것이다. 해당 자료가 생성된 시기나 내용, 일반인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자료의 성격 등을 고려하면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인다.

이외에도 일반에 배포된 자료로 보이는 '탈핵공청회 자료집'이나 '차질없는 신규원전 건설로 신기후체제 대비해야'라는 제목의 언론 기사 등 언뜻 봐도 관련 없는 자료들도 범죄일람표에 포함돼 있다.

검찰 자료사진
검찰 자료사진ⓒ뉴시스

이같이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들을 공소장에 포함시키는 것은 형사소송 원칙 중 하나인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혐의 외의 자료를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재판부의 예단을 막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소장 일본주의를 도입한 취지에 비춰본다면 (해당 공소장에서) 관련 없는 증거와 행위 쓰는 것 자체가 예단을 줄 수도 있다"면서 "(검찰이) 필요도 없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도 "검찰이 공소장에 적는 것을 피고는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공소장에 예단을 갖게 하는 불필요한 것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도 있었다"면서 "검찰의 기획수사에서는 이런 식의 공소장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혐의와 관련 없는 내용이 공소장에 적시될 경우 실제 재판 진행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 재판의 경우에도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역작업'이 공소사실에 포함돼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재판부가 '역작업'을 분류할 것을 특검 측에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공소사실 자체가 광범위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장은 범죄혐의를 분명히 확정해야 피고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해당 공소장은) 피고가 예측하기 힘든 혐의사실에 대해 책임지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혐의와 관련 없는 부분까지 넣은 것은 검찰이 의지를 가지고 진행한 기획수사인 탓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검찰의 '투망식 기소'가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조 변호사는 "이런 식의 투망식 기소가 이뤄진 것이 검찰의 일반적 기소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적법절차의 원칙,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할 수 있는 의혹을 주면서 공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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