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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직접 확인한 이명박·박근혜 때 불법사찰 문건 20만 건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21-02-23 17:59:44
수정 2021-02-23 18: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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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사찰 문건 수가 20만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은 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날 국정원으로부터 과거 정부 발생한 국정원 불법사찰과 관련해 보고받은 내용을 자세히 전했다.

김 위원장이 밝힌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인들과 법조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인사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사찰을 벌였으며, 이를 통해 생산한 문건은 20만여 건에 달한다.

김경협 정보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MB정부 국정원 사찰 관련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2.23
김경협 정보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MB정부 국정원 사찰 관련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02.23ⓒ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김 위원장은 “1인당 신상정보 문건 수를 보면 적게는 3~4건, 많게는 10여 건”이라며 “평균 10건 정도로 해서 추정하면 사찰 대상자 수는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20만여 건 중 극소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아닌 다른 정부 때 생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이 당시(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자료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고, 아주 특이한 게 한 건 나왔는데, 박정희 때 정보도 나왔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시사항’이 기재된 불법사찰 문건이 생산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차인 2009년 12월 16일부터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시로 돼 있으며, 그 내용을 보면 VIP 통치를 보좌하기 위해 대정부 협조관계를 구축하고자 비협조적인 정치인, 여야 국회의원 막론하고 신상자료 수집해서 관리하라는 지시”라고 전했다.

이어 “추가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자료를 수시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고, 민감한 사안이라, 국정원이 보안을 유지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업데이트해서 청와대에 보고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이 경찰과 국세청 등을 통해 전해받은 첩보를 국정원에 제공하면, 국정원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리하다가, 청와대가 특정한 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국정원이 넘기는 형식으로 청와대-국정원 간 긴밀한 공조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방식의 국정원 불법사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 지속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2009년도 사찰 지시가 내려온 이후 이를 중단하라는 지시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국정원장 답변이었다”며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 국내 정보조직을 해편할 때까지 계속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정보공개 신청자들 요구에 따라 자료를 검색한 결과 박근혜 정부 시절 신상정보 자료가 나오고 있다. 그때까지 사찰이 계속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파면 이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지속된" 국정원 불법사찰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에 따라 파면된 이후인 황교안 권한대행 시절에도 국정원의 불법사찰이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문건에 명시된 ‘보고처’는 민정수석, 정무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등이다. 여기서 의아한 부분은 ‘보고처’로 ‘국무총리’가 명시된 점이다. 김 위원장은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므로 국무총리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보고됐다는 것으로 봐선 권한대행 시절이 아닌지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고 후에 ‘보고처’인 ‘국무총리’로부터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김 위원장은 전했다.

내곡동 국가정보원.
내곡동 국가정보원.ⓒ사진공동취재단

다만 과거 또 다른 정보기관인 국군 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시기 계엄령 선포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이와 관련해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과 교감한 흔적이 드러난 부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황 전 총리가 검찰에 고발된 적이 있으나, 핵심 당사자인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이 미국으로 건너가 잠적함에 따라 검찰 수사가 진척되지 않아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조 전 사령관이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황 전 총리의 권한대행 시절에도 청와대를 다녀갔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황 전 총리가 국정원을 통해서도 각종 정보를 취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계엄 선포의 후속 조치로 정치인 통제가 이뤄진다면 국정원발 정보가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크고, 국정원-기무사 공조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국정원과 국무총리 간 이뤄진 교감이 기무사 문건과 연관된 것이라거나, 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과 관련한 내용이라면 파장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국정원 측에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때 불법사찰 주장은 아직 ‘사실무근’

국정원 불법사찰 논란이 확산되면서 국민의힘 측에서 가능성을 제기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불법사찰 의혹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일단 국정원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사찰 지시가 없었다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민의힘 측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임동원 전 원장이 불법도청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들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불법사찰과 동일시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 ‘내가 사찰의 가장 큰 피해자다. 앞으로 이런 일 없어야 한다’고 금지시켰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불법도청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을 확인해보니, 당시 도청 장비는 이전 정부에서 도입됐고, 국정원 직원들이 (이전) 관행대로 해오던 게 있었다”며 “김대중 정부 들어 불법 도감청 하지 말라는 공개적 발언이 있었음에도 국정원장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장들에 책임을 물어 유죄가 선고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향후 정보위 일정과 관련해 “국정원에 사찰 방법과 정보 활용 방식 등을 규명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며 “그 이후에 책임자 처벌, 불법사찰 정보 폐기 절차에 들어가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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