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행위에 대해 대중 앞에서 진솔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경영권 승계 문제로…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때도 구체적으로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도 그래서 문제가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가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금융당국과 검찰의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이렇게 이재용 부회장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반성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 성급하고 공허한 일이 또 있을까.
잘못된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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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면반대 기자회견"이 지난 6월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민중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4대 재벌과 오찬간담회에서 "(이재용 사면에 대해)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뒤의 일이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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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앞서 살핀 것처럼 형벌에는 교화의 목적 외에 예방과 응보의 목적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죄가 저질러지면 사회가 그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부과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동일-유사한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목적 아래 현재 법무부는 상습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중상해 사건, 불법 촬영 동영상 유포와 같은 성범죄 사건 등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한 범죄들에 대해서는 가석방을 전면 제한하고 있다. 같은 이유에서 청와대도 그동안 '5대 중대범죄' 사면권을 제한하며 재벌의 중대한 경제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겠다고 천명해왔던 것일 터다.
그런데 왜 이재용 부회장 앞에서는 왜 이런 원칙과 관점들이 모두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2018년 1월부터 8월까지 가석방된 5451명 중 형기를 70% 이하로 채운 상태에서 가석방이 된 인원은 20명에 불과했다(0.36%).
재벌 총수가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거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는 일은 한국 사회의 질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로, 그 위험성과 파급력, 피해의 정도가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그런데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런 소수점 이하의 특혜를 줘야만 하는 것일까. 더구나 가석방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해 합법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려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석방 이후 추가로 법무부의 '취업제한' 해제 허가가 나야 한다. 또 다른 특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특혜의 반복은 결국 재계와 사장들에게 잘못된 신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 이후 제2, 제3의 이재용에게도 특혜가 주어지리라는 신호 말이다.
이재용 없는 대한민국, 이재용 없는 삼성이 불가능하다면
사실 이재용 부회장 석방을 주장하는 이들의 핵심적 근거는 법률보다 일종의 경제 논리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도체 투자를 주도할 이재용 부회장이 필요하니까, 백신 수급을 원활히 하려면 이재용의 리더십이 도움이 되니까, 삼성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이 있어야 하니까... 이런 모든 세련된 말들은 한 가지 진실로 수렴한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사회적으로 승인하자는 말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펴는 정치인과 재계-보수언론이 생존을 위해 굴뚝을 오르고, 거리에 나서고, 밥을 굶던 노동자들에게 항상 "법과 원칙", "떼법"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고작 2년 6개월도 '이재용 없는 대한민국' 또는 '이재용 없는 삼성'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런 상상이 정말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시급히 멈춰서서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위법한 재벌 총수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사회라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고 말이다.
한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공평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과 닿아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게 당연한 사회라면, 우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반대 문제는 물론이고 이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들과도 씨름해야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서범진씨는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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