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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건설현장 순회했다가 땀으로 샤워 “몸으로 느낀 폭염, 작업중지 구속력 있어야”

‘오후 2시 작업 중지’ 고용노동부 권고, 건설현장에서 무시하는 이유

흑석 리버파크자이 건설현장ⓒ민중의소리

 삑삑삑...

체온이 37.5도를 넘어선다며 출입을 금지하는 기계 소리가 울렸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기자들과 관계자들 모두 체온이 너무 높아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30분가량 건설현장을 돌아본 뒤였다. 이들은 모두 이날 오전 11시30분쯤 해당 건설현장에 들어올 때 철저히 발열체크하면서 문제가 없었던 이들이다. 그런데 건설현장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모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몸에 온도가 올랐다. 기자도, 안전보건공단·고용노동부 관계자도 모두 그랬다. 직접 공사를 한 것도 아닌데, 몸 온도가 정상을 훨씬 웃돌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미향 국회의원은 “잠깐 건설현장을 돌았을 뿐인데, 온몸에 물이 줄줄 흐르는 경험을 했다”라며,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폭염으로 인해 얼마나 힘들지 간접적으로나마 몸으로 경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리버파크자이 건설현장에서 윤미향 의원실 주최로 ‘폭염 노동실태 현장 방문 및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 방문 및 간담회는 기자들에게도 공개됐다. 현장 순회는 해당 사업장 원청사인 GS건설 안전팀장과 건설노조 관계자의 안내로 진행됐다.

 
탈의실에서 쉬고 있는 건설노동자들ⓒ민중의소리

건설노동자, 잇따라 온열질환 사망
작업 중지 권고에도, 따르지 않는 건설현장
“구속력 갖추도록 제도적 뒷받침 필요”

최근 폭염이 지속되면서 건설현장도 비상이다. 건설현장에서 온열질환 의심 사망자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22일 수서역세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철근 노동자가 현장에서 쓰러져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26일에도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타설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철근 노동은 60도 가깝게 뜨겁게 달궈진 철근을 나르고 엮어야 하며, 타설은 고무장갑에 장갑을 신고 앞치마까지 다룬 채 뜨거운 열을 뿜는 콘크리트를 만져야만 한다. 두 노동자는 모두 추락·끼임·낙하 등 재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별다른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더운 날씨에 계속 일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지난 25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모든 건설현장에 폭염 시간대 작업 중지를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노동부의 권고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폭염대책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노동조합이 파악하기론 (권고가 발표된) 26일만 해도 서울 현장 중 98%가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후 2시 작업 중지 권고가 내려진 다음 날부터서야 일부 건설현장이 이를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현장 순회 및 간담회가 진행된 GS건설 건설현장도 27일부터 노동부 권고를 따르고 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GS건설 관계자와 현장에서 일을 하는 건설노조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이곳 흑석 리버파크자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옥외 작업팀은 업무 시작 시간을 오전 7시에서 6시로 앞당기고, 중간에 휴식시간을 줄여, 오후 4~5시였던 퇴근시간을 오후 2시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오후 2시 이후 작업 중지 권고’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서 이 같은 권고가 대부분 건설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는 게 건설노조의 지적이다. GS건설 관계자도 “아무래도 공사기간과 비용에 부담이 있다”라며 “근로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부 권고에 따라 이번 주부터 오후 2시부터 외부 작업을 중단하고 있지만,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폭염으로 작업이 중지되면, 가장 먼저 발생하는 문제는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이다. 근로기준법 제46조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폭염은 사용자의 귀책사유가 아니다. 따라서 아무런 조율 없이 작업이 중지되면 노동자에게 임금 지급이 안 되고, 공사기간이 촉박해지면서 시공사에도 부담이 생긴다. GS건설처럼 출퇴근 시간을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권고를 따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노·사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완전히 상쇄하긴 어렵다. 민원발생을 걱정해야 하는 건설현장은 출·퇴근 시간 조율을 고려하기도 힘들다.

이 같은 문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또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작업 중지는 구속력이 없는 권고에 그치고 있고, 대부분 건설현장이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서,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노동자의 생명을 등한시한 작업 강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폭염뿐만 아니라 이상기후가 계속되고 있다”라며 “애초 공사기간을 산정할 때 이상기후 등도 모두 고려해서 공사기간을 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자 생명에 관해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구별을 두면 안 된다”라며 사람 생명을 두고 업체 규모별로 제도 적용 시기를 달리하거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제도적 허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가장 문제라고 본다”라며 “산업재해나 온열질환을 막기 위해서는 공사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비용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아파트값 상승 등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계속 막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물론 기재부는 돈을 아껴야겠지만, 노동자 생명을 지키는 데에는 아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권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공사기간 산정 방법 및 지원 대책 등을 보완하는 제도적인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미향 국회의원은 폭염 노동실태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8일 오전 11시 30분 흑석동 리버파크자이 건설현장을 방문했다.ⓒ민중의소리
28일 흑석 리버파크자이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과 관계자들이 휴게 시설에 설치돼 있는 이동식 에어컨 바람을 쐬보고 있다.ⓒ민중의소리

이동식 에어컨 등 마련한 GS건설
그래도 시설 부족 느끼는 노동자들
“다른 현장은 더욱 심각해”

이날 건설현장 순회 중에는 건설노동자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각종 시설을 볼 수 있었다. 30분가량 둘러보면서 이동식 에어컨이 설치된 천막, 에어컨이 설치된 화장실과 탈의시설, 제빙기 등을 볼 수 있었다. 에어컨이 설치된 탈의시설에는 땀에 젖은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GS건설 관계자는 “5개의 제빙기, 40개의 이동식 에어컨 등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조차 수백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더위를 식히기에는 부족했다.

박중용 건설산업연맹 서울지부 동남지대장은 순회 및 간담회가 끝난 뒤 통화에서 “에어컨이 있는 탈의시설은 팀별로 한 개씩만 배치가 되는데, 못 받는 팀도 있다. 한 팀에 25명 정도인데, 안이 너무 협소해서 누워서 쉴 때는 10명이면 꽉 찬다”라며 “사실상 일을 하는 곳에서 멀어서 잘 이용하지도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왔다 갔다 하면 쉬는 시간이 다 사라지기 때문에 그냥 일을 하는 현장에서 널브러져서 쉬거나, 밥도 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도시락을 시켜서 먹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간 중간에 텐트가 쳐져 있긴 하지만, 이동식 에어컨이 다 설치된 것도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300~500명이 쉬기에는 부족하다”라고 했다.

박 지대장은 간담회에서 “그래도 GS건설 건설현장은 괜찮은 편”이라며 “열악한 중소현장은 이런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건설현장에서는 옷을 갈아입는 컨테이너조차 없고, 냉방시설은 엄두조차 못 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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