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語)은 의사표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말은 화자의 생각을 나타내고 사상을 나타내고 의도를 나타낸다. 말에는 힘이 있다. 듣는 사람에게 꽃처럼 향기가 있어 감동과 기쁨과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불과 창처럼 태우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여 아픔과 상처를 내기도 한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나타나는 말은 그 사람의 인품과 됨됨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어느 대형교회 목사의 말이다.
“직업상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수 있는 대단한 정치가로부터 대기업 총수나 유명 인사로부터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여러 명의 보좌관을 거느리고 찾아온 위세 등등한 사람 앞에 서면 자연히 긴장하게 됩니다. 긴장의 10분 정도 대화를 하다 마치 어린아이같이 미숙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는 아무리 유명한 정치가나 기업가라 할지라도 속으로 무시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분의 성숙한 믿음을 발견하고는 존경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크기에 따라 말의 수준과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말 그릇이 큰 사람은 누군가를 현혹하고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남과 소통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말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말 그릇이 적은 사람은 어떨까? 남을 비난하고 목적을 위해 선동하거나 거짓말을 서슴지 않으며 거친 말을 사용하여 남을 공격하는 사람일 것이다.
말은 질긴 생명력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진 듯했다가도 언젠가는 선명하게 돌아와 자기 앞에 존재를 드러낸다. 말은 소리를 대신하여 글자로도 생명을 유지한다.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자기의 말이 거꾸로 돌아서서 자기를 부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항변하지만, 사람들은 그 얄팍한 처세술에 속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얼굴을 바꾸어 놓는다. 유순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따뜻한 봄 향기가 난다. 자주 화를 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늘 성난 하늘처럼 찌푸려 있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는 정치인들을 만나보면 그들의 사나운 인상을 보고 놀란다고 했다. 선한 눈빛을 가지고 정계에 입문한 이들이, 몇 년만 여의도 물을 먹으면 총기는 사라지고 대신 험악한 팔자(八子) 주름이 얼굴에 새겨진다고 했다. 선수가 늘어나면 점점 싸움닭 같은 얼굴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요즘 신문이나 티브이를 보면 그들의 입에서 험한 말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마치 상대가 철천지원수나 되는 것처럼 사납고 거친 말들이 오간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다수당이라 해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나, 소수라 해서 극한투쟁으로 맞서는 모습은 선진국의 정치가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함일 뿐이다. 말 그릇이 작은 사람일 뿐이다. 물론 정권을 유지하든가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결할 수밖에 없다 해도, 막말과 욕설로 싸움을 하는 대신 유머를 장착한 격조 높은 대화로 싸운다면 훨씬 더 성숙한 정치가 될 것이다.
영국의 처칠이 했다던 유머,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했다던 유머를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라고 못 할 건 없을 것이다. 살벌한 정치인들의 말을 시시각각 들어야 하는 국민도 피곤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도 어느새 그렇게 닮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나온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자기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사뭇 달라진다”
선거철이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이제 정치도 품격 있는 언어를 통하여 선진국다워야 한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말의 품격을 높이는 노력을 모두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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