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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헌법재판관님들,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헌법재판관님들, 불초 변방의 한 경제기자가 한 말씀 올립니다. 경제기자가 경제 기사나 열심히 쓰지 뭘 안다고 헌법재판에 관해 떠드느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이렇게라도 한 말씀 올리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저는 헌법재판이 정치재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간을 좀 보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쪽이라고요. 3월 14일로 기대됐던 선고일이 미뤄졌을 때에도 대충 이해했습니다.

21일을 넘기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재판 이후에 헌재의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뭐 그런 개떡 같은 논리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것도 참았고요. 그런데 28일까지 입을 꾹 닫고 있는 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정립한 자아고갈 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폭발 직전이에요. 인내심으로 치면 한 인내심 하는 저조차도 일상이 망가진 지가 너무 오래됐고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경제

그런데 헌법재판관님들, 그거 아십니까? 우리 같은 민중들은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과 달라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도 응원봉 들고 노래 부르며 빠른 선고를 촉구하는 것 외에 달리 뭘 할 방도가 없어요.

하지만 경제는 다릅니다. 제가 이 칼럼의 제목을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라고 붙였는데, 여기서 인내심은 저의 인내심, 혹은 민중들의 인내심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을 말하는 거라고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시지요? 복잡한 숫자를 말씀드리면 이해를 못 하실 테니 쉽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최근 두 달 새 자영업자가 20만 명이 폐업을 했어요. 이게 다 윤석열의 내란으로 연말 특수를 날려버린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이라는 사실은 재판관님들도 아시겠지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헌법재판관 등이 2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2.25. ⓒ뉴시스


이게 어느 정도 큰 문제냐? 자영업자가 20만 명이 폐업을 하면요, 대충 그 가족까지 어림잡아 50만 명 정도가 생존의 기로에 섭니다. 50만 명이 어느 정도 숫자인지 감이 잘 안 오시나요? 시흥, 안양, 김해, 평택 같은 수도권 도시 하나가 날아가는 거예요. 지방으로 치면 목포, 경주 같은 도시 두 개가 한꺼번에 죽음의 위기에 빠진 꼴이고요.

일개 경제 기자가 이야기하니 심각성이 잘 안 느껴지실 것 같은데 정부의 공식 발표를 보자고요. 그린북이라는 게 있어요. 기획재정부가 매월 발간하는 경제 종합 보고서입니다. 미국 연준이 발간하는 정기 보고서가 ‘베이지북’이어서 이 책에도 비슷한 별명이 붙은 거죠.

이 그린북은 기재부가 발간하는 것이다 보니 자기 잘난 척을 엄청나게 합니다. 자기들이 운영하는 경제를 나쁘다고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죠. 오죽하면 그린북이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라는 헛소리를 해댔겠냐고요.

그런데요, 내란 이후인 작년 12월 13일 그린북에서 14개월 만에 ‘경기 회복세’라는 표현이 사라졌어요. 그 자리를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이 대신했고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속된 말로 졸라 위험한 상황인 겁니다. 다른 책도 아니고 그린북이 이렇게 말하면 진짜 안 좋은 거거든요.

더 미뤄지면 호흡기 떼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기자이긴 하지만 저는 웬만해서는 경기 예측을 부정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어요. 보수언론의 “우리나라가 곧 망한다”는 호들갑이 민중들에게 어떤 협박으로 작용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2월 14일 발표된 그린북에 “내수 회복이 지연됐다”는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진짜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기재부가 이 사실을 그동안 결사적으로 부정했거든요.

사실 내수 부진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수많은 연구기관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줄기차게 경고한 거였어요. 그런데도 그린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더라고요. 윤석열 정권이 뭘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억지 주장을 편 거지요. 그러다가 2월에 마침내 그린북이 이를 인정한 겁니다.

3월 14일 발간된 그린북의 입장은 진짜 심각해졌어요. 내수 부진을 인정한 건 물론 ‘수출 증가세 둔화’라는 표현이 새로 추가됐거든요. 그린북에 수출 부진이 언급된 건 2023년 6월 이후 무려 21개월 만이어요.

윤석열 집권 이후 내수 부진은 오래된 일인데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지표는 수출로 겨우 버티는 형국이었어요. 그런데 수출이 박살 났다니까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기재부 말이 그렇다고요. 제 경험상 그린북이 이 정도 표현을 한다면 한국 경제는 삐뽀삐뽀 상황인 겁니다.

헌법재판관님들의 시급한 선고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원래 내수는 소득과 소비심리의 2차 함수 문제여요. 이 정도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그 중 소득이라는 변수는 당장 어쩔 수가 없어요. 윤석열이 망쳐놓은 저소득 구조가 하루 이틀 만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소비심리는 다릅니다. 정치적 지형이 안정되면 미래에 대한 소비자들의 두려움이 줄어요. 당연히 지갑을 엽니다. 게다가 헌재의 선고가 나오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거잖아요? 설마 재판관님들이 탄핵을 기각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요.

그렇게 대선이 시작되면 어떤 후보건 자영업자들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어요. 거기 표가 얼만데요? 당연히 이런저런 공약들이 나올 겁니다. 지금 문제는 한덕수-최상목 듀오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자빠져 있다는 겁니다. 이러면 소비심리가 살아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대선이 빨리 시작돼야 한다고요. 저는 지금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지된 정부 기능에 파워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후보들이 너도나도 정책을 제시하는 그런 국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헌법재판관님들, 진짜 이러다가 경제가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하루하루는 진짜 소중한 시간이에요. 두 달 동안 20만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루에 3,000명입니다. 1분에 두 명꼴로 개인사업자가 망하고 있다고요.

재판관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더 미루잖아요? 하루 3,000명, 가족까지 하루 7,000~8,000명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려요. 제발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한국 경제가 그런 인내심을 갖출 정도로 단단하지가 않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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