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 나름의 ‘정의로운 결단’은 김영삼 대통령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하면서 제압됐습니다. 그랬던 이회창 총재 자신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차에 실어 통째로 넘겨받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정의로운 결단’은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회창 후보의 디제이 비자금 사건 폭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96년 16대 총선부터 주로 보수 정당을 통해 국회에 쏟아져 들어온 법조인들은 정치에 자꾸 사법적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툭하면 검찰에 고소·고발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급속히 진행됐습니다. 그만큼 정치의 영역이 좁아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타서 최정점에 다다른 사람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그는 반정치주의자입니다. 총선에서 참패하자 비상계엄을 선택했습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얄팍한 법률 지식을 활용해 감옥에서 풀려났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기각·각하 결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파렴치한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판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애초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항소심 재판부에 인신공격과 색깔론을 퍼부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입니다. 보수가 법원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기 부정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3월 28일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파기자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도 3월 27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9일 치 신문에 “대법원이 이 사건 직접 재판해 유·무죄 확정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파기자판이 뭘까요? 형사소송법 396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고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에 그 소송 기록과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기 충분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피고 사건에 대하여 직접 판결을 할 수 있다.”
1심과 2심은 사실심이고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입니다. 원심판결이 잘못됐다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파기환송을 합니다. 파기자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무죄라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상고를 기각하면 그만입니다. 유죄라고 판단하면 파기환송해서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하면 됩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의 파기자판 요구는 이재명 대표 유죄와 피선거권 박탈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이재명 대표의 조기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목숨을 끊어달라고 대법원에 청부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살인 청부입니다. 법치를 명분으로 주권재민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공할까요? 대법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입니다. 주진우 의원은 검사 시절 ‘윤석열 사단’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비서관을 지냈습니다.
국민의힘에는 이들 이외에도 법조인 출신이 너무 많습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가 검사 출신입니다.
보수 정당을 장악한 법조인들의 가장 큰 폐해는 역시 정치의 사법화를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왜 나쁜 것일까요? 민주주의를 무너뜨립니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이회창 총재는 검찰의 수사로 대선판을 뒤집어엎으려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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