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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블랙리스트' 감독 "윤석열 되면 반복될까 두렵다"

[인터뷰]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 "안상수 발언, 윤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야"

22.03.02 06:04l최종 업데이트 22.03.02 07:34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이영 감독.
▲  이영 감독.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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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는 사실상 제2의 블랙리스트를 예고한 거다. 자기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문제가 많은 좌파 예술계를 바로잡겠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게 블랙리스트 재실행을 예고한 게 아니면 뭔가. 이미 법원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공무원, 정부, 국정원이 잘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안상수는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고, 무려 검찰총장 출신 대선후보인 윤석열은 안상수의 문제가 있는 발언을 모른 척 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영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1년부터 여성영상집단 '움'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그는 여전히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상대로 자행된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순간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분노를 넘어 경악스러운 기억, 블랙리스트는 그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아래 실천연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이 감독은 '안상수'(국민의힘 인천공동총괄선대위원장), '윤석열'(국민의힘 대선후보), '국민의 힘'을 언급하며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의 최근 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안 위원장의 사퇴 등 윤 후보와 국민의힘 차원의 책임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앞서 안상수 국민의힘 인천공동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달 13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문화예술계가) 특정 세력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아닌 진정한 실력과 열정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문화예술계 쪽은 좌파들이 많다" 등의 발언을 하며 '좌파척결'을 언급했다.


국민의힘과 윤 후보에게 책임을 묻는 건 이 감독뿐만이 아니다. 47개에 달하는 문화예술계 단체들은 명예훼손·모욕죄 등 혐의로 안 위원장 경찰 고발(2월 25일)을 비롯해 윤 후보에게 ▲공식적인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며 국민의힘 캠프·당사 앞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2월 18일·23)을 열었다.

이 감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3~5년간 고통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검열의 시대가 다시 오는 걸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헌재 취지 부정... '좌파척결' 망언 안상수 엄벌해야" http://omn.kr/1xhey).

"검열의 시대 다시 오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 “대선후보,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약속해야”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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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색깔론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 정치인이 아무렇지 않게 대외적으로 '좌파척결'을 외칠 수 있게 됐다는 것.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다들 블랙리스트를 잊은 건가. 아니면 블랙리스트가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된 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블랙리스트 피해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올해야 꾸려졌는데? 내 영화가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히고 개봉이 미뤄지는 동안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상영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이게 끝난 일일 수 있나."

이 감독이 만든 <불온한 당신>은 칠십 평생, 여성을 사랑한 여성을 그렸다. 퀴어·레즈비언·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란 말마저 없었던 시절을 산 선배 레즈비언인 1945년생 이묵씨의 이야기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난무하던 우리 사회의 풍경을 담았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정권 비판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문제영화'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에 <불온한 당신>과 관련된 지원배제를 종용했단 사실은 2018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를 통해 밝혀졌다.

국정원이 그의 영화를 블랙리스트로 지목한 건 '성소수자' 때문이 아닌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영화 곳곳에 2013~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버이연합, 반동성애기독교단체 등 자칭 '애국보수집단'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등에 업고 '종북·동성애·세월호특별법 타도'를 외치는 모습,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언제까지 교통사고를 물고 늘어질 거냐"라고 질타하는 보수단체들의 목소리, 광화문광장에 모여 "박근혜는 죄가 없다", "종북 척결해 자유통일 이룩하자"라는 말을 외치는 이들의 모습 등이다. 

이 때문에 2015년에 완성된 영화는 정권이 바뀐 후인 2017년 7월에야 개봉될 수 있었다. 관객과 만나 70~80년대를 살아온 '레즈비언 선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날을 기다렸던 주인공 이묵씨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2017년 4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 성소수자를 종북으로 몰며 '종북게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향한 혐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기록했다. 이후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영화가 공개됐는데, 영화를 본 영진위 관계자는 '정권 비판적인 장면이 있어 영화 상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더라."

"안상수 발언, 윤석열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계속 침묵할 건가"
 
이영 감독.
▲  이영 감독.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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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인터뷰 내내 "블랙리스트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피해회복, 재발방지 대책 등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인 이 감독의 피해를 인정하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것도 최근 일이다. 지난 1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제17민사부)은 피고인 대한민국이 이 감독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감독은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국가의 잘못이 공표돼 다행이다. 동시에 곧 치러질 대선만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동시에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라면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대선 후보들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 후보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화예술의 블랙리스트가 왜 다시 작성되면 안 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대선 후보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공식적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을 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은 K-문화라는 타이틀로 우리의 드라마·음악 등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다시 블랙리스트의 시대가 돌아오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을 지원배제한 블랙리스트는 결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잖나. 입맛에 맞지 않은 작품이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엮을 수 있다. 우리가 이미 겪은 일이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정부가 단지 몇몇 작품만 검열하는 게 아니다. 문화예술 전반을 검열하고 배제하며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만들어갔던 일"이라면서 "안상수가 말한 좌파척결의 속뜻은 결국 이 모든 일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대선 후보들, 특히 윤 후보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며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안상수 발언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지적을 윤석열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계속 침묵할 건가. 그럼 안상수의 '존경받는 아티스트로 거론되어야 할 분(김건희)이 좌파들의 네거티브 프레임에 공격당했다'는 말에 동의하는 건가. 좌파로 보이면 언제든 국가 행정기관을 총동원해 문화예술인을 사찰·지원 배제하고 차별할 수 있다는 건가. 다른 대선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이름으로 문화예술 작품을 편가르기 하는 일, '블랙리스트'의 재발방지를 공식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후보들의 입, 약속을 계속 지켜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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