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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불운한' 검사다

[조성식의 통찰] 정권교체도 좋지만, 검찰공화국은 아니다

22.03.03 05:56l최종 업데이트 22.03.03 05:56l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20.11.24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20.11.2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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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는 놈(記者)'이다. 제도권 매체에서 벗어난 터라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자유롭게 쓰는 놈'의 양심을 걸고 말하건대, 이 시대 최고 권력은 검찰이다. 그리고 검찰권력의 정점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제왕적 총장 소리를 듣던 현직 때는 물론이고 퇴직한 후에도 그렇다. 이른바 '본부장' 비리 의혹 수사가 한없이 더디거나 덮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한때 호감을 품었던 윤 후보를 작심하고 비판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후배 검사들을 이끌고 검찰공화국을 세우려는 그의 야심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검찰권력 해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군사정변 2년 뒤인 1963년 8월 박정희는 군복을 벗으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두 달 전에 열린 대장 전역식에서였다.

박정희에게 '불운'이 어떤 의미였든, 내가 보기에 윤석열 후보는 불운한 검사다. 사적으로는 '강직한 검사'라는 한때의 평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적으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또는 남아 있는 후배 검사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로 직행하는 일은 삼가야 했다.

시대정신 : 검찰권력의 분산

윤 후보는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부르짖는다. 자신을 중용한 정권에 대놓고 '보복'을 선언하다니. 그 '부도덕한' 정권에서 붉은 완장 차고 숱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자성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자기가 하는 건 다 옳고 공정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은 다 음해이고 정치공작이다. 이른바 '윤로남불'의 절정이다.

검찰총장 사직의 정당성에도 의문이 든다. 비록 최종 판결이 남았지만, 행정법원은 그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다고 인정했다. 사퇴 명분으로 내세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결사반대는 검찰의 조직논리일 뿐이다. 검사 우위의 형사사법 체계에 길든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한다. 그런데, 독립적인 수사청 설치는 민주당만의 주장이 아니다.
 

큰사진보기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1.3.4
▲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1.3.4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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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수통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역시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친 곽상도 전 의원, 유승민 의원 등이 이미 비슷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세부 방안이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본질은 같다. 과도한 검찰권의 분산이다.

검찰 수사권을 뺏는다는 주장은 억지다. 반부패수사부(옛 특수부)와 공공수사부(옛 공안부) 소속 검사들은 중수청으로 옮겨가서 계속 수사할 수 있다. 직장이 바뀌는 것뿐이다. 검찰 수사관들도 마찬가지다. 변호사, 경찰관은 물론 국세청, 금융감독원 직원 등도 중수청 수사관에 지원할 수 있다.

인원수로나 업무로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사부/공판부 검사들은 하던 일 그대로 하면 된다. 기존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거듭난다. 경찰 수사 점검과 기소 및 공소유지라는 검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검찰개혁이 완성된다.

내가 만난 윤석열

나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검찰청을 드나들면서 사건 취재와 인터뷰를 많이 한 덕분에 공적/사적으로 아는 검사가 꽤 있었다. 윤 후보도 그중 한 명인데, 사적으로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나와 가까웠던 전‧현직 검사들은 대부분 그의 윗 기수였다.

노무현 정부 때 대검 중수부 검사들 회식 자리에 우연히 동석한 적이 있다. 뒷날 박근혜 정부 검찰 최고위직에 오르는 모 간부가 좌장이었다. 구면인 다른 검사와도 인사를 나눴는데, 그는 10여 년 후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 실세로 군림했다. 그 술자리에 윤석열 검사도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존재감은 약했다.

윤 검사에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3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댓글 사건)이다. 당시 여주지청장이던 그는 특별수사팀장으로 활약했다. 취재 목적으로 종종 연락했다. 당시 검찰과 정권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법처리를 놓고 충돌했다. 검찰 주장대로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면 자칫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버팀목이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국정원 발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한 뒤 윤 검사는 외롭게 수사를 밀어붙였다. 그가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직속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목할 때 나는 전율했다.
 

큰사진보기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상부보고' 논란으로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참철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국정원 직원의 압수수색과 체포에 과정에 대해 설명한 뒤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임정현 서울고검장,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2013.10.21
▲ 국정원 직원 체포 보고 경위 밝힌 윤석열 전 수사팀장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상부보고" 논란으로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참철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국정원 직원의 압수수색과 체포에 과정에 대해 설명한 뒤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임정현 서울고검장,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2013.10.21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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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 결과는 징계와 좌천이었다. 그가 지방 한직을 전전할 때 종종 통화했다. 수사권이 없는 대구고등검찰청으로 발령 난 그는 2년 뒤에는 대전고검으로 옮겨갔다. 검사장 승진을 내다보는 사람에게 두 차례나 고검 근무를 명한 것은 조직에서 나가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버텼다.

항명 파동 이후 그에게는 '강직하고 의로운 검사'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통화할 때마다 나는 그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뒷얘기를 끌어내려 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자신은 그다지 정의로운 검사가 아니며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진보 진영에서 팬클럽이 형성된 데 따른 부담감도 드러냈다. 자신은 진보가 아니라면서. 나중에 서울로 복귀하면 술 한잔하기로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후 집무실에서 따로 만나 장시간 비공식 인터뷰를 했다. 한창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를 때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주도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을 단독 인터뷰할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된 대화 내용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전 정권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 뒷이야기와 소회,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 분석과 야당(자유한국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재수사 요구에 대한 의견 등이었다. 나는 그의 말투에서 이 전 대통령 수사가 임박했음을 느꼈다.


기사를 작성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보도하지 못했다. 지난해 내가 <뉴스타파> 한상진, 심인보 기자와 함께 펴낸 <윤석열과 검찰개혁>(1부 '부풀려진 영웅신화')에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담겼다.

윤석열 검찰의 이상징후

2019년 조국 수사는 '윤석열 검찰'의 이상 징후였다. 장관 인사청문회 전 군사작전처럼 전개된 대규모 압수수색. 괴이하고 미심쩍은 일이었지만, 사모펀드를 비롯한 갖가지 혐의가 워낙 무거워 보여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강직한 검사' 윤석열에 대한 믿음이 한 가닥 남아 있을 때였다.

곧 정경심씨 전격 기소의 명분인 공소시효 만료 논리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이 시작된 후 검찰이 이중기소, 즉 표창장 위조 시점/방식을 바꾸어 새 공소장을 제출하는 걸 보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명백한 검찰권 남용임을.

이는 조국 전 장관 부부의 혐의와는 별개 문제였다. 권력형 비리도 아닌 과거의 개인 비리를 그토록 다급하고도 요란하게, 그토록 거칠고도 집요하게 파헤친 의도와 먼지떨이 수사방식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비판이 제기됐으니 생략하겠다.
 
큰사진보기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7.25
▲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 "화기애애"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7.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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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역대급 검찰주의자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자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하던 중수부 검사들이 집단 반발했다. 이들은 수사를 중단하고 피의자들을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항의를 표출했다. 그 중심에 선 검사가 바로 윤석열 중수2과장이었다. 당시 그의 직속상관은 우병우 수사기획관이었다.

2012년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충돌하는 '검란(檢亂)'이 벌어졌다. 한상대 총장이 중수부 폐지 방침에 반발한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게 발단이었다. 검찰 2인자인 채동욱 대검 차장을 비롯한 특수통 검사들이 중수부장 편을 들며 총장을 압박해 끝내 물러나게 했다. 그때 앞장선 검사 중 한 명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윤 후보는 좋게 말하면 승부사 기질이 있다. 승부사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자신을 내던진다. 운명에 대한 도박이다.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이단아다. 그 점에서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 평검사인 그가 사표를 품고 검찰총장을 찾아가 정몽구 회장 구속을 이끌어냈다는 일화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한 것은 일맥상통한다.

조국 수사도 일종의 승부수였다. 여권의 공격은 그를 반대쪽 사람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야당 대선후보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검찰개혁과 적폐 수사에 짓눌렸던 검사들은 그 수사를 기점으로 똘똘 뭉치며 반격에 나섰다. 윤석열 사단 인사 독식에 대한 검찰 안팎의 비난도 잦아들었다.

그에게 검찰은 절대선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직을 건드리면 참지 못한다. 물러서는 게 아니라 외려 더 세게 나아간다.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조국 수사를 그렇게 펼칠 게 아닌데, (여권에서) 조국 수사를 너무 많이 공격했지"라는 김건희씨의 녹취록 발언도 참고할 만하다.

검찰청 앞 촛불시위를 촉발한 조국 수사 이후 아예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를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자 감찰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겠다며 민정수석실을 압수수색하고,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면서 전 정무수석 등 13명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대통령을 30여 차례 언급했다.

윤석열이 대통령 되려는 이유?

윤 후보가 내놓은 사법개혁 공약의 핵심은 검찰권 강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검찰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만 해도 그렇다. 수사지휘권과 수사 독립성은 별개다. 정권과 검찰이 한 통속이던 시절,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검찰을 관리하고 통제했다. 굳이 서면으로 공식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 한풀이가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총장 재임 중 그와 그의 처가, 측근 검사들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일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2020년 하반기 현직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가 화제일 때 나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윤 총장이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윤석열 사단 구제'라고.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였다가 인사보복을 당했다는 검사들 말이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 '독립투사' 한동훈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겠다는 구상을 윤 후보가 공개적으로 밝히는 걸 보고서다. 아마도 한 검사는 그 자리를 연임한 뒤 총장에 올라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핍박받은' 검사들은 중용되고, '친정권'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학살당할 것이다. 그렇게 검찰공화국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큰사진보기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2.1.27
▲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2.1.27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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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한시를 지어 보냈다. <삼국사기>에 실린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詩)'이라는 시다.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br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br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br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민주당 심판도, 정권교체도 좋다. 그것이 민심이고 시대정신이라면. 하지만 검찰공화국은 아니다. 한때 그와 인연을 맺었던 '쓰는 놈'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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