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 논란’, ‘전장연 논란’ 연결시키며 ‘논란’ 남발하는 언론들
언론의 정치적 이슈화, 프레임에 고스란히 피해 받는 소수자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 14일 “비장애인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오기를”이라고 쓰며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주최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50만원을 후원한 것을 인증했다. 

지난 21일 한 기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국가대표 최종 2차 평가전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산 선수에게 해당 글을 올린 이유를 물었다. 이에 안산 선수는 “광주여자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에 다니고 있다”라고 답변했고, 이후 일부 언론은 ‘페미 논란’, ‘전장연 논란’이라는 단어로 해당 상황을 묘사했다.  

조선일보 기사 ‘페미 논란도 꾹 참았던 안산, 전장연 논란에 꺼낸 한마디’(2022.4.22)는 보수 성향 커뮤니티의 부정적 발언을 인용했다. 기사는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선 안산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안산이 전장연 지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하는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라며 “특히 에펨코리아에는 안산의 글을 두고 “왜 모두가 불편해져야 하나. 모두가 편하면 안 되나”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이렇게 함부로 행동해도 되나”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기사 ‘페미 논란 땐 침묵한 안산, 전장연 논란엔 딱 한마디 꺼냈다’(2022.4.21)에서 안산 선수의 답변을 보도하며 “안산은 도쿄올림픽 당시엔 페미니스트라며 비난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당시엔 어떤 의사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당 질문에 대해 '나는 광주여대 특수교육과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기사 헤드라인 갈무리.
▲ 조선일보, 중앙일보 기사 헤드라인 갈무리.

헤럴드경제 ‘페미 논란 안산, 장애인 후원 비판에 일침…“나는 특수교육과 학생”’(2022.04.21)은 “해당 후원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전장연 시위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상황을 등한시 한 정치적 표현이라는 비판도 나왔다”며 “이날 나온 안산 선수의 소신 발언은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 함구했던 이전과는 다른 행보”라고 했다. 국민일보 기사 ‘논란마다 침묵 안산, 전장연 후원 질문엔 답했다’(2022.4.21)도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라며 공격을 받거나, 올림픽 프로필 사진에 세월호 배지를 단 것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 언급을 피한 것에 대해 “침묵했다”라고 표현했다. 

▲ 국민일보 헤드라인 갈무리.
▲ 국민일보 헤드라인 갈무리.
▲ 헤럴드경제 헤드라인 갈무리.
▲ 헤럴드경제 헤드라인 갈무리.

 

“‘논란’이라는 단어, 존재하는 차별 보이지 않게 만들어”

기사의 ‘페미 논란’은 지난해 7월, 안산 선수가 ‘숏컷’이라는 이유로 공격받고, ‘웅앵웅’이라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는 단어를 썼다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린 것을 칭한다. ‘전장연 논란’은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를 두고 장애인 혐오 여론이 이어진 것을 배경에 둔 표현이다.

하지만 ‘논란’이라는 단어 안에는 성평등과 여성 인권 증진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와 장애인의 합당한 요구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안산 선수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를 전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는 욕먹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인식을 기사 안에 ‘논란’이라는 단어안에 남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서도 해당 시위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과 사람들의 메시지를 굳이 얹어서 논란을 만드는 행위”라며 “기울어진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일부러 안좋은 인식을 덧씌워서 마치 차별을 받고있지 않는 것처럼 포장해 대등한 갈등이나 ‘논란’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했다. ‘논란’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차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언론인권센터도 22일 성명에서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임에도 언론이 이름을 붙여 만들어진 ‘논란’들은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쳐 폭력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들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과 여성혐오에 근거한, 안산 선수에 대한 일방적인 사이버불링이자 노골적이고 선명한 폭력이었다”며 전장연의 시위를 두고 ‘논란’으로 일컫는 것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은 장애인의 인권과 직결되어 있다. 인권이 논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이를 응원하며 올린 안산 선수의 트윗 역시 논란이 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 안산 선수 트위터 갈무리.
▲ 안산 선수 트위터 갈무리.

이는 ‘논란’이라는 표현이 인권적 사안을 축소시킨다는 지적과도 이어진다. 이가현 활동가는 “명백한 폭력을 ‘논란’이라고 칭하면, 이건 폭력이 아니라 논란이고, 의견교환이니까 ‘나는 의견을 표출했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며 “명백한 혐오를 논란으로 치부해버리니까 자꾸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어떤 사람들의 어떠한 행동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지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가현 활동가는 “‘페미논란’ ‘전장연 논란’이라고 하면, 마치 안산선수가, 페미니즘이 물의를 일으켰고, 전장연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누가 문제라는 걸 정확히 밝히고, 어떤 행위가 논란이 되고있는지를 언론은 정확히 이야기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도 “주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보도의 방향은 확연히 다르다. 보통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을 ‘논란’이라는 단어 앞에 쓴다”고 지적했다. 

언론보도, 단어 영향력 파급력 고려 필요해

언론이 보도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해야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논란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적 의미와 맥락이 담겨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특히 더 구체적으로 근거를 갖고 설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논란’이라는 단어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네. 누구말이 맞는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언론이 고의적으로 약자의 목소리를 축소시키고, 약자 소수자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이상하게 비틀어서 사안을 전달하고 있다”며 “언론은 영향력을 고려해 신중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평등교육 경험이 있는 이한 남성 페미니스트 활동가는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직접 물어보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청소년보다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다”며 “그런데 언론이나 기존 정치권이 ‘논란’이라고 치부할 때마다 현장에서 학생들의 반발심과 백래시가 커진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한 활동가에게 유튜브 썸네일, 커뮤니티 글 제목들, 그리고 이를 그대로 보도한 언론 제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한 활동가는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청소년이 혐오 표현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승인해준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청소년이 힙하고 멋있는 ‘이준석스러운’ 느낌이 되는 것이다. 권력을 승인받으면서 악영향이 커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 사진출처=비마이너.(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 사진출처=비마이너.(비마이너 측의 동의를 구한 사진 게재입니다.)

 

언론 프레임에 고스란히 피해받는 장애인들

실제로 기사를 접한 신체장애인 고경호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지원가는 “언론의 악의적인 갈라치기에 장애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경호 동료지원가는 “안산 선수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에는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들어가있지 않은데, 언론이 ‘논란’이라며 정치 이슈화하면서 프레임을 씌워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들이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전장연의 모든 요구들이 소수자들의 이기적인 요구인 것처럼 축소시켜버리고, 시급하지 않은 일처럼 만들어버려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도 “한국에서는 전장연 시위를 절실한 외침으로 보기보다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시위의 피해를 강조하거나, 특정 정파적 목적이나 이익과 결부되어있다는 의심과 비난들이 큰데, 이러한 호의적이지 않은 시각의 많은 부분이 언론보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사람이 전장연 시위를 지지하니까 정파적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라며 “소수자의 연대 활동을 싸잡아서 연결지어 낙인찍고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