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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위선적 이중성, '공무원 고용세습'은 괜찮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복무 중 희생된 군인과 근무 중 희생된 노동자, 뭐가 다른가"

 

 

 

몇 해 전 일이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조항이 있다고 정부와 언론이 맹비난을 가했다. 1980년대 서울대 주사파 핵심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전향했다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때 하 의원은 '고용세습원천방지법을 발의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여기에 '글로벌 Top 5' 자동자회사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고용세습' 단체협약을 체결한 13곳의 회사 이름이 나와 있다.

정부의 '고용세습' 전수조사 요구했던 하태경

하 의원은 현대자동차 단체협약이 "재직 중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자녀 1인에 한해 당사 취업을 희망할 경우 인사원칙에 따른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우선 채용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두었다고 비난했다. 

13곳 중 하나인 현대종합금속의 단체협약은 "회사는 감원자 및 정년퇴직자, 상병으로 퇴직한 자의 부양가족을 사원모집 시 우선적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다. 

하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건넨 자료를 근거로 "13곳의 노조가 단체협약 내 고용세습 조항을 유지하고 있으며, 13곳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9군데로 가장 많았다"고 비난하면서 "모든 청년들에게 공정한 취업기회 제공"을 주장하며, "민주노총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정부의 고용세습 전수조사"를 요구했었다. 

당시 하 의원 같은 우익 정치세력은 민간기업들이 노사 자율로 합의한 '고용세습'에 광분하면서, 일하다 죽거나 다친 노동자나 회사 발전을 위해 애쓴 노동자의 자녀에 대한 우선채용이 공정한 기회를 망가트린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민간기업에서 노사 자율로 체결한 단체협약의 '고용세습'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치세력이 희한하게도 윤석열 정권의 등장을 앞두고 '고용세습'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집어넣었다.

"고용주로서 국가의 의무를 다한다"는 미명 하에 "군무원 경력경쟁 채용 시 유가족 채용 추진, 공무직 근로자 채용시 유가족 취업 관련 우대조항 반영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필자는 "고용주가 자신을 위해 일하다 죽거나 다친 노동자의 가족을 우대하여 채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조직 발전을 위한 노동자의 자발적 기여와 헌신을 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모범적 고용주"로서 민간기업들에 본을 보여야 할 국가가 나서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던 이의 가족에게 우선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거나 희생당한 이들의 가족에 대한 '우선채용'을 자신들이 장악한 국가기구가 하면 정당한 일로 여기고, 민간기업이 헌법으로 보장된 단체교섭을 통해 노사 자율로 하면 '고용세습'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가해를 가하는 한국 지배 엘리트들의 위선적 이중성이다. 

'모범적 고용주'로서의 국가  

군무원에 대한 '고용세습'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인수위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범적 고용주(a model employer)"라는 노사관계학 용어를 거론했다. '모범적 고용주'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운동이 대한민국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방향이기도 하다. 

공공부문의 고용주인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그 모범을 따르게 되고, 그 결과로 국민경제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게 '모범적 고용주' 이론의 골자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준수하고,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기본적 노동기준을 준수하고, 법에 보장된 주 40시간을 지키고,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의 정책과 사업이 모범적 고용주로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고용세습' 논란의 근본 이유 

'고용세습' 단체협약이 문제가 되었을 때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조항만 있을 뿐 실제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필자는 노조 입장이 너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 느꼈다. 

마흔 여개에 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사회복지 수준이 '상위 Top 5'가 아니라 '하위 Top 5'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글로벌 상위 Top 5' 기업에서 일하다가 희생당한 노동자의 가족에게 '우선채용' 기회를 제공하는 게 당연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고용세습' 논란은 한국 노동운동의 주력부대인 현대자동차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이는 현대자동차노조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연봉이 1억원에 달하는 고졸 학력의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고용세습' 논란은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은 커녕 대학교 졸업장도 없는 '공돌이'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공장에 갈아 넣은 댓가로 연봉 1억을 받는 게 배 아팠던 한국 지배 엘리트들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 전쟁에 다름아니었다. 

한국에 'Top5'는 얼마나 있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현대자동차는 지난 30여년 동안 거의 매년 파업을 하고 엄청난 임금인상을 쟁취했지만 노조 때문에 망할거라는 저주를 뚫고 '글로벌 Top5'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도 '글로벌 Top10'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다른 영역은 어떤가? 예를 들면, 법률의 편파적 적용으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를 무너뜨리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 등 한국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을 배출한 서울대학교는 지금 '글로벌 Top5'가 되었는가? 

현대자동차 고졸 노동자들의 1억 연봉과 '고용세습'을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그 많은 지식인들이 속한 대학과 연구소 중에 '글로벌 Top10'이 하나라도 있는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인 노동계급에 대한 대우 

박정희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산업전사(industrial soldiers)'라는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전사, 즉 군인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을 통해 하나의 '사회계급(a social class)'으로서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산업화를 성취하고 민주화를 성공시킨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보편적 사회복지를 쟁취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한국의 지배 엘리트가 보편적 복지 노선을 거부하고 잔여적 복지 노선을 강제해왔는데, 이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지배 엘리트의 정치적 헌신과 경제적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될 수 있다.

보편적 사회복지라는 출구가 막힌 상황에서 한국의 조직노동(organised labour)은 기업복지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그 결과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임금 수준은 물론 복지 수준도 차이가 나는 반동적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조직노동의 즉자적(卽自的) 요구에 편승한 한국의 지배 엘리트가 기업별 노사관계를 고착시키면서 '사적 기업복지 체제(private corporate welfare regime)'를 강화시켜 온 것이 대한민국 복지의 역사다.

군인보다 더 많이 죽어간 노동자 

대한민국 정부의 통계로 하루 8명이 일하다 죽는다. 일년이면 3천명에 달하는데, 여기에 70년을 곱하면 21만명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산업재해사망 통계는 현실의 10%라는 게 정설이다. 일 때문에 아프거나 다치는 노동자 수는 정부 공식 통계로 일년에 10만명을 넘는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역시 대폭 축소된 수치다.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지난 70년 동안 복무 중 죽거나 다친 군인 수는 근무 중 죽거나 다친 노동자 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복무 중 희생된 군인의 유족에게 '우선 채용'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면, 근무 중 희생된 노동자의 유족에게도 '우선채용' 기회를 보장하는 게 순리다. 

'고용세습'과 '우선채용'은 다르다 

노사가 자율로 체결하는 단체협약은 '고용세습' 조항이 아니라 '우선채용' 조항을 담고 있다. 사실 '고용세습'은 한국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저지르는 작태다.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해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되었다는 한동훈 부부가 자기 딸인 알렉스 한(Alex Han)에게 제공하고 있는 '부모 찬스'야 말로 세련된 수법의 '고용세습'에 다름아니다. 경북대학병원 의사인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이 딸과 아들을 의사로 만들려 들여온 여러가지 공들이 '고용세습'이다.

당사자는 물론 부인과 자식들까지 온 식구가 풀브라이트 장학생인 한국외국어대총장 출신 김인철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공익을 갉아먹는 법기술자들의 집단인 로펌 김앤장에서 고액을 챙긴 한덕수 총리 후보자도 조국 일가를 캔 형사적 노력의 절반만 들이면 '고용세습'에 연루된 정황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복무 중 희생된 군인의 유족에게 우선채용을 보장하는 것이 '고용세습'이 아니듯이, 근무 중 희생된 노동자의 유족에게 우선채용을 보장하는 것도 '고용세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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