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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의 뻔뻔한 변명, 인노회 동료들을 두 번 죽였다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공동취재) 2022.8.18 ⓒ뉴스1 
 
“용서가 안 되더군요.”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과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A씨가 김 국장을 두고 한 말이다.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김 국장은 “인노회는 이적단체였다”고 강변했다. 2020년 대법원 재심 판결로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고 결론이 났음에도, 김 국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30년 전 공안정국의 인식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다.

“인노회는 이적단체” 억지 부리는 김순호

김 국장은 행안위 업무보고에서 ‘인노회가 민주화운동 단체냐, 이적단체냐’는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의 질의에 “이적단체”라고 단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2020년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지금도 이적단체냐’고 따졌을 때도, 김 국장은 “(대법원 판결 전까지) 27년간 이적단체라는 판결이 유지됐다”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의 잇따른 질타에도 김 국장은 “제가 분명히 했던 운동은 노둥운동이 아니라 주사파운동이었다”며 “마찬가지로 인노회도 주사파에 심취돼있는 학생운동권 사람들이 주도해 만들었던 단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주사파운동’에 회의를 느껴 인노회를 나와서 경찰에 자수하러 갔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야당 의원들을 향해 되레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나요. 계속 주체사상에 심취되어서 극단적으로 노동당과 수령에 복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게 정의로웠을까요, 그걸 버리는 게 정의로웠을까요?”

그의 인사권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마저 김 국장의 말에 동조했다. 이 장관은 “인노회 성격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되는 거 같다”며 “2020년 대법원 판결은 이적성까지 이르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몇 년 전 대법원 판결은 인노회 회원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니 이적단체라서 인정하지 못 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적단체 아니다” 대법원 판결,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이처럼 경찰을 지휘하겠다던 고위공직자들이 대법원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국회 행안위의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 겨우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을 하고 계신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라며 혀를 찼다.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밝힌 것처럼, 실제로 인노회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15명 중 14명이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 인노회 회장이었던 안재환 씨도 그중 한명이다. 안 씨는 민중의소리에 2007년 8월 3일자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보내왔다.

남은 한 명인 신 모 씨는 인노회뿐만 아니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차장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 때문에, 보상심의위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다. 신 씨는 이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 역시 보상심의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 장관은 이를 두고 ‘인노회는 이적단체’라고 강변한 셈이었다.
 
과거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회장이었던 안재환 씨의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 ⓒ안재환 제공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사람들이 인노회를 지하조직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인노회는 반공개단체였다”며 “합법조직이었던 만큼 반공법(국가보안법)으로 걸 수 없었는데 무리하게 걸고 나섰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민주항쟁 이후) 88년은 지하조직이 합법공간이 된 지상으로 올라오던 시점이었다”며 “이때 인노회가 표적이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인노회 회장이었던 안 씨도 지난 7일 경기도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린 ‘제32주기 고 최동 열사 추모제’에서 인노회는 ‘대중공개단체’였음을 강조한 바 있다. 안 씨는 “1988년 봄에 창립할 때 인천에서 대중공개단체로서 체육대회를 했다”며 “당시 정회원이 150~200명 정도 됐는데, 임금인상 시기에 많았던 파업현장을 회원들과 같이 격려방문하고 지원투쟁을 했던 것이 지금도 저희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안 씨는 “그런데 저희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서 탄압을 받았다. 처음엔 무죄가 나왔는데 나중에 뒤집히면서 고난의 시절을 맞았다”며 “하지만 결국 법정 투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고, 조만간 최동 열사의 활동도 모두 무죄가 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순호의 ‘색깔론’ 공격,
자기 의혹 덮기 위한 변명거리에 불과”


그런데도 김 국장이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동료들을 경찰에 밀고하고 그 대가로 경찰로 특채됐다는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동료들을 ‘색깔론’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년 김순호’도 엄혹했던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때로는 그가 안타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던 동료들의 마음은 이제 완전히 돌아서고 있었다.

김 국장이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인노회는 이적단체”라고 고집하는 것은 자신이 받고 있는 의혹을 덮기 위함을 뿐이라고 동료들은 보고 있다. 인노회가 ‘이적단체’여야만 김 국장이 경찰에 특채된 이유가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가 아니라 인노회의 활동에 회의를 느껴서 자수했기 때문이라는 게 성립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씨는 “김순호는 인노회가 주사파라서 도망간 게 아니라 경찰들이 막 잡으러 다니니까 무서워 도망간 거다. 김순호가 스스로 자수하러 갔다고 말하지 않나”라며 “그래놓고 이제와서 주사파니 뭐니 헛소리를 하면서 (자수하러 간 걸)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는 “무서워서 도망갔다더니 왜 경찰에 자진출두를 하냐. 이 기회에 다 불고 면책을 받거나 경찰이 되는 기회를 얻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으면, 말 그대로 처벌을 감수하고 간 것”이라며 “하지만 만약 처벌을 감수하고 갔던 거라면 저런 (주사파니 하는) 소리는 못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A씨는 “그땐 ‘주사파’란 말도 막 돌아다닐 때가 아니다. ‘NL’이냐 ‘PD’냐였다. ‘주사파’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건 93년 정도 됐을 때였다”며 “그런데 김순호가 지금에 와서 (자신이 받고 있는 의혹을) 포장하려니 ‘주사파’니 뭐니 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A씨의 말처럼 인노회 사건이 터졌을 당시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김 국장이 언급했던 ‘주사파’나 ‘주체사상’이란 표현은 찾기가 힘들다.
 
1989년 2월 12일 한겨레 보도. 인노회에 관해 ‘주사파’ 또는 ‘주체사상’이라는 언급은 없다. 다른 언론매체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료사진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도 “80년대는 군사독재 정권과 싸우고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주체사상뿐만 아니라 맑스-레닌주의 등 여러 사상을 모색하고 논하는 시대였다”며 “그런 걸 두고 이제 와서 ‘주사파’라고 공격하는 것은 (김 국장 스스로 의혹을 덮기 위한) 변명거리, 자기합리화 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국장과 함께 인노회에서 활동했던 B씨도 “저는 (인노회 윗선이 아니라) 밑에 있어서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김 국장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전제한 뒤 “그 당시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화국면으로 접어든 시기라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관한 책이나 자료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때 레닌 책을 봤다고 해서 모두가 레닌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황당해했다.

김순호는 기억도 제대로 못하는 과거,
피해는 고스란히 인노회 동료들에게만 


김 국장이 ‘색깔론’을 들이밀며 자신의 경찰 특채 정당성을 주장하는 동안, 60대 나이에 접어든 인노회 회원들은 지금 또다시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에 갇히고 있다. 인노회 사건 이후 조직이 와해되면서 뿔뿔이 흩어져 30년 넘게 생업을 이어가기에 바빴던 평범한 이들이다. 

심지어 자신들을 밀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대공경찰의 길을 평생 걸어 오늘날 경찰국장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라면,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런 김 국장이 여전히 자신들을 ‘주사파’, ‘이적단체’로 보고 있으니, 30년 전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민중의소리가 김 국장의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노회 회원들이 신분 노출을 꺼려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김순호가 나를 걸고 넘어질 것 같다”고 우려하면서다. 

부천에서 인노회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뒤 풀려나와 ‘절친한 친구 김순호’가 잠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누나네 집을 찾아갔던 B씨는 그날 만났던 김 국장의 돌변한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날 강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국장은 최근 MBC라디오에서 B씨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과거를 모두 잊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B씨는 인노회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하고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인노회만 부각되는 건 저희에게도 부담이 돼요. 김순호가 ‘주사파’라는 식으로 인노회를 몰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이걸 두고 싸우면 ‘주사파냐, 아니냐’ 하는 공안정국으로 다시 몰고 갈까봐 걱정이에요. 오히려 이 친구가 황망하게 경찰이 되고 경찰국장까지 되는 과정을 더 짚어야 하지 않겠어요?”

안 씨는 “저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왜 인노회가 (공안정국) 탄압의 첫 번째 자리에 섰고, 누가 우리들의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활동을 국가보안법 위반의 틀에 가둬두는 짓을 했는지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30년 전 인노회 회장으로서 저도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이걸 밝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국장을 잘 알고 지냈던 인노회 동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진실’이다. B씨는 ‘김 국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너무나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훗날 한 번 (옛 일을) 털고 만나자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 친구에 대한 진실이 확실하게 밝혀져야 저도 그 친구를 만나는 게 가능하겠죠?”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톨령 집무실 앞에서 경찰국 신설 철회, 김순호 경찰국장 경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8.18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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