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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③] 그곳은 참사가 일어나선 안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22.11.06 17:35l최종 업데이트 22.11.06 19:01l
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편집자말]

이태원에 가는 길, '미움받을까' 두려웠습니다 

7.
선생님, '오늘은 마음이 어떤가요?'라고 물으셨지요.
사과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선생님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하셔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는 길에 이태원역에 들러 추모하고 가시는 거 어떨까요?'라고 하셨고 저는 조금 망설였지요.

상담 선생님 : "OO씨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고, 상담을 쭉 해본 결과 회복탄력성이 좋고,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참사 현장에서 무언가 행동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집으로 온 것에 대해, 현장에서 충분히 애도를 하지 못해 미안함과 자책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길로 곧장 이태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가는 길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왜냐고요? 그냥 내가 미움받을까 봐요.
그냥... 그 어린 영혼들이 나를 미워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이태원 꽃집 'keepeen'은 추모 가시는 분들을 위해 무료 국화꽃을 나눠줬다.
▲  이태원 꽃집 'keepeen'은 추모 가시는 분들을 위해 무료 국화꽃을 나눠줬다.
ⓒ 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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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꽃집 'keepeen'이라는 곳 사장님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추모 가시는 분들을 위한 무료 국화꽃을 드리고 있습니다. 누구든 오셔서 가져가세요, 시간 상관없이 가게 문이 닫혀도 가게 앞에 배치해두겠습니다'라고 남기셨더군요. 이 글을 보고 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누군가 일면식도 없지만 함께해준다.' 그리고 함께 기꺼이 동행해준 친한 언니도 저의 추모 길을 응원해주었어요.


꽃집에 들러 국화꽃을 가지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도착해서 편지를 쓰고 붙이고 헌화를 하고 절을 두 번 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어요.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며 살아갈게요.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응어리진 것이 풀려나가고 가슴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오길 잘했다 싶었고요.

그런데 옆에서 어떤 할머니랑 아주머니가 싸우시더라고요.
할머니가 '놀다가 죽은 걸 뭐 어쩌라는 거냐'라고 하셨더군요.

그 할머니에게 대놓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어요.

'할머니, 그러니까 이게 어떤 거냐면요.
트로트 좋아하세요? 임영웅 같은 사람이요.
임영웅 송가인 이런 사람들이 무료로 트로트 축제를 열었대요, 놀러 가고 싶으시죠? 거기 놀러 갔다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전국노래자랑, 거기 구경갔다가 그냥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소리예요.'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그러냐'는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002년 월드컵 때 성인이었나요?
그때 재밌게 잘 놀러 가셨지요? 전 국민이 축제 분위기였으니까 젊은 층 모두가 길거리에서 놀았잖아요. 그때 깔려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소리예요. 

안녕하세요, 당신은 이런 거 저런 거 다 놀지도 않고 집돌이 집순이이신가요?
혹시 스트레스 어떻게 푸세요? 맥주 한 잔? 피시방(PC방)?
동네 노가리 집 맥주집에 갔다가 갑자기 사람이 떼로 몰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예요.  
피시방에 갔는데 피시방에서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고요.

쇼핑하러 명동에, 익선동에, 코엑스에 갔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소리예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나에게 왜 백화점에 갔냐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심리상담 치료 후 이태원 추모 현장에서.

"인정해주세요,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는 걸" 
 
지난 5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  지난 5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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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상담 선생님 : "가지고 있던 감정 중에 '혼란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슬프고 화가 나고 미안하고 우울했다가 불안하고 깜짝 놀라서 깨고, 이게 공통적인 감정 상태라고 하셨어요. 이런 것들이 '혼란스럽다'고 느껴지세요? "

나 "아니요, 저는... 저는 사실 강한 사람이에요. 근거 없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살아오며 큰 몇 번의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그것을 잘 겪어내 왔어요.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성적 비관으로 세상을 등지기 전날, 반장이었던 저는 그 친구와 마지막 대화를 했던 사람입니다.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심한 거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 친구 프린트물 훔쳐 가서 수행평가 점수 만점을 받으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힘없이 가던 모습이,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온 그 순간이, 그다음 날 학교 책상이 비워져 친구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걸 바라보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잊어야 산다고 장례식이나 묻힌 곳을 알려주지 않아 16살 어린 마음에 응어리지게 했을 때도, 27살 초임의 담임 선생님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큰 상처인 사건이니 우리 서로 잊고 각자 잘 살자.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하며 졸업식을 마쳤을 때.

마치 다리가 부러졌지만 깁스를 하지 않고 두 다리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며 없었던 일인 양 덮어놓고 26살이 되었을 무렵.

트라우마라는 것이 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서도 발병을 하는 거구나 깨달았고, 그때도 글을 쓰며 건강한 방법으로 잘 회복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인생의 난관이 생길 때, 저만의 극복 방법이 명확히 있는 편이었기에 혼자서 잘 해결해 내는 편이었어요.

운동을 했고, 글을 썼고, 등산을 갔고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루틴을 지키고자 노력했고요.
영화를 봤고, 시나리오를 쓰고,
전국의 페스티벌을 다녔고, 음악을 즐겼고
클럽을 갔고,
사는 게 퍽퍽하고 외로울 때는
일부러 짝사랑하는 남자를 만들어
그 남자 한 번 더 구경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오늘만 살자,
그 남자한테 오늘은 초콜릿을 건네봐야지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를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내 잘못, 저것은 저 사람의 잘못
분리를 잘 시키며 성숙하게 잘 판단하는 사람이었어요.
속상하지만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을 잘 판단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습니다.
참사 이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뉴스를 보는데
속이 매스껍고 두통이 시작되더니 구토할 것 같은 증상이 일었어요. 

그다음 날은 이런 증상을 이겨보려 운동을 갔지만
발이 땅에 닿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무섭더라고요, 바깥이.
운동이 되지 않아요 선생님.
그게 저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고 무서움인지,
아실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통제가 되지 않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게
저에게 얼마나 좌절감이 크고 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지
공감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선생님,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어요
잠을 자지 못하고 심장이 빨리 뛰고
밥이 들어가지 않는 현상은
어찌 보면 저에게 놀랍지 않아요
힘들면 찾아오는 증상이었으니까요."

상담 선생님 : "대견해요 잘 살아오셨어요.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자아가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OO씨 자아가 강할수록 견디지 못할 큰 사건이 다가오면 더 크게 무너집니다. 줄곧 지금까지 내가 알아서 잘 컨트롤 해오던 나의 세계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에요.

삶은 무작위의 고통이 던져지는 거라서 크고 작게 우리 뒷통수를 치지만 지구를 삼킬만한 행성급 돌맹이가 뒤에서 던져지면, 별 수 있나요. 맞고 쓰러져야죠.

그동안은 타격감이 없이 무수한 돌맹이를 잘 받아치고 요리조리 잘 피하는 능력자였다면 이번은... 그냥 핵폭탄급 돌맹이인 거예요. 

자아가 강한 사람이 지금 나 맞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정해주세요,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는 걸."


- 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던, 심리상담치료사와의 대화에서.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④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http://omn.kr/21i3t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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