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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소방관들 “특수본 수사로 이태원 참사 원인·책임 어떻게 밝히나”

 
경찰청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 ⓒ뉴시스 
 
현장 경찰관과 소방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망에 참사 당시 현장을 직접 대응했던 경찰관과 소방관만 걸리고 정작 참사에 책임져야 할 윗선은 쏙 빠져 나가있다는 불만이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이태원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지면서 윗선의 책임 회피에 대한 내부 분노는 더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특수본의 수사만으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 근무자들에게 집중된 수사, 윗선은?”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A씨는 14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같은 경찰서에서 정보계장으로 일하다가 경찰에 입건되고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던 정 모 경감이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 “저희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며 “아주 침통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고인은 이태원 참사 후에 핼러윈 위험분석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A씨는 해당 수사에 대해 “(참사) 원인 규명에 필요한 사안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정보 보고서 삭제 이유에 대한 수사가 이번 참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인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책임자 규명을 위해) 사실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지금으로선 수사가 너무 현장 근무자들에게 집중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누가누가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왔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경찰서 소속이 아닌 경찰관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찰청 소속 경정급 B씨는 민중의소리에 “참담하다”며 “지금 경찰들은 ‘경찰이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강하면서도, ‘왜 경찰 지휘부와 정부 수뇌부는 가만히 있고 현장 경찰들만 가지고 난리냐’는 생각도 강하다. 서울경찰청도, 경찰청장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가만히 있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현직 경찰관인 강대일 전 전국경찰관 직장협의회 위원장도 이날 ‘경찰인권센터’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경찰조직은 항상 그랬다.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계급 높은 지휘부는 살아 남고 힘 없는 현장 직원들은 제대로 된 항변 한번 못하고 말없이 사라져 갔다”며 “참으로 슬픈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경찰뿐만이 아니다.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해 구조 활동을 벌였던 소방관들은 더 크게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특수본이 참사 당시 구조 활동을 지휘했던 용산소방서장과 용산소방서 지휘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이날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합방재센터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용산소방서장, 지휘팀장 입건 그리고 출동한 대원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됐다”며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기도 전에 수사의 칼날이 현장 출동 소방관으로 맞춰 내려온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날 행정안전부 장관도, 서울시장도, 용산구청장도 없었다. 유일하게 참사 현장과 함께한 지휘관이 용산소방서장이었다”며 “그런데 용산소방서장과 용산서방서 지휘팀장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입건됐다. 현장에서 죽도록 뛰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결과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인가”라고 비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국민은 알고 있다.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 처벌과 하위직 소방관들의 대한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2022.11.14 ⓒ뉴스1

“이상민 행안부 장관, 최정점에 있는 책임자”

반면 윗선에 대한 수사나 책임을 묻는 조치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장도 여전히 경찰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특수본의 수사를 두고 ‘셀프 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재난안전의 총괄 책임자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사퇴 압박 여론도 커지고 있지만, 그 역시 여전히 건재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난 이날도 특수본은 행안부에 대해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그러는 사이 이 장관은 정부가 이태원 참사 후속 조치로 출범한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의 단장까지 맡았다. 이태원 참사 정부 책임론의 중심에 있는 이 장관이 거센 사퇴 요구는 묵살한 채 종합대책 수립 과정 지휘에 나선 셈이다.

이와 관련해 B씨는 “용산경찰서에서 경비경력 지원을 요청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꼭 요청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서울경찰청도 직권으로 경비경력을 운용할 수 있다”며 “서울경찰청장에겐 직접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서울경찰청장은 어차피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가만히 있을까. 그건 서울경찰청장이 사라지면 그다음엔 여론이 경찰청장의 책임을 묻게 될 수밖에 없고, 경찰청장이 사라지면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용산경찰서장만 날리고 가만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도 “이 장관은 경찰의 최정점에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스스로가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라며 “권한이 온다면 책임도 같이 오는 거 아니겠나”라고 이 장관의 책임을 따졌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소방청지부는 이 장관을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직접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소방청지부는 이태원 참사가 재난관리 예방 및 안전조치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에 따라 재난 예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이 장관에게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세안 및 G20 정상회의 참석 등 동남아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2022.11.11 ⓒ뉴시스


“특수본 수사의 한계, 국정조사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수본의 수사만으론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제대로 책임을 따지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위급 C씨는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경찰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경찰만 잘못한 건 아니다. 경찰이 잘못한 만큼 책임지고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걸로서 (진상규명이) 완성되는 거라고 볼 순 없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국가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고도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경찰 만능주의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이젠 버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런 면에서 특수본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든다고 C씨는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수사를 하라고 지시했으니 수사를 하면 된다. 다만 성역 없이 해야 한다”며 “재난안전과 관련해 총책임자는 행안부 장관 아닌가. 그런데 행안부 장관의 참사 당일 행적조차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관실도 압수하고 폰도 압수하고 다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특수본이 그렇게 성역 없는 조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특수본의 수사가 일선 경찰에 대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회의에서 윤 경찰청장을 향해 “위험 상황에 대한 관리가 안 되어서 거기에서 대규모 사고가 났다면 그것은 경찰 소관이다. 이걸 (다른 것과) 자꾸 섞지 말라. 이것을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결국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정조사나 범정부 차원에서의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B씨는 “수사는 사법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행정적,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영역도 있지 않나”라며 “그런데 특수본은 범죄에 대한 책임 말고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점을 찾는 데에는 집중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용산경찰서에서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는 반면, 서울경찰청에서 경력운용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건 범죄로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서울경찰청이 이태원 인파 관리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반복된다면 참사 역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마냥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야당에서도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가 원인과 결과를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 아니냐. 수사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든 국정조사든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특별취재팀 최지현 기자 cjh@vop.co.kr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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