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이 나라
안전운임제란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최소운임을 보장해 종사자들의 과로, 과적, 과속을 예방하는 제도이다. 안전운임제는 2020년에 시작됐고 수출입 컨테이너 및 시멘트 품목에만 한정해서 시행되고 있다. 2022년 3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것(한시적 시행을 ‘일몰제’라고 함)을 지난 1차 파업 때 2022년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이번 2차 파업은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적용되는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떠한가. 일하는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요구를 대통령은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며 노동자를 테러리스트 취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대화’하고 ‘협상’하자고 제안했으나 정부는 이미 이들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며 ‘여기서 물러나지 않고 불법파업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한다. 대화나 협상이 아니라 타협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계속해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테러리스트와 타협 없다’는 말과 겹쳐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불법 파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노총을 향해 “민폐노총”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을 사회적 재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가볍게 입에 올린다.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는 ‘민폐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이 정치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는 게 한국 사회의 재난이다.
현 정권의 사고방식에서 불법이 아닌 파업이 있겠는가 싶지만 용어정리부터 하자면 불법 파업은 ‘현행법상 정당성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파업’이다. 정당성 요건에는 △주체 △목적 △절차 △방법 4가지가 있는데 ①쟁의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하고 ②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된 사항이어야 하고 ③찬반투표, 조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며 ④쟁의 수단이 폭력, 파괴 등을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의 파업은 합법이며 이번 화물연대 파업도 명백히 합법적인 파업이다. 법이 권력자들을 비호하기 위해 존재할 때 우리는 그 법을 거스르는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그 법을 바꿔내야 한다. 노예제 폐지 운동도 여성 참정권 투쟁도 모두 불법이었다. 우리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어 차별, 착취, 폭력을 용인하고 유지하는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불법으로 여겨졌던 보편의 가치를 쟁취한 과정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번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그런 헌법과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범위 내에 있는 합법적 행동이다.
너무나 기만적인 정치의 언어
한국의 고용구조는 철저하게 자본가에게 최대의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식을 갖는 까닭에, 일정한 업무지시자와 근무장소가 존재하는 노동자도 ‘사장님’인 경우가 많다.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매달 꼬박 최저임금을 보장한 급여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4대보험이나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 되었다. 화물운송 노동자들도 대부분 사장님이다. 그래서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을 위한 고용구조를 만든 국가는, 이제는 기업의 대변인까지 자처하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한 시멘트 업계 임원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국가에 감사드린다’라는 말까지 전할까.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도 외면당한 채 철저한 사각지대로 밀어 넣어진 이 사장님들만 조용히 착취당하고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지켜보며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인권이라는 것이 스스로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자일수록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그 역할을 국가에게 위임한 것이 현대 사회의 구성원리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부는 기업과 한 몸인 수준이다. 0
정부와 기업이 만든 이 고용구조에서 화물노동자들은 자기 차를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며, 특수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다. 매우 취약한 고용의 형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을 취약한 상황으로 밀어넣은 이 국가는 사장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했다. 사장님들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데 누가 누구에게 강제로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일까. 국가의 필요에 따라 언제는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또 언제는 노동자로 여기는 것인가? 노동기본권 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생존을 위한 노동을 멈추고 있는데 이 정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치가 떨리도록 기만적인 정치의 언어다. ‘21세기 긴급조치’이자 ‘계엄령’이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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