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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야유하고, 팝콘 먹고…의장 못 뽑아 아수라장 됐던 미국 하원

개회 나흘째인 1월 6일, 여전히 투표에서 과반을 못 넘겨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지 못한 공화당의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가 본회의장에 있다. ⓒ사진=뉴시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공화당, 캘리포니아)가 결국 굴복하고 당내 강경 우파 20명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개회 닷새째인 7일 새벽, 15번째 투표에서 가까스로 하원 의장으로 선출됐다. 하원이 의장 선출 투표를 10차례 넘게 진행하는 것은 1859년 이래 처음이다.

폴리티코가 자세히 보도했듯이, 의장 선출이 이틀째 무산돼 세계적인 화제가 됐을 때 하원의 모습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미국 하원 의원들은 점점 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수 시간씩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의원들은 수다를 떨었다. 케빈 매카시가 의장 당선에 연속으로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좌절감(공화당)과 즐거움(민주당)에 빠져서 말이다.

이때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마이클 맥콜 의원(공화당, 텍사스)이 하원 의장을 뽑지 못한 상태가 하루하루 지속될수록 공화당의 통치능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고 공화당의 분열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폭스 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섯 번째 투표도 실패로 돌아가자 매카시 의원 쪽으로 몰려가는 기자들이 그를 밀치면서 그가 생방송 중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기가 지지하는 매카시의 선출을 위해 SNS에 글을 올렸다. 여느 때처럼 대문자로 뒤덮인 메시지는 그리 자신감 있지 못했다. ‘공화당 의원님들, 위대한 승리를 부끄러운 엄청난 패배로 만들지 말라. 지금은 자축할 때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케빈 매카시는 잘 할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빅토리아 스파츠 의원(공화당, 인디애나)이 4차 투표부터 매카시에 대한 지지에서 기권으로 돌아섰을 뿐 매카시와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4일(현지시간) 득표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친 댄 크랜쇼 의원(공화당, 텍사스)은 매카시를 반대하는 파벌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선거 때 정치컨설팅 회사들이 하라고 했던 진부한 얘기를 되풀이하는 게 지겹다’ 더 솔직하게 ‘비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당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그냥 닥쳐. 그게 내 메시지다’라고 했다.

화려하게 준비된 하원 선서 행사에 대한 기대가 점점 의구심과 절망으로 바뀌면서 여기저기서 피로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장 선거가 빨리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지면서 당선인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위해 한껏 차려입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 아기가 있는 의원들은 휴대품 보관소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길어지자 지미 고메즈 의원(민주당, 캘리포니아)는 이 방을 기저귀 교환 장소로 쓰기도 했다.

2년 동안 언론에서 분열된 모습이 부각됐던 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공화당이 우왕좌왕하는 광경을 환영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사태를 수습에 분주한 동안 하원 본회의장에 팝콘을 들고 들어가는 자신의 셀카를 트위터에 올렸다. 퍼즐 푸는 모습이 포착된 스캇 피터스 의원(민주당, 캘리포니아)을 포함해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핸드폰을 보며 또다시 일어나 한명씩 투표하기를 기다렸다. 6번의 투표에도 민주당의 단결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프리스 민주당 후보는 매번 212표로 매카시의 득표수를 앞섰다.

‘미국에는 지금 하원 의장이 없지만 하원 휴대품 보관소에는 타코가 있다’고 트윗한 짐 하임스 의원(민주당, 코네티컷)처럼 민주당 의원들이 상황을 즐기는 이틀 동안 공화당이 부딪히는 긴장의 순간도 있었다. 캣 캠맥 의원(공화당, 플로리다)이 투표가 이뤄지는 동안 음주를 한 민주당 의원들이 있다고 하자 민주당은 야유를 보내며 항의했다. 민주당은 이 발언으로 캠맥 의원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의장이 없어 징계 절차를 포함한 하원 규정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하원 규정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한 의원은 대표적으로 의원들이 자주 질책을 받는 규정을 어기고 일부러 본회의장에 외투를 입고 들어가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한편 양당의 일부 의원은 예상치 못한 동맹도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몇몇 민주당 의원은 소위 ‘통합 하원 의장’을 논의해 보자고 공화당에게 제안했고, 켄 벅 의원(공화당, 콜로라도)은 매카시가 계속 실패한다면 매카시 대신 스티브 스컬리스(공화당, 루이지애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내세우자고 제안했다.

다른 의원들은 의장 선출에 실패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세계가 미국의 통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미국이 무능하다는 인상을 주면 미국의 적들이 대담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란은 오히려 커져갔다. 아직 선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장실을 사용하는 매카시를 두고 맷 게이츠 의원(공화당, 캘리포니아)은 국회의사당 관리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항의 서한을 트위터에 올렸다. ‘무단 점거자를 고발합니다’.
 

“ 정혜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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