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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마' 검사 출신 대통령은 결국 그 흔한 '전관 변호사'가 돼 버렸나

[박세열 칼럼] '강직한 검사'는 어떻게 '가해자'를 변호하게 됐는가

 

 

 

 

 

한국 사회에서 보통 검사는 옷을 벗으면 '전관 변호사'가 된다. 엊그제 범죄자를 잡아 넣던 검사는 오늘 범죄자를 변호한다. 이상한 모습이지만 자연스러운 모습니다.

 

지난 2015년 '대장동 로비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은 검복을 벗은 후 변호사가 됐고, 그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은 대장동 개발로 만들어진 회사 화천대유의 자문을 맡았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상해 보이지만, 강 전 지검장에게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2015년 당시 수원지검은 남욱 변호사가 공영개발을 막으려 정·관계에 불법 로비한 혐의로 그를 구속한 것"이라며 자신이 속한 법무법인이 자문한 화천대유는 별개의 회사라고 주장했다. 남욱 변호사를 구속한 검사는, 그 남욱 변호사가 가담한 회사에 자문을 한다. 이상하지만 문제가 없다는 이 상황.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직업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는 없겠다. 하지만 온갖 범죄자들을 감옥에 집어 넣는 '영감님'들이 갑자기 검복을 벗고 온갖 '범죄자'들을 변호하고, 옹호하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이상하게 볼 자유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 없는 그 흔한 '전관 스토리' 중에 하나다. 

 

전관의 세계는 화려하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검사장을 지내고 퇴임한 후 변호사가 돼 17개월 동안 16억원을 벌었다. 검사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은 변호사로 활동하며 5개월동안 무려 16억원을 벌었다. 그리고 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낙마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홍만표 전 검사장은 변호사 개입 후 '몰래 변론'을 하다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영업 행태가 어떠한지 잘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처벌이 솜방망이니 검사 '전관'들의 화려한 변호 사례들은 성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대통령이 된 검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윤석열 검사는 '강직한 검사' 이미지로 일약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이다. 윤 대통령도 '전관'의 길을 걸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는 2002년 1월부터 2003년 1월까지 1년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윤석열 변호사는 유능했다고 한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기선 인천시장의 무죄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는 다시 환복한다. 같은 법무법인에서 일했던 이명재 변호사가 검찰총장이 되면서 그를 따라갔다. 윤석열 검사는 다시 '범죄자'들을 수사해 잡아 넣기 시작했다. 군부가 힘을 완전히 잃은 2000년대 검찰의 활약은 대단했다. 바아흐로 검사 전성시대라 할만 했다. 그 가운데서도 윤석열 검사는 '특수통' 입지를 다지면서 지방 근무를 하면서도 굵직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서울로 단골 차출됐다.

 

강직한 검사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지내다가 자유인이 됐다. 그리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국민의힘 당원이 됐다. 빠르게 변신했다. 그는 선거 캠페인으로 '문재인 정부에 맞선 강직한 검사'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무너진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면서 어퍼컷을 날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검사 이미지' 외에 가진 정치적 자산이 별로 없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그 정치적 자산마저도 깎여 나가고 있다.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은 주 69시간 정책으로 이어졌지만 여론은 냉랭했고, 만5세 취학과 같은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가 다시 주워 삼켰다. 청와대의 용산 이전은 '노빠꾸 검사'처럼 전광석화로 추진했지만 용산이 상징했던(혹은 상징한다고 믿었던) '소통'과 같은 정치적 밑천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가 각광받았던 때는 화물연대 파업 엄정 대처 때 뿐이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선 '순방 리스크'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윤 대통령 시대 1년간 성적이다. 

 

그러는 사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그 '강직한 검사' 이미지는 이제 그 흔한 '검사 전관'의 이미지로 변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한쪽에서 자신의 충실한 심복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통해 '마약', '깡패', '건폭', '간첩'을 잡아들이고 있지만, 한 편에서는 범죄자가 된 전직 대통령에게, 심지어 자신이 기소해 실형을 살게 한 전직 대통령에게 "늘 죄송했다"며 고개를 숙인다. 검사는 전관이 되어 범죄자에 손을 내민다. 아무리 정치가 "표 되려면 조상 묘도 판다"고 하지만, 표 되려면 자신의 논리적 완결성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쯤 해도 되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기 전 일선 검사들에게 한 권의 책을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화이트칼라 수사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미국의 로버트 모겐소 뉴욕맨해튼검찰청 검사장의 전기다. 윤 대통령은 이 책의 발간사를 직접 썼는데,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모겐소 검사장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 사회의 '거악'은 어떤 것일까. 

 

거악을 수사하고 거악의 죄의 자백을 받고, 거악의 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검사 출신 대통령'에서 한국형 '전관 변호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비교일까. 무엇이 거악인가. 조국 수사가 거악이라고 치면 거기까지인가. '이재명 수사'가 거악 척결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왜 '50억 클럽' 수사나 '주가 조작 수사' 앞에서 그 '정의'는 멈칫하고 있는가. 남은 것이라곤 '깡패, 마약, 건폭, 간첩' 수사인데, 이것이 로버트 모겐소 검사장이 말하는 '거악'인가?

 

검사 출신인 그가 대통령 후보 시절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말한 것에서는 선량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정의의 화신'과 같은 효과를 냈었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발언마저 잊었는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와 같은, 전혀 '검사스럽지' 않은 방식을 추진하면서 그 해법이 '검사 시절부터 구상한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는 벌써 '기만술'에 물든 평범한 정치인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아직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한발 더 나아가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강직한 검사'는 언제부터 '가해자'를 변호하기 시작했을까? 

 

검찰은 2000년대에 안기부, 국정원의 불법 도청 사건을 수사하면서 도청 수사의 노하우를 잘 쌓아 놓았다. 하지만 '전관 검사'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불법 도청'엔 희한하게도 관대하다. '친구가 친구를 도청할 수 있는가'라는 언론의 질문에도 의연하고 담담하게 "일반적으로 말하면 친구들끼리 그럴 수는 없지만 현실 세계에서 국가 관계에서는 그것은 금지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악의적으로 도청한 정황이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범죄를 보고 선택적으로 눈 감는 건 언제부터 시작한 일일까?

 

굴욕과 가장 거리가 먼 '강직한 검사' 이미지의 그가 '굴욕 외교'라는 평을 받고, 미국의 범죄 혐의가 짙은 일에 대해 스스로 '변호사'가 되어 내놓는 말과 행동들을 보면, 검사 윤석열은 정치인이 되기로 하면서 그 흔한 '전관 변호사'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이 선택했던 그 '강직한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왕 '검찰공화국'이란 비판을 받을 것이라면, 지휘고하 상대를 막론하고 '엄정한 법집행'에 입각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취임 1주년을 며칠 앞두고 든 생각이다. '선택적 검찰공화국'은 '검찰공화국'보다 더 나쁘다.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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