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13일 '경제위기와 진보의 대안' 주제 2회 겨레하나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13일 '경제위기와 진보의 대안' 주제 2회 겨레하나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2016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이어진 글로벌공급망 위기앞에 자유무역의 깃발을 내리고 급격히 세계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경제안보'의 개념으로 재설계되어 △해외진출 제조기업을 다시 국내로 돌아오도록 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중국과의 경제 유기성을 벗어나려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전통적 우방인 서유럽과 일본, 한국 등에 노골적 반중국동맹 강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봉착한 위기의 한 가운데 한치 앞도 분간이 어려운 세계경제속에 한국경제는 도탄에 빠진 민생에는 절대 무능한 가운데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소장 변학문)는 탈세계화의 여러 전망과 대안 모색을 위해 13일 겨레하나 평화통일교육장에서 2회 겨레하나평화포럼을 개최해 '경제위기와 진보의 대안'을 주제로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발표와 아영훈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소장, 장창준 한신대 그로벌피스연구원 교수의 지정토론을 진행했다.

나원준 교수는 먼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지배자본주의(Finance-Dominated Capitalism)는 월가의 지배력과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이 달러 헤게모니로 구체화되어서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고 전제하고는, 달러 헤게모니가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은 그동안 국제수지 적자국들(Global South)에 대해서는 채권국의 위치에서 IMF와 같은 국제기구를 동원해 외환위기, 긴축강요, 군사개입, 공공부문 인프라 민영화 수탈 등의 방식으로 지배력을 확대하고, 국제수지 흑자국들에 대해서는 흑자국이 벌어들인 달러로 미 재무국채권(국채)을 구매하도록 하는 이른바 '달러 리사이클링'으로 재정적자를 감당하며 풍요를 누려왔으나, 지금은 흑자국과 적자국을 가리지 않고 '근린궁핍화 정책'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린궁핍화 정책'이란 말 그대로 '이웃나라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 

단기적으로 미국이 고금리·긴축 통화정책을 취하면 달러 헤게모니 영향아래 있는 나라들은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가 없고, 외환시장에 불안요인이 만들어져 환율도 오를 수 밖에 없게 된다. 환율이 오른만큼 달러로 표시된 미국 제품의 가격은 더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그걸 수입하는 나라에 인플레이션도 함께 수출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어떨까. 20세기 초 제국주의론에서는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자본(공장)을 수출한다고 했지만, 지금 미국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에 집중시키려고 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이웃나라들의 산업은 공동화되고 일자리도 미국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지정토론자인 이영훈 동국대DMZ평화센터 소장(오른쪽)과 장창준 한신대 글로벌피스연구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정토론자인 이영훈 동국대DMZ평화센터 소장(오른쪽)과 장창준 한신대 글로벌피스연구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달러 헤게모니는 붕괴할 것인가?

위기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덮친 동남아시아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사태를 낳으면서, 아주 취약한 고리에서 발생한 작은 균열이 생산체계 전체를 붕괴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각국 경제의 연관성이 커지면서 불안정성도 오히려 증폭됐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취약하다는 걸 확인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아무튼 미국 금융자본은 처음엔 '저임금 공장'인 중국이 필요해서 세계시장에 끌어들였지만, 더 이상 중국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판단과 자신들이 첨단기술과 전략산업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 노골적인 반중 동맹을 일방적으로 절교선언하듯 했다.

중국을 배제하는 방식은 첫째 미국내로 공급망을 집중시키기 위한 인플레감축법과 같은 노골적인 정책이, 두번째로는 범위를 조금 넓혀 우방국과 경제블록(반도체공급망동맹 칩4(CHIP4),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미-EU 무역·기술협의회(TTC))을 형성해 그 안에서 공급망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이 활용되고 있다. 

또 과거와 같이 FTA(자유무역협정)을 강제하는 방식은 자국 제조업 기반이 입을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에 검토하지 않고 그 대신 '자유', '인권', '환경' 등 비경제적 가치를 내세워 '가치동맹'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미국이 다시 FTA와 같은 틀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아·태 지역 11개국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중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80년대 들어 미국과 협력하거나 갈등하면서 세계경제질서를 재편하는데 성공해 온 중국과 중국경제의 잠재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화된 미국 주도경제의 지배력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가능하겠다는 일부 전망이 나오게할만큼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핵물질의 최소 질량)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조심스럽다.

미국을 중심으로 완성된 세계체제에 대한 반대흐름은 그동안에도 쭉 있어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단적으로 일본이 1985년 미국의 강압적 조치에 따라 플라자합의라는 이름으로 엔화절상의 폭탄을 맞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타격을 받지 않았나.

나 교수는 중국 이전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크리티컬 패스'가 만들어지고 있으나, 아직 '중국몽'으로 표현하는 변화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다만 달러 헤게모니의 붕괴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세계사적 대지진'과 같은 사건임에 분명하고, 그렇더라도 그것은 마치 백여년에 걸쳐 빙하가 녹는 것처럼 진행중에는 인식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가 빙하의 녹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고 진단하지만 역시 미래의 변화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만큼 글로벌 공급망 개편의 시나리오는 다양하고, 또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즉 탈세계화의 전망도 여러가지 나올 수 있으니 이를 검토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론은 "우리는 자립적인 경제기반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경제 구조 자체가 수탈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분명히 미국의 경제수탈이나 정치 개입이 있을텐데 이에 대한 방어선 확보를 위해서도 '자립적 경제기반'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대안 1로는 초과착취의 대상인 주변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적인 계급 역관계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경제적으로 달러 헤게모니에 의해 지배되는 현행 국제통화체제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대안2는 자본주의 체제 틀내에서 위계적 체계를 약화시키는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중심부 국가의 반독점운동과 주변부 국가의 정책여력 확대를 위한 제도개혁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으로, 소수 의견이다.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해 놓은 상태에서는 미국의 정책선택에 종속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같은 금융자본의 지배력을 통제, 차단하기 위해 자본이동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개혁으로 정책여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겨레하나평화센터는 지난 4월부터 겨레하나 평화포럼을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겨레하나평화센터는 지난 4월부터 겨레하나 평화포럼을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운 세계 경제', '위기 속 표류 중인 한국 경제'

그렇다면 탈세계화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

시나리오 1은 미국의 의도와 달리 단일 헤게모니가 무너지면서 다극화, 내지는 강해지는 중국과 약해지는 미국으로 양극화하고 중미간 무역은 사실상 붕괴되는 상황이다. 20세기 전반기인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와 유사한 모습이다.

시나리오 2는 미국의 의도대로 가치기반의 블록화가 진행되는 냉전시대 미·쏘 모델과 닮은 신냉전 상황이다. 이때 미국은 중국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고 중국은 미국 중심의 반권위주의 블록의 공동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배제된다. 

시나리오 3은 탈세계화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져서 미국의 의도대로 가치기반 블록화로 중국을 첨단산업과 전략적 부문에서는 배제하되, 저렴한 인건비에 의존하는 전통산업에서는 기존 무역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선택적이고 부분적인 디커플링이 실현되는 상황. 

현재 미국의 접근은 첨단 전략산업에서는 중국을 배제하되, 전통산업에서는 중국에 의존해야 미국 노동자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3이 좀 더 현실성있는 전망이라고 보았다. 

중국 입장에서도 서방과 척지지 않고, 반미블록이 만들어지더라도 그 중간지점에 스스로를 위치지우는 방식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운 세계 경제', '위기 속 표류 중인 한국 경제'

나 교수는 거시경제 전망을 하면서 두개의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MF 전망 GDP 갭률
MF 전망 GDP 갭률

먼저 세계 경제 전망이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이후 세계경제의 위기적 상황은 몇 년째 지속되는 중 △글로벌 공급망은 팬데믹 영향과 경제회복 지연, 중미갈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신냉전 등 중첩된 요인으로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재편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해 각국이 통화긴축으로 대응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현실화 우려 점증으로 압축된다.

1년에 두번 4월과 10월에 발표하는 IMF의 세계경제전망은 호황과 불황을 가르는 GDP갭률이 플러스, 마이너스로 계속 바뀌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번 너무 달라'지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위 표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미국은 코로나가 확산된 2020년에 크게 안 좋았다가 큰 규모의 재정부양으로 2021년 플러스로 바뀌어 올해까지는 플러스를 유지하는데 내년부터는 소폭 마이너스로 갈 것이라는 게 IMF 전망이다.

검은색의 한국은 계속 마이너스인데, 특히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화되는 모습이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10년의 자본주의 전성기에 대중국수출로 일궜던 축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되었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으로 진단했다.

지금의 상황이 주체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 패권주의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제하며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예속된 경제정책으로 일관하며 도탄에 빠진 민생에 대해서는 절대 무능해 한국경제는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를 일컬어 '미국에 먼저 안기기 전략', '자본가에게는 노조파괴, 감세, 규제완화 등 선물보따리 안겨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향후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이 미국으로 생산거점을 확장하는데 따라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기반은 부분적으로 공동화될 운명에 처할 것이 예상되고, 이미 GDP의  두배를 초과한 과도한 민간부채와 금리 급등으로 더욱 커진 상환 부담, 부동산경기 악화 등 신용위험이 확대되고 있는 상태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영업제한을 비롯한 여러 행정조치들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정지원으로 대책을 마련했어햐 하지만,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해소하기보다는 그들이 빚을 내서 연명하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코로나 위기속에서도 오히려 한국은 개정이 건전한 나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구조적인 한국경제의 위기는 오히려 커졌다.

대전환의 시대에 접어든 세계적 추세는 '통화정책은 긴축기조, 재정정책은 증세에 기반한 확장기조 유지'이지만, 윤 정부의 기조는 감세와 긴축이라는 소극적 재정으로 거시경제를 잘못 운영하고 있으며, '경제를 위축시키는 나쁜 균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중미간 불완전한 디커플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중국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어느 한편에 서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만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고 정책전환을 촉구했다.

미국의 금융제국주의(Monetary Imperialism, Finanzimperium)에 대한 이해

금융제국주의란 미국이 국제통화체제를 활용해 세계경제를 수탈하는 새로운 금융적 방식이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로 달러가 유입되면 각국은 그만큼 준비금 보유를 확대하고 그렇게 늘어난 달러로 재무성 증권에 투자하는 달러 리사이클링을 기본 구조로 한다.
 
세계 각국의 저축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에 자금을 대주는 역할을 하는데, 각국 중앙은행의 재무성 증권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도 그다지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었다.

미국은 얼마든지 빚을 내서 그 돈으로 세계 곳곳의 생산물을 원하는 대로 가져다 쓰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늘어나는 빚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이 제3세계에 재무성 증권을 팔아 마련한 돈은 때로는 그 나라 민중들의 자주적 요구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데에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얼마간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역 흑자국, 채권국이었으나 미국이 국제수지 흑자를 누리면서 세계경제는 달러 부족을 경험하게 됐다.

만일 미국이 계속해서 국제수지 흑자를 실현했더라면 닉슨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으로는 미국이 유일 패권국이 되기 어려웠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국제수지 흑자를 봤다면 아마 세계 다른 나라들에는 금이나 달러 잔고가 점점 더 부족해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계무역규모는 축소되고 미국 산업의 영향력은 제약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는 교역이나 자본수출의 위축을 피할 길이 없고 지속가능한 패권이 유지되기 힘든 구조였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오늘까지 미국의 제국주의가 확립되고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재정적자 폭이 확대되고 세계적으로 달러 공급이 넘쳐나면서부터였다.

미국의 패권이 금융제국주의에 기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금융제국주의가 미국 패권의 새로운 물적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이 냉전 기간에 늘려 온 전비 지출은 미국을 채권국이 아닌 채무국으로 전환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늘어난 달러 공급은 각국 중앙은행 준비금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게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가 안착되면서 오늘날 국제통화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전통적인 국제수지 조정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고 과거의 규칙을 깬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류경제학의 교리에 따르면, 국제수지 적자를 본 나라는 긴축 정책으로 정부지출을 줄이고 증세를 하며 금리를 올려 자본 유출을 막는 것이 순리인데,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은 재정 적자를 국제수지 적자를 통해 벌충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재정에서 적자를 본 것 이상으로 국제수지에서 적자를 보면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전 세계가 일종의 세금을 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군사 개입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것이다.

전후 달러 리사이클링은 처음에는 원조나 전비 지출로 유출된 달러가 수출을 통해 환류되는 구조였으나,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달러 리사이클링은 국제수지 적자로 유출된 달러가 해외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환류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국제수지 조정 메커니즘의 미국식 변형은 금리에 대한 상이한 영향에서도 드러났다. 

원래 주류경제학에서, 국제수지 적자는 정책금리 인상을 통해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는 조정 과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새로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에서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해외 각국의 미국 국채 매입 증가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실세금리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느 정도 규모까지 적자를 봐도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은 적어도 금융적 제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물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는 △순 채무국에 대한 수탈 △달러가 넘쳐나는 순 채권국의 두축으로 이루어진다.
 
달러가 부족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과거 채권국의 모습 그대로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를 활용해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배한다.

순 채무국들은 어쩔 수 없이 긴축을 선택해야하고 자립적 산업화를 방해받게 된다. 공공부문이 축소되고 민영화가 불가피한 선택이 되며, 구조조정과 매각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따라온다. 결국 초국적 자본이 금융 투자자로서 광물자원 개발권과 공공 인프라를 인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긴축과 함께 미국에 대한 산업적 종속이 사실상 강제된다.

이들 나라에 남겨진 역할은 원자재 및 저가 노동력 공급이다.

달러가 넘쳐나는 순 채권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인 동아시아나 유럽 일부 나라들, 그리고 산유국들은 달러 리사이클링 체제에 편입되어 구조화된 강제 저축을 수행하고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달러 자산 매입에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얽매여 있는 것이다. 
 
자칫 여러 나라들이 달러 자산 매입을 중단하기라도 하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준비자산의 가치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해를 우려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로부터 이탈하지도 못한다.

이로써 유일 제국인 미국은 자국 스스로 상품의 수요처가 되면서, 그 수요의 재원을 자체 신용창출을 통해 무한정 장만할 수 있는 패권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달러 리사이클링의 현재 구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을 통해 달러가 넘쳐나면서 금융시장과 상품시장에서 투기를 부추기고 자산가격의 거품을 키울 위험이 내재해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또 미국 단극체제에 맞서 자기보호를 위한 지역블록화 흐름은 물밑에서 계속 이어져왔으니, 유럽의 경제통합이나 산유국간 협력 등이 그런 사례이다. 최근 중미갈등도 이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출처-나원준 교수 발표문)

 

최악의 불평등체제..유효수요 부족이 큰 문제

민간소비/GDP 비율
민간소비/GDP 비율

한국은 거의 수출기지와도 같은 나라여서 몇개 중요한 산업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전체 국민경제는 굉장한 내핍체제이다. 결코 튼튼하거나 잘 먹고 산다고 볼 수는 없다.

유효수요 제약이 큰 문제이다. 전체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에 60% 가까이 육박했지만 지금은 50%가 채 안된다. 20년간 GDP 대비 10% 포인트만큼 민간 소비가 줄었다는 건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소득이 너무 불평등하니까 부족해지고 그러다보니 수요가 부족해지는거다.

유효수요제약의 악순환고리
유효수요제약의 악순환고리

유효수요 제약은 한편으로는 빚이나 대출로 수요를 창출하고 신용으로 수요가 만들어지는 '금융화에 기반한 축적'으로 이어지지만 자산시장의 거품과 민간의 부채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채부담이 늘어나면서 어쨌든 수요가 늘긴하되,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시 유효수요를 제약하는 요인이 되는 악성 고리가 생기게 된다. 지금의 상황이다.

아울러 유효수요 제약이 너무 크니까 국내 내수가 부족해 지고 자본은 해외수요에 기반한 축적, 즉 수출을 시도하게 되기때문에 내부에서는 긴축과 내핍이 강요되고 경제의 대외 의존은 심화되어 다시 유효수요가 제압되는 악성 순환고리가 작동하게 된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나 교수의 제안은 내수기반을 키우고 국내산업 연관을 강화하자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불평등을 타파하는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또 노동소득분배율을 끌어올리는 과제가 매우 중요해진다. 최저임금인상과 노조법 2,3조 개정, 노동법 밖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 체제 전환 등 근본적으로 노동의 교섭력 강화가 바른 방향이다.

착취율
착취율

그동안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의 근원인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착취)를 따지는 착취율(노동몫/ 자본몫)은 1980년대 250~300%에서 2010년대 후반부터 350%까지 올라간다. 착취율이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잉여가치의 자본 전유가 많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IMF 집계 기준으로 한국은 대체로 이명박 정권 기간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노동소득분배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한 나라 중 하나였다.
IMF 집계 기준으로 한국은 대체로 이명박 정권 기간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노동소득분배율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한 나라 중 하나였다.
2020년 이후 자료는 나 교수의 연구결과.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 모두 2000년 값을 100으로 표준화하고 자료 사이의 정합성을 위해 실질임금은 피용자보수를 소비자 물가지수로 실질화한 다음 임금근로자 수로 나누어 계산하고 노동생산성은 명목 GDP를 GDP디플레이터로 실질화한 다음 취업자수로 나누어 계산했다.
2020년 이후 자료는 나 교수의 연구결과.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 모두 2000년 값을 100으로 표준화하고 자료 사이의 정합성을 위해 실질임금은 피용자보수를 소비자 물가지수로 실질화한 다음 임금근로자 수로 나누어 계산하고 노동생산성은 명목 GDP를 GDP디플레이터로 실질화한 다음 취업자수로 나누어 계산했다.

주류 경제학에서 사용하지 않는 착취율 개념 대신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을 비교해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생산성이란 1시간 동안 평균적으로 노동자가 몇개의 제품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지표이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이 늘어나면 노동의 몫(노동소득분배율)인 임금, 그중에서도 물가의 영향이 제거된 실질임금이 올라가야 하는데 결과는 자본의 몫이 더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2020년까지의 추이를 살펴보아도 노동소득분배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질임금이 수평으로 그려진 구간이 이명박 정부 시기이다. 노동생산성은 오르는데 실질임금은 정체된 상황이다. 문재인정부때도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노동몫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자본몫만 늘어나면 그 돈은 부동산이나 증권에 쌓이고 추세적으로 주택가격 상승 등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민간 순자산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을 베타(β)로 표시한 후 이를 '피케티지수'로 표현하는데, 베타값이 커지면 불평등해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14년에 처음으로 한국의 베타값을 보고했는데, 이때 발표한 2012년 말 한국의 베타값은 7.7이었고 2019년 말 8.6, 2020년 말 9.3, 2021년 말 9.6으로 계속 상승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9년동안 집값, 증권가격 등 자산 가치는 90% 가까이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득은 50%밖에 오르지 않은 결과이다.

역사적으로 베타값은 자본주의 불평등이 최고조였던 19세기말 레미제라블과 칼 마르크스의 시대에 7.0,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직전인 일본에서도 7.0 정도였다.  임금주도 성장의 시대였던 서유럽 자본주의 황금기 1945~1975년간은 2.0~3.0에 그쳤다.

2021년 말 한국의 베타값 9.6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들의 재산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다. 

우리의 길은 '자립적 경제'..평등으로 성장 이끄는 '임금주도성장'

그래서 다시 진보정치는 '대안적 성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나 교수의 제안이다.

노동계급 중심성을 확고히 하면서 내수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내 경제정책을 펼치는 '평등한 성장', '임금주도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금주도성장은 계급간 평등한 소득분배를 경제발전의 방향성으로 삼아 시장을 재구성하려는 이론과 정책의 패러다임이며, 이론적으로도 검증됐고 '사회가 평등할수록 경제는 더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실증적 증명도 되었다.

불평등에 따른 수요부족은 현대자본주의의 기본속성이고 경제변동과 위기의 원인이 된다는 진단에 기초하고 있다. 

기업이 창출해낸 경제적 성과는 특출한 CEO의 역할 뿐만 아니라 생산체제의 특성을 규정하는 제도와 그 질서를 제공한 국가, 노동자들의 집합적인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랄 수 있는 혁신의 과정 역시 사회 전체가 생산한 성격이 있으므로 혁신의 이득은 독점자본이 전유해서는 안되며 사회적 교섭을 통해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래서 통화정책은 단기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실업을 감수하는 지금의 관행을 중단하고 최대 고용을 목표로 하고, 재정정책은 완전고용 및 경제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정책수단으로 공공부문 확대와 조세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며, 높은 수준의 조정이 가능한 중앙화된 단체교섭을 제도화하여 물가불안을 피하면서도 임금상승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공공의 이해에 복무하는 다양한 금융기관을 육성하고 건전성규제를 강화해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신용자원 배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소득기반 사회보험, 부동산 보유세 등 여러 대안들과 비교하면, 임금주도성장은 조세를 강화해 복지를 통한 분배에 치중한 '2차 재분배'가 아니라 '임금과 이윤이 갈라지는 경계를 노동에 유리하게 바꿔야 한다'는 관점에서 1차 분배 자체를 강조한다는데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임금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이 주체가 되어 최저임금 인상, 최고임금 도입, 단체교섭제도 강화를 비롯해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와 노동보호를 강화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임금주도성장'하면 언뜻 떠오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짝퉁이 아니라 거꾸로 원래부터 소득주도성장이 짝퉁이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노동중심성이 사라지고 노동의 교섭력 강화라는 핵심가치가 실종되었다는 이유때문이다. 또 포용성 강화하는 정책 방향에 조응하는 미세조정에서 기존 관료들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제기했다.

임금주도성장의 핵심 가치는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 독점적 소유권에 기초한 지대(불로소득)는 철폐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대한 보상이 더 잘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이영훈 소장과 장창준 교수는 △주변부 국가의 자립경제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과연 실현 가능한지 △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금까지는 코로나 이후 재개 효과가 별로 없지만 본격적으로 반도체경기가 회복되면 흑자전환이 가능할 수 있겠으나 현재 대중무역적자에는 구조적 요인도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G7을 대체할 브릭스와 같은 구도가 만들어지려면 '가치동맹'과 같은 고유의 이념적 기반이 있어야 할텐데, 현재의 브릭스는 다양한 구성으로 조직화된 힘이 아니기 때문에 좀 어렵지 않을까 △ 플랫폼 노동의 시대에 맞는 노동조합활동, 단체교섭제도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기술기반이나 정치경제적 토대 등 다양한 내용들을 대안전략을 구성하면서 만들어나가야 할 것 등 여러 문제의식과 쟁점, 고민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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