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다섯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다섯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화운동은 엄혹한 시대에 어둠을 밝힌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기꺼이 자신을 던져 시대를 밝힌 희생과 헌신은 지금도 우리가 나아갈 앞길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우리 동지들과 지난 날을 기억하며 당신과 함께 소중한 희망을 나누고자 합니다."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다섯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 증서의 문구이다.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희망나누기)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한다는 취지로, 남아있는 자녀들에게는 장학금을, 병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생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가 '받을 분'을 추천하고 주관 단체인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운영위원회가 대상자를 선정해 매년 12월 전달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 익명의 첫번째 기부자가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이사장 문국주)에 매년 1억원 후원 약속을 하며 2020년 1월 첫번째 희망나누기가 진행됐다. 

처음엔 장학사업으로만 시작했다가 그해 11월 두번째 희망나누기부터는 몸이 아파 고생하는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을 병행하여 지난해 12월 네번째 희망나누기까지 48명의 유자녀와 병환중인 당사자 30명에게 총 5억 1,032만원의 장학금과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번 다섯번째 희망나누기에서는 고 고수남, 구본주, 김상영, 김재석, 김철곤, 김희영, 박용규, 양상현, 양회동, 이연, 이용마, 이주헌, 정철균의 유자녀와 몸이 아픈 본인 17명에게 1억5천만원의 장학금과 지원금이 증서로 전달됐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기억속에 계속 살아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모든 사람은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고 구본무 조각가의 아들 구내모 님이 희망나누기 장학증서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 구본무 조각가의 아들 구내모 님이 희망나누기 장학증서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2003년 37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작고한 구본주 조각가의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역사책 속의 인물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워낙 어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경험했던 일, 만났던 사람들, 아버지의 존재가 좀 멀어 보일 때가 있다"고 심중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작품을 감상할 때, 그리고 아버지와 민주화항쟁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을 통해 저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다. 

이어 "비록 아버지를 제 삶에서 경험한 적은 없지만 오늘 같은 자리는 저에게 아버지와 시대를 개념이 아닌 느낄 수 있는 실제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 자리를 마련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6년전 갑자기 쓰러져 중증 장애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아내(정영애)를 대신해 나온 신석진 님은 "(아내는)이름없는 활동가였는데 기억하고 좋은 상도 주셔서 고맙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이름없는 희생과 헌신과 사랑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희망나누기 전달식 사흘전인 지난 24일 세상을 떠난 차석진님의 친구 권무혁님은 "공교롭게도 전달식이 열리는 오늘 제주의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세상과 작별했다"며 울먹였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기억하기는 참 소중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그 소중한 작업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때에 많은 분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고 복에 겨워 눈물 흘리고 있는 차석진 올림." 세상을 떠나기 전 고 차석진님이 남긴 메시지이다.

병중의 민일기님을 대신해 수상자로 나온 박영호 한청협전국동지회 회장은 "올해는 루게릭 병으로 수년째 고생을 하다 지금은 기관절개술로 말을 못하게 된 민일기 동지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하면서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희망나누기에 동참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첫번째 희망나누기에 이범영 한청협 의장의 유자녀가, 작년 희망나누기에는 홍만희 한청협전국동지회 회장의 유자녀가 장학금을 받았다"며, "우리 한청협동지회가 희망나누기에 많은 수혜를 받았기 때문에 내년에는 단체가 적극 나서 참여하기로 마음 굳게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영님의 부인 하영미님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무대에 올라 "남편이 노동운동하면서 그토록 바랐던 세상을 위해 저희 가족들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제 몫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희영님의 부인 하영미님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무대에 올라 "남편이 노동운동하면서 그토록 바랐던 세상을 위해 저희 가족들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제 몫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두달 전 가족들의 곁을 떠난 김희영님의 부인 하영미님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무대에 올라 "아직도 황망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렇게 저희를 기억해는 것 만큼 저희도 여기 계신 분들 꼭 기억하고 싶어서 오늘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며 "남편이 노동운동하면서 그토록 바랐던 세상을 위해 저희 가족들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제 몫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의 인사를 전했다.

양회동 열사의 쌍둥이 자매와 이용마 전 MBC기자의 두 아들을 비롯한 유자녀들은 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뜻깊은 자리에 함께 모여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데 대해 입을 모아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민주화운동 활동을 하다 지금은 병중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지원금 지급 증서가 수여됐다. 추천단체 또는 본인이 직접 증서를 받았고 희망단비 수혜자인 유자녀들이 수여자로 직접 나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화운동 활동을 하다 지금은 병중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지원금 지급 증서가 수여됐다. 추천단체 또는 본인이 직접 증서를 받았고 희망단비 수혜자인 유자녀들이 수여자로 직접 나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올해로 다섯번째 진행된 희망나누기는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장학사업을 통해 부모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민주화운동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그 유자녀들이 다시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속적으로 연대하도록 하는 것, 유자녀를 중심으로 희망나누기 사업 내용을 꾸며나가고 실제 진행도 젊은이들이 주관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바꾸자는 것이 첫번째이다.

또 병중에 있는 활동가 본인에 대한 지원은 위급한 정도를 먼저 살펴보겠다는 기준이 더욱 분명해 졌다.

희망나누기에서 지원했던 활동가들 중 벌써 4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다시 퇴행하는 현재를 지켜보면서 지원대상자의 활동시기를 1970~80년대 통상적인 민주화운동으로 국한하지 않고 2000년대 이후 노동, 농민운동 등 민중운동으로 범위를 확대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그렇지만 "민주화의 여정에 굳건히 함께 했던 이름없는 존재들의 싸움이 외로운 투쟁이 아니었음을 똑똑히 말해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더욱 더불어 기억해 하는 사람들이며, 그로부터 우리의 미래가, 희망이 시작된다"는 믿음은 변치 않는 마음이다.

연성만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이 기부자들을 소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연성만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이 기부자들을 소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연성만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은 "희망나누기에 함께 참여하는 분들의 뜻은 여러분들의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지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셨기 때문에 그때 함께 했던 분들이 마음을 모아서 당연히,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그냥 가슴속에 넣어놓고 정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국주 사단법인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국주 사단법인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국주 사단법인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은 대회사에서 "민주화운동이 지속되어 온 것은 항상 국민들과 함께 하고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려는 힘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걸 계속 기억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희망나누기의 취지를 강조했다.

희망나누기는 단순한 지원사업이 아니라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의미로 읽어도 무방할 터이다. 

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인 김상근 목사는 "우리는 오늘을 딛고 미래를 만들어 가서 먼저 가신 분들의 한, 그들이 꿈꾼 미래를 꼭 이루어 나가자"라고,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민주화운동 60년사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먼저 가셨다. 이 분들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민주화운동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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