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항상 성장률을 의식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정권의 눈치만 보면 가계부채는 절대 못 잡는다. 그러면 이창용 총재와 함께 금융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다른 금융통화위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금융통화위원회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정책결정기구로서 당연직인 한국은행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당연직 2명을 제외한 5명의 위원은 정부부처 및 기관(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장)에서 추천한다. 연봉은 3억 정도 되고, 차량과 비서관이 제공되는 등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이들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지만, 금융통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큰 기대는 없지만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사록을 한번 들여다보자.
11월 금통위 의사록 살펴보니…다수는 "금리인상 열어둬야"(23.12.19 뉴시스)
한은이 보는 가계부채..."정책금융, 대출 자극 우려"(23.12.24 뉴시스)
"가계부채 이렇게 관리하면 계속 저출산" 금통위원의 쓴소리(23.12.24 파이낸셜뉴스)
우선 지난 19일 공개된 11월 30일자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금통위원들이 회의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것이 확인된다.
전일 개최된 동향보고회의에서 일부 위원은 "우리나라 가계의 실물자산 보유 비중(2022년 기준)이 약 63%로 미국, 일본, 영국의 30~50%보다 높은 편"이라고 지적하며 "실물자산 보유 비중이 높을수록 청년층·무주택자는 주택구입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 위원은 "부동산 가격의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현재 수준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정도로는 실물자산 비중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경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유례없는 저출산과 결혼 기피 현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첨언했다. 집값이 비싸서 아이 낳기 어려우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고 집값도 정상화하자는 상식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의사록에는 위원의 실명이 없고 "일부 위원"이라고만 표현되므로, 금통위원들 중 누가 이런 주장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일부 위원은 "최근 3개월간 근원상품과 개인서비스 물가의 상승 모멘텀이 상반기에 비해 둔화"하고 있다면서,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도 "가계 전체로는 금융자산 총액이 금융부채 총액보다 많으므로" 단순히 가계부채 총량만을 평가하지 말고 소득분위별 분포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 이 위원은 물가상승률과 가계부채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대체 누군지 궁금하지만 역시 알 수가 없다. 11월 금통위를 마지막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으로 가버린 박춘섭 전 위원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일부 위원은 "1년 후 주택가격 전망을 나타내는 주택가격전망CSI가 10월 중 전월보다 소폭 하락하였으나 100을 상회하고 있어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며 주택관련 대출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분석이다.
일부 위원은 "올해 초 주택시장 반등은 가격이 충분히 하락하면서 주택수요가 늘어난 데 기인할 수도 있지만, 정부의 부양책 실시로 주택경기 반등 기대가 높아지면서 수요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또 "특례보금자리론은 도입 당시 대환 대출용으로 지원되었으나 실제로는 신규대출로 많이 이용되면서 주택가격 반등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금융 규모 조정이 향후 가계대출에 미칠 효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다른 위원이 나서서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연말까지 하락 흐름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내년 들어 특례보금자리론이 재개되고 신생아특례대출 등이 새롭게 시행되면서 정책금융이 가계대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내년 정책금융의 내용과 규모, 그리고 가계대출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위원은 "내년 주택금융공사 및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정책금융상품 공급예정 규모가 올해보다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20~22년 평균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은 규모"라고 언급했다.
종합하자면,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하루 전에 개최된 동향보고회의에서 적어도 3명의 금통위원이 정책금융을 통한 정부의 부동산시장 부양책에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가계부채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어야 하는 국면에 정부가 나서서 돈을 잔뜩 풀어버렸으니 금통위원들이 그 점을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금통위원들 역시 기준금리를 더 인상하자고 말할 용기는 없다. 11월 30일 금통위는 한은이 물가상승률을 당초 전망보다 상향 조정한 상황에서 열린 회의였고, 일부 위원은 한국의 집세 제외 근원물가 상승률이 미국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도 언론과 시장(시장이라는 이름의 투자자들)의 관심은 내년에 언제 금리를 인하할 것이냐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통화정책방향 토론'에서 일부 위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복귀하는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통화정책의 신뢰성이 저하되지 않도록 소통 전략 마련에 힘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들 빠른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만큼 빠르게 둔화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런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인의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위원 1 – 기준금리 유지. 향후 물가 목표로 수렴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정책 대응 고려.
위원 2 – 기준금리 유지. "현 금리수준은 충분히 긴축적"이며 당분간 시장 상황을 관찰. 향후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예상.
위원 3 – 기준금리 유지.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기조 유지.
위원 4 – 기준금리 유지. 금번 회의에서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고 앞으로 대내외 상황 변화를 지켜보자.
위원 5 - 기준금리 동결.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등을 통해 디레버리징 노력을 지속할 필요.
위원 6 – 기준금리 동결. 통화정책 긴축기조를 유지해 나가야. 물가상승률의 목표수준 안착이 지연될 경우 추가긴축도 고려.
유지 아니면 동결. 11월 30일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어떤 언론은 금통위원 7명 중 1명만 향후 금리 인하를 언급했다고 보도했고, 어떤 언론은 금통위원 2명이 향후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의사록이 익명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어느 위원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를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의 회의는 의사록이 차후에 공개되므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국민이 알 수 있는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금통위원의 회의 의사록이 익명인 것이 의아하다.
금통위는 주로 기재부, 금융위, 대학 교수 출신으로 구성된다. 비슷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의견을 모으기는 좋겠지만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할 통로는 없어 보인다. 그 결과 금융통화 정책은 편파적으로 운영되기 쉽다. 기준금리를 필요 이상으로 낮게 운용하면 자산가격은 필연적으로 상승하고, 자산을 가진 사람과 기업에 유리하다. 무주택자나 청년에게는 그만큼 불리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금통위원은 재산도 국민 평균보다 훨씬 많다. 올해 신고한 내역에 따르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재산은 약 47억 원, 서영경 위원의 재산은 약 67억 원이다. 장용성 위원은 68억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다. 집 2채에 본인 명의의 예금만 28억이고 아마존, 알파벳, 테슬라 등의 주식을 20억 이상 보유하고 있다. 아직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이나 은행 대출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는 누가 대변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금통위 구성을 민주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잠재성장률 하락과 인구 소멸로 나라가 더 기울기 전에 한은이 금융소외 계층과 저소득층, 무주택자와 청년을 위한 통화정책을 고민하면 좋겠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금통위 의사록이라도 신속하게, 위원의 실명을 적시해서 공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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