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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의 무죄,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은 '재판거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고] 피해자들의 권리회복도 중요하다

장정수 긴급조치사람들 이사 | 기사입력 2024.01.31. 05:04:10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무죄 판결이 정당하느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그러난 무죄판결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검찰이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자신이 사용하던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degaussing)해서 데이터가 지워져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압수수색 영장도 법원이 기각했다.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게 처음부터 세팅돼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무죄선고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피해자들의 문제는 무죄선고와 관계없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을 최초로 폭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판개입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지적한 것처럼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긴급조치9호 피해자들의 경우 절반이상이 여전히 재판거래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다가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됐던 민주인사들로 구성된 (사)긴급조치사람들이 30일 발간한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를 보면 그 피해 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 바로가기 ☞ : 클릭)

백서에 따르면 긴급조치9호 피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재판거래 피해상황을 조사한 결과 총 192명의 소송제기 피해자들 가운데 53%에 달하는 102명이 패소확정판결을 받아 사법농단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백서에 수록된 긴급조치 국가배상소송 재판사례에 따르면 패소확정판결을 받은 102건 중에서 45건은 1심에서는 피해자들이 모두 승소했으나 재판거래를 위해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받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 모두 패소했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로 인해 국가배상소송에서 패소확정판결을 받은 긴급조치피해자들은 2022년 8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9호는 위헌, 위법이라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배상의 길이 꽉 막혀 있다.

그 대상을 1000여명에 달하는 긴급조치9호의 전체피해자들로 확대하면 약 60%이상의 피해자들이 재판거래로 국가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도 문제지만 그 피해자들의 구제방안에 대해 사법부가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면 긴급조치 재판거래의 본질은 헌법적 기본권의 수호를 본령으로 하는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통해 조치피해자들의 헌법적 권리인 재판청구권(헌법 27조)과 국가배상청구권(헌법 29조)을 박탈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긴급조치 재판거래 백서'에는 대법원의 수뇌부가 어떻게 긴급조치 사건을 비롯한 각종 시국사건에 대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통해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이끌어 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휘하의 대법원 조직인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이란 문건에는 '정부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사례'로서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이 언급되고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고 전제하고 긴급조치9호 피해 국가배상소송을 무력화시킨 대법원의 두 판결(2013다217962, 2012다48824)을 '국정협조사례'로 적시하고 있다.

특히 이 문건은 긴급조치에 대해서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함"이라고 부연암으로써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나온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또 사법농단의 핵심인물 중 한사람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획실장으로 있을 때인 2015년11얼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란 문건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이는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의 무더기 패소를 초래한 대법원의 두 판결이 청와대와 상고법원 설치 흥정을 위해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적 단죄도 이뤄져야 마땅하지만 그 피해자들의 권리회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법부는 물론이고 국회, 행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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