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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대 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기고] 한국사회는 의사들을 너무 모른다

정영인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 기사입력 2024.03.07. 05:06:03

 

의대 증원 문제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각각 동맹휴학과 사직으로 의협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의대 증원이 필요 없다는 명확한 논거를 갖고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일까? 의대 증원이 정권이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을까? 미래의 의료를 담당할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교육현장 이탈을 막지 않고 오히려 방조하는 의협과 의대교수들의 행태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는 낯설지 않은 마치 의협의 행동전위대 같은 이들의 집단투쟁 행태를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 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다. 그 근거로 첫째, 의사 1인당 진료 환자수가 너무 많다. 낮은 진료수가로 환자가 많아야 수익성이 보장되고, 지나치게 용이한 의료접근성으로 의료의 가수요도 많기 때문이다. 적절한 진료수가의 보장과 엄격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및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환자의 상한선 설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환자의 상한선 설정은 과잉진료와 의료의 가수요를 줄이는데도 효과적이다. 둘째,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임상 분야에 종사해서 전문성을 요하는 보건정책 분야에는 의사들이 희귀하다. 일례로 정신건강정책을 입안하는 보건복지부에 정신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셋째, 기초의학 연구와 제약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넷째, 급격히 성장하는 의생명 바이오산업에서 의료인력의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에서 의사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던 1970년대 초반까지 그나마 배출된 의사의 상당수는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래도 국민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 의대생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 대열에서 늘 비켜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의료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이념과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공공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의사들은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희소성이라는 존재 가치로 특권적 지위를 향유한 부르조아의 상징이었다. 오죽하면 의사는 '허가 받은 도둑'이라는 오명까지 나왔을까.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 서민들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1차진료를 의료인이 아닌 약사들에게 거의 의존했다. 의약분업의 당위성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시작 단계에서 의사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현재의 기형적인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 간의 직능 갈등, 병원과 의원 간의 이해 갈등의 산물이다. 의약분업 파동은 대체 인력이 없는 집단의 특성에 힘입어 의사들이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국민들은 이해관계 앞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직업윤리도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음을 뼈아프게 실감하였다. 힘을 가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속수무책인 힘없는 국민들은 오로지 그들의 직업윤리에 호소할 도리 밖에 없다.

질병의 고통과 생명의 보존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일반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는 그 결을 달리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진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심신의 고통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의 공포다. 심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투쟁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나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다.

의협에 묻는다. 의대 증원이 국민의 건강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당신들의 설익은 논리를 뒤받침할 수 있는 정확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전공의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은 일차적으로 당신들을 지도하는 교수사회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지 않는가? 단순히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고생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저임금 때문에 집단행동에 나섰는가? 마지막으로 교수들에게 묻는다. 미래의 의료를 책임질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교육현장 이탈을 방조하고, 그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당신들의 겁박은 교육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은 유별나다.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누구보다도 힘든 교육과정과 훈련을 장기간 받았기에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특권 의식이다.

능력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손함과 연대감이다. 겸손함은 능력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부채 의식과 책임 의식에서 나온다. 연대감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 1등을 하던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대생의 외침은 공허하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환자와 공감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의 의대 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모 의대 교수의 탄식이다. 그런 교수들이 있기에 오늘의 사태에 절망하지 않는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7천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사가 응급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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