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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으로 밸류업?…주주 보호 강화 없이 변죽만 울리는 윤 정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3/08 09:03
  • 수정일
    2024/03/08 09: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석열 당선 2주년, 초라한 경제 성적표]①기대 못 미친 밸류업 정책에 주가 부진…‘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재벌 문제 배제돼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1.02. ⓒ뉴시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기 주가 상승 재료가 됐던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한국 증시의 신뢰를 저해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 방안 없이는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이후 코스피 지수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종가 2,641.49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날보다 26.2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정부 발표 당일에는 전장 대비 20.62포인트 하락했고, 이튿날에는 27.03포인트가 추가로 빠졌다.

최근 주가 흐름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시장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 다만, 기업이 밝힌 계획에 강제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주주의 비판이 뒤따르겠지만, 당국의 제재만큼 강제력을 갖기는 어렵다. 계획을 공시하는 것조차 의무가 아니다. 기업 자율에 맡긴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우수 기업에는 표창을 수여하고,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와 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등 세정 지원 혜택을 준다. 감세라는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 발표는 오는 6월로 미뤄졌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공시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증권가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증권은 “시장에서 기대했던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은 없었다”며 “기대와 현실 간 간극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다”고 짚었다. 키움증권은 “기업들로 하여금 실행 의지를 높일 만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추후 후속대책으로 미뤄 놓았다는 점이 주가 약세를 유발했다”고 풀이했고, 신한투자증권은 “가치주는 밸류업 기대를 발판으로 질주 중이었지만 정책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부터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올해 첫 장이 열린 지난 1월 2일, 역대 대통령 최초로 한국거래소 개장식에 참석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제시된 대책은 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의심케 한다. 주식 양도차익 5천만원 이상의 주식부자에게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오는 2025년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돌연 폐지 추진 방침을 밝혔다. 금융상품 투자 이익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혜택도 확대한다. 세금 때문에 주식 투자가 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완화하겠다고도 했다. 상속세가 주가 상승에 따른 재벌 총수일가의 세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주가 부양 의지를 저해한다는 인식이다.

기업가치 제고를 가장한 부자·재벌 감세가 쏟아지는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이 거론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17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주주가치 제고 일환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기까지 한 달여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반등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저PBR 기업의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기 주가 부양책 수준에 그친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2667.70)보다 20.62포인트(0.77%) 내린 2647.08에,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868.57)보다 1.17포인트(0.13%) 하락한 867.40에 거래를 종료했다. ⓒ뉴시스

어설픈 일본 베끼기에 재벌 문제는 배제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 정책에서 가져왔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 증시를 프라임(글로벌기업), 스탠다드(중견기업), 그로스(신흥기업) 등 3개 시장으로 재편하고, 프라임과 스탠다드 시장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 기업에 대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 자산을 모두 매각한 가치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다.

한국과 일본은 증시 환경이 다르다. 한국의 기업가치 제고 핵심 과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재벌 총수일가의 지분 유지·상속을 위해 다른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벤치마킹한 일본은 재벌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부가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본 정책을 일부 차용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비율로 성사시키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건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에 큰 타격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합병비율 산정 시 기업가치가 낮게 매겨진 삼성물산 주주는 이 회장 승계 과정에서 손해를 봐야 했다. 경영진 의사결정이 기업가치 제고에 반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 자본 투자를 저해한다.

CNBC는 최근 기사에서 “한국의 일본식 기업지배구조 개선 조치로는 저평가된 주식시장을 살리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 배경으로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를 꼽았다. 보도는 “재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라며 “가족 소유 구조에서는 소수 이해관계자가 전략적 결정에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행동주의 펀드 헤르메스의 아시아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조나선 파인스는 지난달 글에서 한국과 일본이 저평가되는 배경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일본 주가가 낮았던 이유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최적화되지 못한 문제에서 비롯됐다”면서 “지배주주가 과도한 이익을 독점하거나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잘못된 의도로 인한 시장 우려 때문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지배주주가 합법적으로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어떻게 이들 패밀리를 설득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배주주들은 거버넌스 관련 근본적인 변화에 계속 반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 개정은 마치 지배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가 지목된다.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로 한정된다. 주주 이익을 훼손하더라도 회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결정에 대해서는 이사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사실상 이번 국회에서는 처리가 무산됐다. 파인스는 “한국 당국은 이사가 단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이익 향상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요구하는 법률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주주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는 제일모직 0.35주로 산정됐다. 이 회장이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 기업가치를 높게 책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찬성표가 필요했던 이 회장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는 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합병비율에 따른 주주 피해에 대해 삼성물산 이사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삼성물산 주주가 제기한 합병 무효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사가 주주의 득실을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으므로, 충실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증권거래소가 2015년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이사의 소액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했다. 모범규준은 강제성을 갖지 않지만,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투자자에게 설명할 의무를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기업인들과 떡볶이를 맛보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 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2.06. ⓒ뉴시스

자사주 통한 총수 지배력 강화,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져

자사주를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는 행태도 국제적인 기준에 어긋난다. 한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지 않아도 된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나머지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다만,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기업이 보유하면 주식 가치 상승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지배주주의 영향력만 커지게 된다. 또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총수일가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일례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6일 자사주 50%를 3년간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절반은 남겨두겠다는 의미이기다.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나머지 50%의 자사주를 남겨두는 결정을 한 것은 우호적인 제3자에 대한 처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총수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나머지 자사주가 제3자에게 매각될 수 있다는 시장과 주주의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과 동시에 소각해야 하거나, 자사주 보유가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가 위치한 워싱턴주는 자사주 보유가 불법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논평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회삿돈을 들여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면 불법이라는 건 전 세계에서 예외 없이 공통”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으나 무산된 데 이어, 정부의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에서도 배제됐다. 기업이 자사주 매입·소각 관련 공시에 참여하도록 상장기업 간담회를 개최하겠다는 극히 낮은 강도의 대책이 제시됐을 뿐이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한국 상장기업의 미소각 자사주는 총 34억주로, 금액으로는 74조원에 달한다. 이들 자사주를 3년에 걸쳐 소각할 경우 코스피는 3620까지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재벌 지배구조 문제를 외면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 대응은 소극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따라 기업이 돈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문제와 관련해, 지배주주의 절대적인 권한을 제한하고 이사 충실 의무를 강화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 발표에는 해결 방안이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향후 나올 기업가치 제고 공시는 배당을 일부 확대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되 소각은 하지 않는 등 총수 지배력과 관련 없이 생색 내기 좋은 내용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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