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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값을 잡으려면 외국 오렌지를 수입해야 하나?



 

윤석열 정부, 특단의 물가대책이란?

농산물 가격 잡는다고 농민만 때려잡는 농산물 수입 정책

농민은 외면하고 유통자본의 배만 불리는 정부지원 정책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윤석열이 폭탄이다 수입농산물이 폭탄이다' 수입농산물 철폐 전국농민대표자대회에서 하원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가 대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 한승호 기자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앞에 비옷을 입은 500여명의 농민들이 모였다. 농민들은 “윤석열이 폭탄이다”, “수입농산물이 폭탄이다”라고 외쳤다. 윤석열 정부의 물가정책과 농민들의 요구 사이에 심각한 엇박자가 있어 보인다.

최근 ‘사과값 1만원’으로 상징되는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국민 장바구니에 주름살이 잔뜩 끼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파 875원은 합리적 가격”이라고 했다가 융탄폭격을 맞았다. 총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정부는 다양한 긴급조치로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윤석열 정부, 특단의 물가대책이란?

먼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1500억원을 신속하게 투입하는 것이다. 이 돈으로 △농산물 납품단가 지원 확대 △농축산물 할인예산 확대 △관세 인하 수입 과일류 품목·물량 확대 등을 즉시 시행하기로 하였다.

구체적으로 농산물 납품단가를 지원해주는데, 기존 204억원에서 959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또 농축산물 할인예산을 23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렸다. 대형마트 등 전국 1만6000개 유통업체에서 농축산물 구입 시 최대 1~2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었는데, 그 지원규모를 늘린다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농산물 가격안정 정책의 핵심은 농산물 수입확대이다.

먼저 바나나·망고·파인애플 등의 수입과일류 31만톤을 관세를 인하하여 신속히 도입한다. 현재 농산물 관세인하 품목은 24종인데, 여기에 체리·키위·망고스틴 등을 추가한다. 적용물량은 ‘무제한’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직수입하는 품목도 기존 바나나·오렌지 2종에서 파인애플·망고·체리를 추가한 5종으로 확대하고, 3월 중 이들 물량이 공급되도록 신속히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당국은 이런 방법을 통해 폭등하던 농산물 가격이 이제 안정추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농민들은 반발하고 국민들은 불안한가.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윤석열이 폭탄이다 수입농산물이 폭탄이다' 수입농산물 철폐 전국농민대표자대회에서 비옷을 입은 한 여성농민이 대파를 들고 윤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 한승호 기자

농산물 가격 잡는다고 농민만 때려잡는 농산물 수입 정책

사과값이 올라서 ‘금사과’라고 하는데 사과농가 중 돈 벌었다는 사람은 없다.

배도 금이고, 대파도 금이라고 하는데 농가 중 부자가 됐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한 알에 1만원 한다는 사과도 지난해 농민 손을 떠날 때는 1,500원, 2,00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농민 한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한 농가가 1년 동안 피땀 흘려 농사지어 벌 수 있는 돈이 고작 1천만원도 되지 않는다.

농민단체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유통업체 지원 및 수입확대에 나서면서 정작 국내 생산 및 공급대책은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농축산물 생산안정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매번 당장의 물가관리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실제로 사과, 대파 등 농산물가격의 상승 원인은 냉해·폭염·집중호우·병충해 등에 따른 작황부진인데,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다. 대신 잦은 농축산물 할인과 수입확대 정책은 농가소득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생산기반 축소와 가격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올해 냉해 예방 정부예산은 20억원에 불과한데, 농산물 가격을 잡겠다고 납품단가 지원과 할인지원 예산 등에는 1500억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농산물 수입으로 농산물 가격을 잡으려는 정부정책이다.

하원오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윤석열정부는 가격이 오를 기미만 보여도 수입농산물을 들여오고 있다. 물가를 핑계로 들여오는 저율관세할당물량(TRQ) 마늘·양파 역시 농민들이 자식 같이 키운 농산물을 갈아엎게 만드는 이유다. 우리 농업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원흉은 바로 수입농산물인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이란, 일정량의 수입농산물에는 저율의 관세를 매기고, 그 정해진 양이 초과하면 고율 관세를 매겨 국내농산물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정책이다. 그런데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물가를 잡는다며 저율관세할당물량을 계속 늘려서 국내 농산물 생산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3월 7일 기자회견에서 김창수 전국마늘생산자협회장은 “지난 2022년 마늘 가격이 오르자마자 정부는 TRQ 수입을 강행했다. 농가 손에서 5,000원에 떠난 마늘이 소비자 손에 건네질 땐 1만5,000원이 되는 기막힌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질 않은 채 당장 손쉬운 TRQ 수입으로 소비자 물가만 낮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TRQ 수입으로도 정부는 소비자 물가조차 낮추지 못했고 이때 도입된 TRQ 마늘이 재고로 남은 탓에 지난해 마늘 가격이 40% 가까이 폭락해 TRQ가 농민을 죽이는 하나의 사례임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이 지난 3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무차별 농산물 수입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수입 중심 농산물 수급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정권 심판을 예고했다.@한국농정신문

농민은 외면하고 유통자본의 배만 불리는 정부지원 정책

농식품부는 지난 2월 농산물 수입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대형유통업체(마트)에 할당관세 수입·판매 자격을 부여했다. 할당관세 수입 물량은 보통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실수요자 배정 방식으로 유통되는데, 이 경우에는 수입·유통업체를 거쳐 대형마트 등으로 할당관세 물량이 흘러들어 간다. 그런데 할당관세 수입·판매 자격을 대형마트에 직접 부여하면 대형마트가 수요자 배정에 직접 참여하여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수입 과일의 마트 판매가격을 낮추고 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수입 과일 판매를 보다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정책의 촛점이 국산 농산물 생산의 안정화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농산물 가격 경쟁력 제고와 판매 활성화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가락동을 비롯한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농민들은 피멍이 들고 독점 도매 법인들만 배를 불리는 왜곡된 농산물 유통구조가 문제된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여기에 농산물 수입판매권한마저 대형마트에 넘기면 유통자본만 살찌게 된다.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국내 과일 생산량이 부족해 가격이 비쌀 경우 수입 과일을, 그것도 단가를 낮춰 대체품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이게 일시적인 대책이 될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과수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수입산이 국내 과수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 정책실장은 “3~4월이면 사과 등의 과수가 냉해 또는 동해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방지해 수정과 결실이 잘되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냉해 방지 시설 관련 농식품부 예산이 20억원 밖에 안 되는데 사실 택도 없다. 지난해와 올해 과일값 폭등했다고 할인쿠폰 지원 등으로 쓴 예산이 500억~600억원은 족히 될 것 같은데 그중 100억원, 200억원만 생산기반 조성에 써도 공급이 안정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비해 국내 공급망 안정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눈을 계속 외국으로 돌려선 안 된다. 국내 생산기반시설은 지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수입으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농식품부의 이번 대형마트 수입과일 직수입·판매 허용 조치가 추후 과수 이외 다른 품목으로도 확대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사실 정부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막 나가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라며 “이번 대형마트 과일 직수입·판매 허용 조치가 고질적인 수급·수입 문제를 겪고 있는 마늘·양파 등의 채소 품목으로도 확대될까 걱정이 크다. 정부가 앞장서 대형마트 등 대기업의 농산물 수입 물꼬를 터버린 것인데, 이 경우 더욱 싼 가격에 수입농산물이 국내로 반입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내 생산기반은 무너질 게 뻔하다. 농산물 전체의 문제로 번질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입농산물은 정말 싼가. 그렇지도 않다.

지난 2월 29일 사과 소매가격은 10개당 2만9,467원으로 전월 대비 8.45% 상승했다. 그런데 사과 가격이 높다고 수입한 오렌지 가격은 10개에 1만7,082원으로 전년 1만5,320원 대비 11.5%나 올랐다. 수입 통해 국산 과일 가격 낮춰 물가 잡겠다고 하더니 수입 오렌지값 상승률이 사과값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실정이다. 결국 정부가 수입 유통업체만 살찌우고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국민을 멍들게 한다는 주장이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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