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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잘못되면 0원, '자발적 초과노동'이 설계돼 있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9/12 09:37
  • 수정일
    2024/09/12 09: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추석에도 씨의 모니터에는 빨간 색 대기자 수가 - 콜센터의 씨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기사입력 2024.09.12. 05:02:42 최종수정 2024.09.12. 08:25:51

일 년 전 이맘때 씨를 만났다. 카페로 걸어들어오는 씨를 보는데 반소매 아래 왼쪽 팔꿈치에 꽤 큰 흉터가 있다. 20대 후반의 여성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자국이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치고 나서 시작한 택배접수 콜센터 알바가 씨의 콜센터 노동의 출발이었다. 다른 알바자리보다 시급이 높았다. 갖고 싶던 노트북을 살 돈을 금방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트북을 샀지만 콜센터 알바는 그만두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돈을 벌어야 하는데 콜센터는 항상 사람을 뽑고 있었다. 은행 콜센터는 돈을 상품으로 다룬다는 것이 무서웠다. 잘 안 맞았다. 통신사 콜센터 몇 곳을 돌아 현재 콜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 통신사 자회사다.

팔꿈치 흉터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신경이 눌려서 수술을 했다고 답한다. 모니터 앞에서 앉아 자료를 입력할 때 팔이 닿는 그 자리다. 수술 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관리를 받았어야 하는데 병원에 못 가는 바람에 흉터가 생겼다. 의사는 '팔꿈치 터널증후군'이라고 했다. 손가락 끝까지 신경이 연결되어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할 만큼 팔꿈치가 아프다는 건 손으로 입력하는 일도 어렵다는 거다. 콜을 받으면 후처리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손이 저리고 힘이 안 들어가는데도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 한 달을 더 출근해야 했다. 수술을 하려고 '병가'를 신청했는데도 미리 계획한 휴가가 아니니 근무를 빼 줄 수 없다고 회사 팀장이 말했다고 했다. '무급'이라고 했다. 어차피 '무급'인데 왜 치료를 방해하는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급병가'조차 당연하지 않았다.

의사는 팔꿈치 터널증후군이 '골프나 테니스 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하더니 더 묻지 않았다. 산재 신청을 권유했으면 좋으련만 여러 가지로 먼 얘기다. 산재 같은 건 처음부터 씨의 마음에도 회사의 방침에도 고려 대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씨는 수술 당일을 포함해서 겨우 3일의 무급 병가를 썼다고 한다. 치료비는 본인 카드로 긁고 약간의 실손보험을 받았다. 일을 못한 날만큼 들어온 급여가 줄었지만 원룸 월세는 어김없이 나가고 빚도 있었고, 병원비도 나갔다. 생활비가 점점 부족해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올라타 있었다고 씨가 말했다.

팔꿈치 수술을 하고부터는 한 단계 더 깊은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였다. 팔꿈치가 나으려면 이 일을 그만해야 하는데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씨의 막막한 마음을 회사는 안다. 노동자를 묶어두는 것은 쉽다. 콜센터 일을 하면서 감정이 힘들 때, 손목이 아플 때 '아파서 쉬고 싶다' 고 말해 봤지만 '그 정도 일에 쉬고 싶으면 나가도 상관없다' 는 암묵적인 답이 돌아왔다. 말 없는 말, 그 분위기 아래서 일해 왔고, 마침내 팔꿈치 신경이 상한 것이다.

▲ 콜센터 상담원들(사진은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기본급으로 해서 전화를 받는 콜 수에 따라 인센티브라는 이름으로 약간 올리고, 주말과 야간 당직 근무 같은 시간 외 수당을 붙여서 '더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게 콜센터의 급여책정 방식이다. 어떤 고객이 걸리느냐에 따라서 통화가 길어질 수도 있고 순조롭게 끊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콜 수로 인센티브를 주는가. 같은 환경에서 날마다 60콜을 받는 사람이 있고 100콜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100콜을 받는 사람의 스킬이 우수하니까 인센티브를 준다. 올리는 장치가 있으면 깎는 장치도 있었다. 씨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복잡한 평가방식을 고안해서 급여를 다시 깎아내리는 기술이 섬세하게 개발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팀장들은 팀원들이 콜수를 높이도록 독려하고 감시한다. 팀원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에는 다른 평가도 있다.

'생산성이라거나, 얼마나 전화를 빨리 받았는지

녹취평가, 얼마나 친절하게 매뉴얼대로 얘기했는가

근태, 직무평가 하나하나 다 신경써서 점수를 어느 정도 이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라도 잘못되면 인센티브가 0원'

이 된다. 0원이 되면?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이번 달에 기본급만 받는 건가. 씨는 인센티브가 0이 되어 기본급만 받는 공포를 거듭 말했다. 씨가 한 말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씨의 기운이 닳아 0이 되는 것처럼 느낀다. 점수는 매일 나온다. 팀장이 등급과 점수를 전파한다. 팀별 순위가 팀장의 점수다. A등급, B등급, C등급... 어떤 팀장은 시간대별로 등급을 전파한다. 고객이 '매우 불만족'을 찍으면 팀 분위기가 다운된다. 팀원이 급휴(급하게 쓰는 휴가)를 써도 마이너스 점수가 생긴다. 급휴 개수가 많으면 팀장이 괴로워한다. 씨가 팔꿈치 수술을 늦게 받은 이유가 '급휴 제로' 방침 때문이었다. 팀은 6개월마다 갈린다. 팀장도 바뀌고 팀원들도 달라지고 앉는 자리도 달라진다. 팀웍이 안 좋은 이들이 있어서라고 짐작하는데 씨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옆자리 동료와 유대감이 생기는 것을 막고 긴장을 만들어 경쟁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365일 24시간 열려있는 콜센터에서 씨는 주간조를 기본으로 주말과 공휴일, 명절 등에 근무를 자원한다. 주말이나 명절은 정해진 당직 개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자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신 주말에 일하면 평일 하루를 쉴 수 있다. 이때 쉬지 않고 1.5배로 나오는 수당을 받는다. 이렇게 월급을 끌어모은다. 평일엔 오전 9시 출근보다 한 시간을 당겨서 나오는 식으로 연장근무를 한다. 통상 매월 5개의 주말 당직 개수가 정해진다. 씨가 휴대폰을 열어 스케줄표를 보여준다. 5개, 6개의 칸이 채워져 있는 주가 많다. '이론상으로는 안 되지만 지난 주 일요일부터 이번 주 토요일까지, 주 52시간을 비껴가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기본급을 짜게(낮게) 책정한 다음 모아, 모아서 남들 받는 만큼 월급을 가져가야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자발적 초과노동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달이 얼마를 인센티브로 모으나요?"

"240만원은 받아야 돼요. 항상 생각을 해요. 이번 달 당직을 쉬어야 할까? 다 수당으로 받을까?"

"기본급이 얼마였죠?"

"200만원이요. 실수령은 180만원"

인센티브로 모으는 금액이 얼마인가 궁금했다. 적어 보인다. 씨도 알 것이다. 자신의 노동에 비해 너무 적게 받을 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씨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낸 것은 팔꿈치 수술 때문은 아니었다. '공황장애'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통화 중인 고객이 계속 욕설을 하는 일이 있었다. 30여분 욕설이 지속되었는데 팀장이 제지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욕설을 듣는 동안 통화가 밀려 다음 콜을 받아야 했다. 휴식시간을 얻지 못했다.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지침>이 회사에 있지만 회사는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욕설로 힘들었던 일이 있은 후 씨는 한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실수를 했다. 그룹장의 호출을 받았다. 거의 없는 일이다. 그룹장이 한 말은 '멘탈 관리'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콜을 받는 중에 스트레스가 심하면 발이 빠른 동료들은 10분 이내에 건물 밖에 나가 흡연을 하고 오기도 하지만 씨는 주로 퇴근 후에 몰아서 흡연을 한다.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휴식시간을 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서 1시간 내내 담배를 핀 적도 있다. 휴식시간에 흡연을 하러 가서 10분 내 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씨의 모니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씨의 휴식은 우선 사휴(사적인 휴식)인지 공휴(공적인 휴식)인지 분류되어 있다. 전체 부서별로 전화가 얼마나 밀려있는지, 팀별로 대기하는 고객이 몇 명인지, 전화를 해 왔지만 연결이 안 돼서 끊은 사람이 몇 명인지 나온다. 대기자 수, 나의 콜 수, 동료의 콜 수, 누가 자리에 없는지, 무엇을 하는지 빨간색의 숫자들이 껌뻑거린다. 내가 없는 사이 응답률이 더 낮아졌다면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다시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에 씨와 동료들은 식당에 나가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대신(씨의 회사가 입주한 빌딩엔 고급식당들은 입점해 있는데 직원식당은 없다), 회사 휴게실에서 컵라면과 즉석밥을 먹는다. 그리고 각자의 장소에서 흡연을 한다.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나 흡연의 부작용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처럼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에 위배 될만한 일을 드러내고 하지 않는다. 씨의 주석에 의하면 회사가 '꼬투리 잡힐 만한 걸 명문화해 두진 않는다', 대신 '룰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압력을 넣는다. 씨와 동료들의 노동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회사는 직원 직무교육을 온라인 자료로 대체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직원 보수교육을 업무시간 중에 진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 재택근무를 해도 관리가 된다는 것을 확인해서인지 회사는 이제, 자료만 올리고는 '안 읽어서 일어나는 문제는 네 책임'이라고 한다.

상품도 수시로 바꾸고 서비스 내용도 달라진다. 일단 고객과 통화하라고 회사가 지시하면 노동자들은 콜을 받을 수 있을까. 받을 수 있다. 동료들을 생각해서 노동자들은 공부한다. 다음 전화를 받는 이가 힘들어질까 봐 걱정한다. 대면 교육이 사라진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대면 교육만큼의 효율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콜센터에서 생산이 일어나는 곳, 그러니까 서비스노동이 행해지는 곳은 씨의 전화받기 노동 외에는 없었다. 씨가 받는 수많은 평가항목 중에 의미 있는 것이 있는가. 콜을 받는 노동자의 노동에 기대 서비스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대기업과, 그 소비자인 나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씨는 지금 성대결절도 겪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목소리가 안 나오면 회사가 나가라고 할 것이고 그때는 무엇을 할 것인지 막막하다고 했다. 씨의 팔꿈치 흉터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 씨를 연결해 주었으나 씨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 이 연재는 2023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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