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우원식 국회의장의 예산안 상정 연기로 야당 감액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초유의 상황은 피했지만, 당분간 여야의 첨예한 대치 구도가 완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야 모두 ‘더 급한 건 상대방’이란 판단 아래 ‘버티기’에 들어갈 태세다. 담력 과시용 ‘치킨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날 대구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산안 대치와 관련해 “어디에다 썼는지도 모르는 (권력기관) 특수활동비를 삭감한 것인데, 이것 때문에 (나라) 살림을 못 하겠다는 건 사실 좀 당황스러운 이야기”라며 “정부가 증액이 필요하면 (수정된) 예산안을 냈어야 한다. 무능했거나 다른 작전을 쓰다가 문제가 된 것”이라고 정부·여당에 화살을 돌렸다. 민주당은 ‘쌈짓돈’처럼 쓰여온 특활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고,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사용처를 증빙하면 삭감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만큼 특활비 삭감의 정당성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본다.
감액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요구할 추가경정예산에서 충당할 수 있다는 것도 민주당의 ‘믿는 구석’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추경 편성에 예산안과 같은 법정 처리시한이 따라붙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필요 예산을 다시 늘릴 수 있다고 본다. 당 지도부 소속의 한 의원은 “민심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서 떠나 있는데, 민주당 때문에 나라 무너진다는 주장을 귀담아들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했다.
문제는 국회 심사 단계에서 증액된 △호남고속철도 건설(277억원) △새만금 신공항 관련 공사(100억원)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2조원) 등의 무산을 감수하고 벌이는 ‘벼랑 끝 싸움’이라 자칫 얻는 것 없이 힘만 과시하고 끝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원내 지도부가 지역구 민원 해소용 ‘쪽지 예산은 없다’고 사전 고지했지만 막상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예산안 국면이 끝나면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가 버티면 파행 예산에 따른 비난과 역풍은 민주당이 고스란히 맞게 된다’는 판단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날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드러났다. 의총 참석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추경호 원내대표는 “여당은 정부 예산안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않다”며 “이대로 가면 민주당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예산을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지역에 필요한 예산이 이재명 때문에 안 된다’는 현수막을 걸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지역구 의원들 처지에선 ‘특활비 삭감’이라는 명분보다는 ‘제 지역 예산 확보’라는 실리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셈법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민생과 치안 등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할 계획이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원내 지도부에 “민주당이 삭감한 주요 예산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민주당이 민생 예산을 삭감했다고 이슈화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한동훈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국민들 밤길 편하게 다니게 하는 경찰의 치안 유지를 위한 특수활동비는 0원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고한솔 신민정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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