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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란 무엇인가

사회정의란 무엇인가
 
[연재 130] 제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 파헤친
 
유태영 박사
기사입력: 2013/10/31 [11: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한국대중운동사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 촛불항쟁,촛불항쟁은 이시대의 대표적인 구태정치인 사대정치에 대한 항거투쟁이자 시대흐름이다. 폭압의 박근혜정부들어 이 촛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자주민보


1. <박정희 제5공화국>이 재현된 <박근혜 국정원공화국>


사회정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정의는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한 인격체로 존중받도록 규정한다. 그러므로 인종과 종교, 언어와 연령, 빈부의 차이 등이 다르다 할지라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인간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생활조건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라고 하는 하나의 <전체가족>에 속하는 한 개인적인 사람들로서 사회적 평등은 곧 사회정의를 뜻하는 것이다.


사회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하는 사회적 기풍이 중요하다. 사회적 기풍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기풍은 민중들의 삶의 질을 의미한다.

민중들의 삶의 질은 정의로운 제도가 확립이 됨으로서만 가능하가.


사회정의란 민중의 삶에 있어서 시대적 진실과 직결되는 정의로운 사회적인 인간성회복, 인권회복, 민주회복 등 다양한 과제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회정의는 민중들의 참된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서구문명권에는 민중을 위한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괴물이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민중을 위한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괴물은 강대국으로 자처하고 있는 서구 문명권에 3개 집단이 있는데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인중주의자> 들이다.


서구 문명권의 이 세 집단은 침략적인 식민지화의 성공을 제1차적 과제로 삼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침략과 식민지의 성취를 오직 유일한 사회적 목적달성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을 위한 사회정의 따위는 생각도 않는다.


그러므로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있는데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서구 문명권은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악마적 세력들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는 민중을 위한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악마적 세력에 대하여 선과 악의 두 가지 종류의 윤리로 분석했다.


첫째로 <동기윤리>이다. 동기윤리는 어떤 행위라도 동기만 선하다면 그 결과야 어떻게 되든지 문제 삼지 않는다고 주장을 한다. 동기윤리를 주장하는 정치와 종교는 사회정의를 거부하는 악마적 세력이라고 베버는 못 박았다.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이 선한 마음으로 기도만 열심히 하면 결과야 어떻든 신의 뜻으로 책임을 전가시키고 마는 무책임한 위선자들이 될 수 있다. 정치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장은 동기윤리에 속한다. 정치가들은 의욕적으로 온갖 좋은 말들을 총동원하여 선한 동기를 주장한다. 동기가 선하고 건설적이기만 하면 시행 절차방법과 결과에 대하여는 어떻게 되든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


그러므로 동기윤리를 주장하는 부류의 정치가들은 개인주의적이며 동시에 이기주의적인 위선자들이라고 베버는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동기윤리를 주장하는 종교인들도 말은 좋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위선자들이며 종교적 명분으로 사회정의를 회피하는 악마적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혹평했다.


둘째로 <책임윤리> 이다. 책임윤리는 동기가 좋아야할 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 이 동기와 행위가 부합되어야만 온전한 사회정의를 성취할 수 있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책임유리를 주장하는 종교인들이야 말로 실제적으로 유신론적인 참된 종교인들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는 진실한 사람들이다. 정치가들이 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조심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한다.


그 이유는 동기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과에 대해서 까지도 책임감을 느끼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정치가는 사회의 귀중한 보화이다. 진실한 종교인들은 기도를 열심히 했으면 기도를 한 것만큼 행동에 힘쓰고 있다. 기도의 공수표를 난발하는 것은 양심을 속이는 위선적 바리새인의 행위라고 베버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진실한 정치가들과 신중한 종교인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정의는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진선미의 사회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2. 사회정의를 파괴한 박정희 제5공화국


오늘 한국에서 민중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난과 사회적 병폐들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일제시대의 최악의 병폐가 이승만 정권하에서 시퍼렇게 살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박정희 유신정권이 냉전논리를 뿌리 깊게 내림으로써 사회정의가 완전히 파괴됐다는 사실이다.


1945년의 이승만이 등장하여 1960년까지 15년 동안 자유당의 독재정치를 했다.

1960-80년으로 연속된 박정희 쿠데타 정권이 20년 동안 군부독재 정치를 했다.


8.15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 35년 동안 민중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친미와 반민족적인 독재정치를 했기 때문에 <사회정의>는 완전히 말살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공정과 공평이라고 하는 사회적 단어는 한국 민중들의 삶속에서 아득히 사라져 없어지고 말았다.


박정희의 제1, 2공화국의 폭력적 정치풍토 아래에서 이성적 설득과 도덕적인 판단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조선조 500년 역사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문치정치유산을 박정희 정권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폭 력정치 아래에서 사회정의라는 개념은 완전히 말살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후에 박정희 제3,4공화국 시대는 어떠했는가? 제3, 4공화국 시대에는 악명높은 <유신체제>로 이어졌다. 박정희 독재정치에서 사회정의는 씨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최악의 유신독재의 폭정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유신>이라는 단어는 1880년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의 명칭까지도 일본을 모방하고 있었다.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최악의 군사독재정권으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오히려 내심으로는 위기의식을 감지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1979년 10월 29일 저녁 7시 42분에 궁정동 안가에서 총소리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쓰러진 사건은 미국의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김재규는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라고 역설했지만 법정진술에서 묵살되고 사형을 당했다.


하지만 1980년 5월에 전두환의 5월 광주 참화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박정희의 총격사건에 대한 김재규-미국관련 규명제기는 노력부족으로 불가능 했다.


결론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36년간의 일제 쇠사슬에서 벗어난 후에 한국정부가 수립됐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또 다시 이승만 독재 정권, 그리고 박정희의 군부정권 아래에서 모두 35년 동안이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으며 혼란은 오늘까지 <사회정의>의 부재로 계속되고 있다.


민중이 종이 되었으며 민중이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했다. 민중이 주격에서 피지배자로 전락되는 암흑의 역사 속에서 <사회정의>는 완전히 사멸되고 있을 뿐이었다.


민중들은 이승만 때까지만 해도 가장 부패한 곳은 정치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제5공화국 시대를 거치면서 민중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말 부패한 곳은 정치권이 아니라 군부와 군인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승만 독재 때와 박정희 군정 아래에서 <사회정의>를 염원하는 것은 메마른 사막에서 생수를 찾아 헤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광주는 다시 말을 해야 한다.


광주사태는 의거이든 항쟁이든 사람들이 턱없이 죽고 부상당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비극적 사태이었다. 그 비극은 민중의 원한만을 남기고 끝났다. 민중의 원한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광주사태는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광주시민들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었다. 광주사태는 전두환 역적패당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민주화를 염원하는 한국의 민중들 전체를 향한 반민주적이며 반민족적인 반란을 일으킨 사태였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광주사태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또 다른 형태로의 연장이었으며 또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미국의 손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광주문제의 해결은 민족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나라와 민중들 모두의 사명이며 과제이다.


광주사태는 민족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족의 통일과 민주화의 과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두환 패당을 통하여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유신독재의 유산들이 살아남아 있으면서 오늘은 박근혜대통령을 통하여 또 다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정의를 위해 책임지고 싸워야할 주체는 오늘의 민중이다.


불법적이며 반민족적으로 상처를 남긴 전두환 역적패당이 광주사태로 인하여 남긴 망국적인 유산을 오늘의 시점에서 합법적이며 민주적으로 청산하고 해결하는 것은 박근혜정권 아래에서 <사회정의>를 회복하고 확립시켜야할 민중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은 어디까지나 현재를 포함하여 미래의 민족의 자주화와 통일문제로 연결되어 남아 있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전두환 찢어 죽이자>라고 전두환, 노태우정권 당시에 용감하게 외쳤던 민주화 불꽃의 심지를 오늘 또 다시 뽑아올리고 기름을 부어 온누리에 밝혀야 한다.

오늘의 <제2의 전두환>을 불태워 버릴 과제가 민중들에게 부과되어 있다.


'양심적 정치인도, 종교인도, 학생도, 교수도 해외동포도, 광주도 대구와 부산도, 상인도, 농민도, 노동자들 모두가 자기들의 방식대로 총동원하여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로 이어지는 제2의 광주, 오늘의 민족의 비극을 끝장내자.'
이것이 바로 광주 영령들의 목소리이다.

동시에 전체 민중은 또 다시 보다 큰 소리로 자주와 통일을 외치면서 제2의 광주항쟁을 계속해야할 민족사적인 과제와 사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3. 박정희 제5공화국이 재현된 박근혜 국정원공화국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후에 장기집권 위해 이른바 3선개헌을 감행했다. 악명높은 3선개헌안은 1969년 9월14일 새벽2시에 국회 별관 3층에서 경찰 기동대 1,200명이 교통을 차단시킨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여당 국회의원 122명만이 참가한 변칙투표로 통과되었다.

박정희는 3선개헌으로 유신체제를 확립하고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 1979년 10월 29일이까지 18년 동안 집권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바로 그날 저녁 7시 42분에 김재규의 총격에 쓰러졌다..


그런데 제5공화국의 또 다른 총격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75년 8월 15일에 육영수 저격사건이었다. 육영수의 총격사망 사건은 의문투성이로 오늘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문세광은 사형을 당하는 그날 아침에도 <나는 죽지않는다>라고 주장하면 무엇인가 배후의 세력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 육영수 저격사건의 진실은 언젠가는 분명히 밝혀지고야 말 것이다.


어쨌든 박근혜대통령은 청와대에서 4년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참하게도 모두가 비밀에 쌓여 있는 총격에 의하여 쓰러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근혜대통령은 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를 대신하여 청와대의 영부인 (First Lady) 행세를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박근혜는 그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탄에 쓰러져간 악몽의 그 장소에서 그대로 그 뒤를 따라 가고 있는데 또 어떤 특별한 각오라도 하고 있는지 민중들은 매우 불안한 생각을 금치 못하고 있다.


3선개헌 당시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김형욱과 박사월 공저로 출판된 책이 있는 데 그 책은 <혁명과 우상>이라는 책으로 한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책의 page 285의 기록에 의하면 1969년 9월 14일에 제5공화국의 3선개혁안이 국회통과 채택된 과정을 둘러싸고 청와대 내부와 외부에서 전개되고 있던 권력투쟁의 난투극이 하나도 숨김없이 낱낱이 밝혀져 있다.


일반 민중들이 가히 상상도할 수 없는 비열한 권력쟁탈전에 대하여 6년 8개월 동안 중안정보부를 이끌어온 김형욱의 생생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너무나 방대한 자료들이지만 독자들에게 제5공화국이라고 하는 명칭만이라도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빙산의 일각으로 간추려 기록한다.


ㄱ.김종필은 박정희와 거리가 항상 있었다. 하지만 3선개헌을 지지함으로서 박정희로부터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대가성 지지조건으로 동조자들을 집결시켰다.


ㄴ. 김종필과 김승곤 두 사람은 결탁하여 김형욱과 이후락을 권력에서 제거하려고 박정희에게 추방을 건의하여 모략을 항상 꾸미고 있었다.


ㄷ. 박종규 청와대 실장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중요 정치인들의 전화를 조직적으로 완전히 도청하고 그 도청자료들을 녹음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ㄹ. 박정희는 3선개헌안 통과를 결사적으로 요구하고 그 누구든지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자는 적으로 여기고 복수한다. 그는 3선개헌안 투표하는 그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새벽에 통과 보고를 받고 기뻐 소동을 부렸다고 한다.


ㅁ. 박정희는 <합리적 충성>은 아예 싫어하고 무조건 <절대충성>을 표명해야만 기뻐하고 신임하여 중요한 지위와 직책을 부여한다. 참모 중에서 조금이라도 정의로운 의견을 발표하면 박정희는 당장 <그 새끼 이제는 필요 없어>라고 큰 소리를 친다고 했다.


ㅂ.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박 대통령은 단군이래 최고의 지도자 이십니다>라고 입에 침도 무치지 않고 핏대를 올려야만 고관직을 오래 동안 지킬 수 있다.


ㅁ. 학생 데모에 대하여 탱크를 몰고 대학 캠퍼스에 밀고 들어가는 것쯤은 약과로 여기고 그러다가 언론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라도 나면 아무리 변명하고 아첨해도 관계 장관들의 목이 날아간다. 그러므로 어느 고관직에 있는 자라할지라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의심 받지 않기 위해서 살살 눈치철학으로 고관직을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김형욱의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잘못된 역사 속에 안주하고 있는 모든 기득권자들에게 역사의식을 깨우쳐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김형욱 자신도 비참한 운명의 소유자이지만 그의 양심적 고백의 글은 바른 역사인식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68년이 된 오늘에 있어서 분단과 피지배의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 버리지 않고 고의적으로 망국적인 사대주의적 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박근혜정권의 현실이다.


<박정희 제5공화국-박근혜 국정원공화국>이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박근혜정권을 창출한 국정원의 공작선거가 박정희 제5공화국이 경찰기동대를 동원하여 패거리 불법선거를 치룬 모양과 너무나도 정확하게 닮은꼴이다. 그래서 <그 아버지의 그 딸> 이라는 말들이 민중들의 입에서 터져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발탁한 측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자리에서 제거하는 것도 똑같다.


그러므로 오늘 민중들은 역사바로알기와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에 총력을 집

중하여야 한다. 윗물은 더러워도 아랫물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박정희 제5공확국-박근혜국정원공회국의 연결고리를 반드시 끊어 단절시키는 과업을 자파의 이익을 초월한 단결된 투쟁으로 단연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역사의 더러운 윗물이 맑은 생수가 되여 흐르게 하는 혁명적 개혁을 성취해야 하겠다.


오죽하면 한국의 유명한 양심적인 학자인 손봉호 교수는 그의 책 <윗물은 더러워도>라는 책을 출판했을까! 그는 윗물은 늘 더럽다라는 숙명론적인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역사의 맑은 물이 흐르게 해야 한다고 젊은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선배보다 후배가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후배들이 선배들에 의해 더러워진 윗물의 물줄기 개혁하여 새로운 역사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도록 하는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4. 미국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국가의 이익 때문에 미국이 필요하며 반미를 주장하는 것은 국가적 이익에 손해를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의 이익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 정부는 국가적 이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ㄱ. 국가가 지원하는 대기업체의 이익 ㄴ. 군부와 관련 된 많은 조직체들의 이익 ㄷ. 정부의 요인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합법적 업체들의 이익 ㄹ. 다양한 조직들

과 단체들의 이익 등이다. 이와 같이 많은 기업체들과 단체들이 바로 국가 이익의 주요한 관심이 되어있다. 그리고 보수주의이며 반공주의적인 많은 종교단체들이 역시 국가의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주장하기를 모든 기업체들과 단체들은 반드시 지켜야할 법과 규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말한 법과 규칙은 무엇인가?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기업체나 단체들은 반드시 <미국과 관계>를 맺는 친서방 산업체라야만 한다고 절대적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없는 나라들과 교역 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 될 수 없다고 한국정부는 주장한다.


주목해야할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국익이라고 하는 세계지배논리와 한국의 이익은 반드시 미국과 추종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은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야만 양국이 모두 이익을 획득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대하여 한국 정부는 오직 <정치적 안보> 때문이라는 이유로 알고도 모르는 척 하면서 엄청난 피지배자의 대가를 미국에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조건하에서 <한국의 미래는 없다>라고 민중들이 목청 높이 웨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대정권은 물론이고 오늘 박근혜정권도 역시 선거공약으로 민중에게 약속한 복지혜택 시행마저도 식은 죽 먹기로 어기면서 미국에 상납금을 지불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미국에게 퍼주기로 미군의 한국 주둔비의 증가요구와 또 실효성도 없는 미국산 폐기 항공기 등 쓸모없는 무기를 비싼 가격으로 사들이는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우리민족이 미국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로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지니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뒷받침하고 있는 절반짜리 민주주의 나라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선적으로 포장을 하고 있는 상업주의 나라이다. 미국은 정치도 교육도 윤리도덕과 종교도 모두가 다 이익추구의 상업적인 정책을 우선순위로 삼는 나라이다.


둘째는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오직 국가의 안보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 강조하는 안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그것은 오직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의 안보이다. 한국이 미국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민중들 양키 고우 홈 반미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미국이 미국의 안보를 위하여 68년간 분단의 역사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주장이다.


미국이 지원한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주의는 전혀 없었다. 미국은 친일 세력과 그리고 냉전사고방식에 근거하여 분단된 단독 정부를 수립하도록 이승만을 적극 지원함으로서 결국 분단고착과 친일 친미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인준하여 군부독재정권을 암묵적으로 꾸준히 지원해주었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20년 동안 존속하도록 작용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전두환의 정권탈취를 뒤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존속시킨 세력은 주한 미군 이였다. 전두환의 광주진격사태는 전방에 있는 사단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미8군이 암묵적으로 허락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서로 형이여 아우여 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미국은 배후에서 이를 조정하면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전두환이 백담사에 가서 편히 휴양한 것은 노태우와 전두환 둘이 고스톱 게임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러한 군인들의 비인격적인 횡포는 세계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로마의 군대, 나치의 군대, 파시스트들의 군대 그리고 냉전을 핑계 삼아 제3세계이서 저지르고 있는 미국의 침략행위 등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이명박의 엉뚱한 주장은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하여 고안해낸 간교한 반북반통일과 그리고 친미추종주의를 내놓는 수단이었다.


이명박의 BBK사건에 대하여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이 대 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명박은 자신의 정치적 지도력이 빈약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하여 <뼛속까지 친미주의>라고 하는 외골수의 길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의 파렴치범죄는 얼마나 될까? 이명박을 처벌하는 daum net이 설치됐음으로 독자들이 많이 이용하기 바라면서 지면상 제한으로 이것으로 그친다.


오늘 부끄러운 박근혜정권의 무분별한 친미굴종 외교행태를 보면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가 한탄스럽다. 저 아득한 남미와 아프리카 후진국들의 옛 모습으로 한국이 추락하고 있는데 대하여 분노를 느낀다. 오늘 박근혜정권은 제3서계의 대표적인 친미나라가 되고 있는데 미국에 충성하고 스스로 예속되는 정책을 확실히 표방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대하여 68년 동안 짝사랑을 하다가 노년기에 들어섰다. 오늘 우리 민족의 짝사랑의 처량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뻔히 알면서도 짝사랑 받기를 68년 동안이나 즐기고 있는 미국은 더 사악하고 간교하다.


그런데 오늘 미국도 동서남북 사면초과로 인하여 고립되어 있으면서 한국에 대하여 오히려 엄살을 부리고 있다. 미군의 한국 주둔비를 올리는가 하면 또 미국에서 용도 폐기되어 무용지물이 된 미국의 무기들을 비싼 값으로 팔아달라고 애원과 협박을 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우리 민족이 미국에 의하여 너무나도 오래 동안 횡포와 고난을 당하고 있는 비극적인 역사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민족의 이름으로 외치는 민중의 분노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혁명과 개혁은 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아픔을 느끼며 새롭고 용감하게 비약하는 정신에서만 가능한 희망이다.


박근혜정부에게 이런 설교 같은 말을 하는 것조차 아마도 어리석은 사람의 시간낭비로 여겨질 것 같다.



이 글을 맺으며


나의 존재가 타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아무도 봐 줄 수 없는 곳의 꽃은 꽃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나의 존재가 아닌 타자와 따로 떨어져 분리되어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개인도 한 주체이기는 하지만 <나와 이웃>과 <나와 사회>로 연결되어야만 참다운 주체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사회정의>를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사회정의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오늘과 같이 <사회정의>의 고갈이 계속된다.


삶에 고달픈 민중이 방황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정치권에서 <사회정의>의 부재에 대한 시급한 문제를 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26일이 바로 34년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격에 쓰러진 날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가족들의 비극을 회상하면서 하는 말이 요상스럽게 들려온다.

<아버지 시대의 상처를 제가 안고 가겠다.>라고 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아버지의 상처를 <복수>하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또 아버지의 뒤를 따라 그대로 <독재>를 반복하여 계속하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어쨌든 아버지 박정희의 사회정의 파괴에 대한 사과의 말은 전혀 없다.


첫째로 만일 박근혜정권이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면 민주주의 운동과 통일운동권진영에게 가해질 박해와 탄압은 더욱 더 극심해 질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로 만일 아버지 식으로 <독재>를 계속하겠다는 말로 해석을 한다면 친미와 반통일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독립국가임을 포기하고 미국에 완전히 부속되는 행정구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 확실하다.


참으로 민중들을 슬프고 분노케 하는 박근혜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추모사다.


오늘 한국의 문제는 여당이냐 야당이냐의 당권의 문제가 아니라 박정희정권과 같이 미국과 일본에게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팔아넘기면서 끝까지 정치적인 기득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야욕이다.


그리고 보다 더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박근혜의 주변에 둘러서서 정권 야욕의 노예들이 되고 있는 많은 남성정치인들의 행렬이다. 체면 불구하고 박근혜대통령에 바짝 다가서서 정권의 고관직을 확보하려고 추태를 부리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끝만치도 야권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면 직책의 고하를 막론하고 국정원의 칼에 의하여 목이 달아난다. 이것이 박근혜대통령의 집권 1년도 채못된 오늘의 청와대의 실정이다.


이것은 또 무었을 뜻하는 말인가? 이것은 김형욱-박사월 공저인 <혁명과 우상>에서 발견되는 정확한 기록들을 통하여 박정희정권의 지독한 통치행태를 박근혜대통령이 아버지 밑에서 정확하게 배웠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박근혜는 9살 때 청와대에 들어가 22살 때 육영수가 사망했다. 박는혜는 5년간 육영수를 대신하여 영부인(First Lady) 노릇하면서 박정희 정치행태를 그대로 정확하게 배우고 설득했다.


그러하니 박근혜의 통치형태와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22살에서 27살에 이르는 5년 동안에 아버지 밑에서, 아니 아버지와 함께 직접 배우고 터득하여 막강한 정치력과 통치수단을 획득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는 강압적 통치력과 정치적인 흉계들을 능히 자유자제로 행사하고 있다.


서울에서 들여오는 이야기들은 벌서부터 박근혜정부는 이명박보다 훨씬 더 포악하고 극악한 통치행태를 나타내고 있다고들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의 통치행태가 아버지를 닮아 갈수록 그 운명도 닮아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래서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태영, 10/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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