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유착한 분단 기득권 세력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반드시 정치 보복을 할 것”이라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가해자 집단이 피해자에게 정치 보복 프레임을 뒤집어씌워 앞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5·18을 내란으로 조작하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괴 죄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사형수 신분으로 감옥에 있을 때 그는 가족과 동지들에게 “내가 죽더라도 정치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유언처럼 했습니다. 감옥에서 이런 글도 썼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분명히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일제 식민지, 6·25 동족 전쟁 등의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원한과 증오가 쌓여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이 문제는 법과 정의로만 해결될 수 없다. 잘못하면 보복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용서와 화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후보는 ‘국민 대화합을 위한 정치 보복 방지와 차별대우 금지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정치 보복, 차별 대우, 대통령 친족의 부당 행위 세가지를 금지하는 이른바 ‘3금법’이었습니다. 법안은 정치 보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정치적 이념, 소속 정당 및 단체 등의 차이 또는 개인이나 정당·단체에 대한 지지·반대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뒤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법제화하기에는 정치 보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 8일 이건개 자민련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정치 보복 금지를 위한 법치 확립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제안 이유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정권 교체나 정치적 변동이 있는 때에 정치적 이념이나 지지 정당 등을 이유로 하여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예상될 수 있는 바 이를 방지하고 위법·부당한 정치 보복에 대해서는 구제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정치 민주화와 인권 보장을 도모하고자 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법률안의 핵심 용어인 정치 보복의 정의 규정에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정치 보복의 명확한 범위 설정이 곤란하다”고 부정적인 검토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법안은 15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3금법을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먼저 당선자 신분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도록 정부 예산 2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재야와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이 기념관 건립 추진 명예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김대중 대통령도 딱 한 사람은 용서가 잘 안 돼서 오랫동안 마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디제이(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강삼재 사무총장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음속에서 강삼재 사무총장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경쟁자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검찰에 의해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습니다. 두번 구속 위기에 처했습니다. 10여개 혐의로 다섯개의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와중에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4월15일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에서 유시민 작가,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 대담했습니다. 정치 보복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저는 인생사에서 누가 저를 괴롭혔다고 보복한 일이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진상을 가리고 책임질 거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로 쓸데없이 뒤져서 괴롭히거나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통합이 공동체 책임자의 최고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기소하기 위해서 수사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해야 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다. 지금 검사가 너무 없다. 국수본(국가수사본부)의 독립성과 역량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즉각 보수 쪽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조선일보는 17일치 신문 1면 머리에 “군 방첩사 3개로 쪼갠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3면 기사에는 “간첩 잡는 방첩사를 세 토막, 검찰은 공소청 격하…‘적폐청산 시즌2’”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민주당은 방첩사를 3개로 쪼개는 방안은 실무선의 검토일 뿐이라고 부인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련의 개혁 작업이 문재인 정부가 했던 ‘적폐청산’을 떠올리게 하고 사실상 ‘정치 보복’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첩사나 검찰을 건드리는 것은 정치 보복이니 하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7일 비상대책위에서 이재명 후보를 ‘저격’했습니다.
“2023년 9월 본인의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민주당 일부 의원이 검찰과 암거래를 했다는 짐작만으로 비명횡사 공천을 했다. 이것은 정치 보복이자 숙청이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는 검찰을 해체하여 공소청과 수사청으로 분리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 자체가 자신을 수사한 검찰을 둘로 찢어버리겠다는 보복 예고이다. 반면 공수처는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통령 수사에서 보았듯이 공수처는 권한과 실력도 없이 민주당의 사법 흥신소 노릇을 했다. 이러한 공수처를 강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규모 정치 보복을 위한 빌드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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