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염된 권위와 존중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리는 말이 스승이다. 내가 대학 선생이기에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5월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그때가 되면 나를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학생, 졸업생도 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넘어간다. 별 의미 없는 날이 되었다. 스승이라는 말이 가장 잘 적용되는 곳은 학교여야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스승의 뜻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온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어느 학교든 관계없이 지금 한국의 학교는 학생을 "가르쳐서 인도"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진즉에 붕괴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한 입시 준비기관이 되었다. 입시 준비는 교육이 아니다. 대학은 취업 준비기관이 되었다. 한탄하는 게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이 글에서 한국 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논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관계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만하다.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바둑영화 <승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승은 누구이고 권위는 무엇인가?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혹은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이다. 그렇다면 그런 힘이나 위신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학교의 선생, 법관, 혹은 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이 목에 힘을 주고 남들에게 자신을 "존중"하라고 요구하면 되는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승부>는 알려준다.
나는 바둑에 문외한이지만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조훈현 국수(이병헌)와 이창호 국수(유아인, 아래 호칭 생략)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벌였던 치열한 바둑 전투도 기억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제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 사제 관계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몰랐다. <승부>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좋은 문학이나 영화의 고갱이는 인간관계의 깊은 탐색이다.
영화평론가는 아니지만 영화 애호가로서 나는 <승부>를 올해 들어 지금까지 본 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로 꼽는다. 어디서나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모든 일은 결국 삶의 문제가 된다. 그것이 운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혹은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 경기나 <승부>처럼 바둑의 세계를 다루든 마찬가지다.
바둑을 즐기는 관객이 볼 때는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두 바둑 기사의 치열한 수싸움과 전법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처럼 바둑을 모르더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승부>에서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허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영화가 되면 그것은 한 영화 작품으로 평가하면 된다.
<승부>는 어렸을 때부터 바둑 신동으로 불리던 이창호의 재능을 알아본 조훈현이 이창호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수제자로 키우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무협 영화의 공식을 연상시킨다. 제도 학교가 아니라 재능을 가진 제자를 발굴해서 개인 교습, 영어로 말하면 튜터링(tutoring)을 통해 가르치는 모습이 그렇다. 원래 그것이 배움의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부터 둘의 관계는 만만치 않은 국면에 접어든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스승 조훈현은 매서운 공격을 중시하는 전투적 바둑을 구사한다. 싸움꾼이다. 상대방이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파고들어 무섭게 공격하는 기풍을 구사한다. 제자는 다르다. 이창호는 처음에는 충실히 조훈현의 바둑을 따르려고 한다. 하지만 스승의 방식을 따르고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스승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한다.
조훈현의 공격적인 기풍과 다르게 이창호는 나중에 그의 별명이 된 '돌부처'처럼 묵묵히 지키면서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는 방식을 고수한다. 그 결과 영화에도 나오지만 1990년 제29기 최고위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고 이창호 시대를 연다. 이창호는 불과 15세 때 스승의 타이틀을 빼앗았고 몇 년 뒤에는 스승에게서 모든 타이틀을 가져온다.
<승부>가 여기서 끝났다면, 영화는 스승을 앞서 나아가는 '청출어람'의 뻔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그렇게 무너진 스승이 자신을 앞서가는 제자를 바라보면서 그 제자에게서 뭔가를 배우려는 데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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