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특검팀이 재청구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기각됐다. 1차 구속영장 청구 때 법원은 '박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이 불법인지 몰랐을 수 있다'는 취지의 황당한 사유를 들어 기각하더니, 특검팀이 혐의 입증 자료를 더욱 보강해 2차 청구를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결정을 반복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계엄 사태 이후인 지난 2월 동시에 발령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4명이 돌아가면서 윤석열과의 주요 연결 고리를 차단하며 3대 특검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3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을 상대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14일 새벽 기각 결정을 내렸다. 남 부장판사는 "종전(1차) 구속영장 기각 결정 이후 추가된 범죄 혐의와 추가로 수집된 자료를 종합해 봐도 여전히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한 방어 기회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및 수사 진행 경과, 일정한 주거와 가족 관계, 경력 등을 고려하면 향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9일 박 전 장관에 대해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같은 달 15일 "구속의 상당성이나 도주·증거인멸 염려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면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수사 진행, 피의자 출석 경과 등을 고려하면 도주·증거인멸의 염려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앞선다"고 설명했다.

즉, 다른 사람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및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발표 내용이 불법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내란에 공모·가담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 장관은 인권 보호와 법질서 수호를 핵심 업무로 삼는 직책인데다, 다수 국무위원과 달리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기 2시간 전인 오후 8시쯤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따로 호출받았고,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서 계엄에 관한 설명을 먼저 들어 국헌 문란 목적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법성 인식'을 못 했을 수가 없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에서 특정 문건을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꺼내 들여다보고 A4 용지에 메모하는 모습 등이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더욱이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로 돌아와 간부 회의를 소집하고, 이 자리에서 법무부 검찰국에 '계엄으로 설치되는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 금지팀'을 대기시키라는 지시도 했으며, 계엄 이후 정치인 등을 수용하기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내란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1시쯤 신용해 교정본부장으로부터 '구치소 현황 문건'을 휴대전화 메신저로 보고 받은 뒤 삭제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특검팀이 복구한 문건에는 수도권 구치소에 계엄 관련자 36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을 재소환하고 휴대전화도 다시 압수했으며, 법무부에 대한 2차 압수수색도 벌여 '위법성 인식'이 분명히 있었다는 증거들을 추가로 확보했다. 구체적으로 특검팀은 박 전 장관 등의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권한 남용 문건 관련'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복원해 냈다. 법무부 검찰과 소속 안모 검사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입법권 남용, 탄핵소추권 남용, 예산심의권 남용 등을 근거로 국회가 '입법 독재'를 통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담화문과 유사한 내용이다. 박 전 장관이 이미 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석열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예상하고 검사에게 계엄을 정당화하는 문건을 작성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장관은 이 문건을 지난해 12월 4일 텔레그램을 통해 임세진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으로부터 전달받았다. 그리고 이 문건을 소지한 채 이날 저녁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이 함께 만난 자리였다. 특검팀은 국회의 계엄 해제 직후 윤석열의 핵심 법률 참모들이 모인 데다, 박 전 장관이 해당 문건을 회동 직전 마련한 만큼 사후 대책을 모의했을 것으로 봤다. 박 전 장관은 이 문건을 비롯해 안가 회동 직전 김주현 전 민정수석에게서 전화 온 내역 역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앞선 구속영장 기각 당시 법원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의미 있는 자료를 상당수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범죄 사실을 새롭게 추가했다"며 지난 11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박 전 장관은 13일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 때도 자신은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원론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하라는 취지로 지시를 내렸을 뿐 불법적인 내용은 없었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임을 거듭 강조했다. 법원이 이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영장전담 판사들이 필사적일 만큼 '위법성 인식에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을 불허하는 것은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을 엄호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조희대 원장이 '내란의 밤'에 주재한 대법원 법원행정처 긴급 간부회의 자리에서 계엄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것도 '위법성 인식'이 없었던 '통상적인 업무 수행'임을 내세워 향후 조 원장을 겨냥할 수 있는 수사의 칼날을 비껴가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조선일보는 이 간부회의가 열린 지난해 12월 4일 새벽에 대법원 관계자가 "비상계엄에 따라 사법권의 지휘와 감독은 계엄사령관에게 옮겨간다"며 "계엄사령관의 지시와 비상계엄 매뉴얼에 따라 향후 대응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조희대 대법원이 불법 계엄에 순응하는 움직임을 보였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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