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년 전 완공됐을 종묘 앞 재개발, 아직 시작도 못한 이유

[세운 재개발, 오세훈의 집착 1]박원순 재임하던 2018년 개발계획 확정...오 시장 취임 뒤 전면 백지화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 4구역 모습. ⓒ뉴스1


종묘를 마주 보고있는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갈등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가 기존 재개발 계획을 변경하고 142m의 초고층 빌딩을 세우겠다고 나서자, 문체부,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등이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세운4구역에 대한 개발 계획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인 지난 2018년 확정돼 지난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2021년 교체된 오세훈 시장이 재개발 계획을 변경하면서 세운4지구는 다시 갈등 속으로 던져졌다.

 

애초에 정부 반대에 막혔던 세운 재개발 '초고층빌딩'

복합단지 설계까지 확정했지만...오세훈 이후 '급변'


서울 도심 속 마지막 대형 재개발 사업지로 불리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세운상가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군의 양쪽 8개 구역이다.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세운4구역은 종로를 사이에 두고 종묘와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세운지구 재개발은 지난 2004년 이명박 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 이후 가장 먼저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 곳이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은 세운4구역의 재개발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직접 시행사를 맡는 공공재개발 방식을 택했다. 공공재개발 방식은 땅 주인 등이 조합을 결성해 시행사를 선정하는 기존 재개발 방식과 달리 조합 결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공이 시행사를 맡는 방식이다.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재개발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세운4구역의 시행사는 SH(서울도시주택공사)가 맡고 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은 세운지구에 대한 재개발 구상으로 현재 세운상가군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남북을 잇는 녹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가장 먼저 현대백화점이 소유하고 있던 세운상가 앞에 위치한 현대상가를 철거했다. 세운4지구에는 높이 122m의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 4채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세운4지구의 초고층 주상복합 계획을 막은 것은 종묘였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에는 122.3m 높이의 주상복합 건축안이 제안됐지만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문화재청의 반대로 무산됐다. 애초에 세운지구 재개발을 시작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에서도 세운4구역 초고층 빌딩엔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구역도(2020년 기준) ⓒ서울시


이후 문화재청의 심의가 이어지면서 세운4구역의 재개발도 중단됐다. 지난 2017년 장기간 심의 끝에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m로 고도가 확정됐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문화재청의 심의를 수용해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에 대한 설계공모를 진행, 2018년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KCAP의 '서울 세운 그라운즈'를 선정했다. 해당 계획은 최고 18층, 9개 동에 호텔, 오피스텔, 상업시설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로 구상했다. 새로 지어질 건물에는 옛상점들로 이뤄졌던 골목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할 계획이었다. 해당 계획은 2021년 착공, 2023년 완공할 예정으로, 용적률은 66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가까이 질질끌던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이 확정되자 드디어 세운지구의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세운4구역의 철거도 2019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2021년 오세훈 시장이 다시 시정에 복귀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오 시장은 당선된 해 11월 "세운상가 위에 올라가 종로2가부터 동대문까지 내려다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며 기존 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2022년 서울시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세운상가군 자리에 남북을 잇는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오 시장이 15년 전에 구상했던 세운지구 재개발 구상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2023년에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서울시가 내놓은 조감도를 보면 세운4구역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것이 보인다.

다만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나올 때만 해도 세운4구역은 문화재청 심의 결과인 70m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서울시 의회가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국가지정유산 100m 이내)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19조 5항이 삭제하면서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 변경의 배경을 조성했다. 이어 올해 10월 서울시가 세운4구역 건물 높이 기준을 종묘 쪽은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완화하는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고시를 하면서 2023년에 완공해야 했을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했다.

결국 이미 진행 중이던 세운지구 재개발을 틀면서 오 시장이 2년 전에 끝났을 할 세운4구역의 재개발은 더 늦춰진 셈이다. 오히려 기존의 문화재청 심의를 뒤엎는 재개발 계획 변경으로 갈등을 유발하면서 장기간 표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22년 4월 21일 오후 녹지생태도심 재창조전략 현장 기자설명회를 진행하고 서울 중구 청계천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구역 일대에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2022.04.21. ⓒ뉴시스

이미 완료됐어야 할 재개발...계획 변경으로 '원점 회귀'

서울시 "토지주 요구와 건설 불황으로 변경 불가피"

과거 박원순 시장은 세운지구 재개발 계획은 재검토해 2014년 보존 중심의 계획으로 변경했지만, 이는 세운상가군에 한정됐다. 세운4구역을 포함한 주변 구역의 재개발은 큰 변화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3년에 세운4구역의 재개발은 완료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운4구역 철거 과정에서 유물 발굴 절차에 2년이 소요된 것을 감안 해도 올해 즈음에는 완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자신의 계획인 녹지 조성을 위해선 지금보다 세운4구역의 용적률이 더 높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은 세운4구역 초고층 빌딩이 논란이 된 지난 5일 "빌딩 높이를 높이는 과정에서 거두는 경제적 이득을 세운상가를 허무는 데 필요한 종잣돈으로 쓸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세운상가군 자리에 녹지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세운4구역에 초고층빌딩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이 과거 자신의 계획이었던 세운지구의 초고층빌딩과 녹지를 고집하면서 원래대로라면 이미 완공됐을 세운4구역 재개발은 오히려 수년간 지연된 셈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재개발 계획의 변경은 토지주들의 요구와 경제위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세운4구역의 지주들은 문화재청 심의 결과인 최대 고도 71m, 용적률 700% 이하의 재개발로는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계획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 계획이 승인됐지만 사업성이 안 나왔다. 사업비 책정은 2018년에 했는데 2021년, 2022년 건설비는 올라서 사업이 아예 자빠질 지경이었다"면서 "이미 건물은 철거하고 있는데 상황은 안 좋아지자 토지주들이 계획 변경에 대한 민원을 넣어왔다"고 설명했다.

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건설자재값 증가, 건설 불황 등이 겹치면서 건설비가 늘어난 것도 이유라고 서울시는 주장했다. 해당 관계자는 "재개발이 질질끌리면서 SH에서 나간 비용도 많았다"면서 "이전에 인가된 계획대면 SH는 공사만하고 돈은 손실만 날 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사업성 약화와 토지주의 손해는 굳이 문체부, 문화재청과 맞서서 용적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용적률 이양제' 등 제도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오 시장의 세운지구 재개발 계획 변경으로 세운4구역 재개발은 2009년 문화재청과 갈등이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완료되었을 재개발을 더 지연시킨 꼴이기 때문이다.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20년 가까운 개발 지연으로 누적 채무가 7,250억 원에 달하고, 월 20억원의 금융비용을 감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가 조례 변경으로 법적인 절차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시민 모두의 재산인 종묘의 경관에 영향을 주는 재개발을 제대로 된 공론화도 없이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