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지났지만, 2009년 1월 2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 날 철거민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고 올랐던 남일당 건물 위 망루를 향해 새까맣게 몰려들었던 경찰들은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 같았다. 손이 쩍쩍 달라붙는 강추위가 몰아친 그 새벽과 아침에 망루를 향해 내뿜어지던 강력한 수압의 물포들…그리고 치솟은 불길, 쓰러지는 망루 위로 가까스로 탈출한 사람들의 절규와 통곡…믿지 못할 일을 눈앞에 보던 많은 사람들의 불안한 눈길들…. 그날 모두가 잠들었던 새벽부터 막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거나 출근길에 나섰던 이들이 보았던 그 참상의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용산의 유가족들은 2009년 1월 20일로 시계가 멈춰 버렸다고 한다. 그들에게 모든 것이 변해버린 날, 매일 기다리던 남편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며 울분으로 살아낸 세월이었다. 그 5년 동안 철거민들을 죽인 김석기를 비롯한 경찰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기록마저 감추어 불공정하게 진행된 재판의 결론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이 났고, 그로 인해서 경찰관 1명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나라 사법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억울한 판결에도 어쩔 수 없이 4년 넘도록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지금도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리고 경찰특공대를 동원한 강제진압을 지휘한 책임자 김석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한국공항공사 사장 자리에 앉아버렸다. 
 
   
▲ 용산 참사 유족들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355일 동안 남일당 현장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구호를 내걸고 미사를 올리고, 문화제를 하는 나날이 전쟁이었다. 경찰의 방해와 연행과 구속, 그리고 수배를 이겨내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잊기만을 기다렸던 이명박 정권 아래서 질기게 싸워서 형식적이나마 총리의 사과도 받아내고, 서울시가 협상을 주선하게 만들었던 그 투쟁의 시간들…그 속에서 우리는 용산의 진실이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열망했다. 더 나아가서 용산과 같은 국가폭력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기를 세워서 외치고는 했다. 이제 돈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자고,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살려달라고 망루까지 지어서 올라간 것 아니냐고. 

하지만 용산 유가족과 사람들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용산에서 사람을 죽였는데도 용인되는 상황에서 공권력은 다시 용산과 똑 같은 방식으로 쌍용자동차에서 파업을 진압했다. 그 뒤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24명이나 죽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강정에서, 밀양에서 사람의 절규를 외면한 잔인한 국가범죄를 우리는 보고 있다. 용산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탓이다. 용산은 우리 시대의 모든 것이다. 이 나라,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바로미터이다. 공권력이 사람을 부인과 은폐로 덮어버려도 된다고 강변하는 정부가 있고, 그것을 되레 망루 철거민들을 도심테러범이라고 몰아세우는 국회가 있고, 그 공권력의 손을 들어주는 사법부가 있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런 증거가 또 어디에 있을까. 용산의 유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날로 시계가 멈춰버렸다. 

지난 5년은 잊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세월이었다. 구속된 철거민들의 석방을 요구한 이유였고, 영화 <두 개의 문> 상영운동을 벌였던 이유였고, 김석기의 한국공항공사 사장 임명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투쟁을 한 이유였다. 그러면서 국가폭력의 현장에 용산의 유가족들은 달려갔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대한문 농성장으로, 강정해군기지 농성 현장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연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만들어낸 연대의 힘이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음을, 비정상을 정상처럼 알고 있는 세상에서도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해오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용산의 유가족들에게 우리 사회는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 아직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은 진실규명은 한 치의 진전도 없지만, 용산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줄지 않았음을 우리는 또 감사해야 한다. 
 
   
▲ 박래군(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
 
용산의 진실이 규명되고, 그 책임자들이 처벌되는 것은 국가가 제 자리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이 황금을 향한 죽음이 경쟁에서 헤어나 스스로 존엄한 자리로 돌아가 사로 존중하는 사회로 가는 일이다. 잘못된 자본의 폭력 앞에 절망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편이 되어 제 나라 국민을 죽이는 잘못된 국가를 넘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와 인권의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용산참사 5주기 추모위원이 되고, 추모행사에도 함께 하자. 16일에는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국가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상영이 열리고, 18일에는 다시 남일당에서 추모행사를 갖고 행진을 하여 서울역에서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결의를 모은다. 20일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제도 갖는다. 그리고 막을 내리겠지만 용산의 진실이 모두 드러나는 그날까지 용산은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355일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도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했던 많은 이들과 잡은 손이 있음으로. 그러므로 용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용산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고 있는 망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