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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방위 중대제안에 정부 전면거부 배경

"비방중상 하겠다는 것이냐?"<해설> 북한 국방위 중대제안에 정부 전면거부 배경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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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7  14: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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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방위원회가 △설 계기 상호 비방중상 중단, △상호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중지, △한반도 비핵화 의지 표명 등 중대제안을 지난 16일 제시했다. 이에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17일 전면 거부했다.

오는 2월말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연습 중단 제안은 정부가 연례적인 방어훈련이라는 주장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치더라도, 북한의 상호 비방중상 중단 제안을 거부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신년사에서도 밝혔듯이 남북간에 대화하고 관계개선을 하고 싶다는 뜻에서 다시 한번 비방중상을 하지 말자는 연장선으로 제의한 것"이라며 "한.미 군사훈련 기간이 끝난 다음에 시작될 남북대화에 대해서 사전 정지작업으로 비방중상을 하지 말자고 나온 것으로 본다"며 북한 국방위의 제안을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는 "남북간 '비방중상 중지'합의를 위반하면서 그 동안 비방중상을 지속해 온 것은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은 남북간의 신뢰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라며 북한 신년사를 지목했다.

즉,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언급했지만, "우리 민족문제, 북남관계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국제공조를 청탁하는 것은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농락물로 내맡기는 수치스러운 사대매국 행위"라는 발언이 곧 '비방중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상호 비방중상을 중단하자고 했는데, 이런 제안을 거부하면 정부가 앞으로 비방중상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과연 정부가 진정성이 있는지 묻고싶다"고 지적했다.

이번 통일부 대변인 논평은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린 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를 순방 중인 가운데 결정됐다. 이날 회의에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관진 국방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등 유관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을 필두로 강경파가 주도했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이 최종 사인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도 이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 전문가는 "북측의 중대제안도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상호 비방중상 중단을 우선적으로 제안하기에 앞서, 군사적 신뢰조치를 취하는 등 남측을 배려하는 게 부족했다.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선제적으로 한 제안을 정부가 받기 곤란하지 않았겠느냐"고 평가했다.

이는 북한이 비방중상과 한.미 연합군사연습 등을 하나로 묶어 중단을 제안하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이기에는 정부 내 외교안보라인 의사결정자들 면면을 볼 때, 쉽지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북한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을 거부한 배경은 지난해 북한 장성택 처형을 두고 "북한 내부가 불안하다. 북한이 붕괴될 것이다"라는 정부 내부 판단의 연장선이라는 게 중론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달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다.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라고 발언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정부가 어떻게 대북정책을 인식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뒤이어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강조하고, 이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 조짐을 점쳤던 분석들이 쏟아지자, 정부는 이틀만에 입장을 발표,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리고 장성택 처형을 두고 "형식적 재판 후 4일만에 처형하는 것을 볼 때 북한의 인권상황을 스스로 되돌아 본다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주장인지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다"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신년회에서 "남북관계 분위기 마련 좋다. 좋은데 거기다 대고 엉뚱한 소리 하게 되면 그건 지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지적할 건 지적하고 우리가 제안할 건 하고,우리는 있는 그대로 이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 해야겠다"고 말해 정부의 북한 신년사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즉,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이라는 대목보다 비방중상에 해당되는 표현들을 지적함으로써 일종의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부내 인식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성택 처형이 곧 북한 불안정성의 상징이고,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로 과정없는 결과론적 통일론을 강조한 데서 공식화됐다.

여기에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에 대해, 미국 백악관 제이 카니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북한은 일련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더 이상 위반하지 말고 국제 의무를 준수함으로써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미국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도 "우리의 핵심 대북정책은 변함 없다"고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했다.

이러한 반응은 성김 주한미대사가 17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급변사태를 포함한 모든 사태에 대비해 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한 가지 가능성에 집중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급변사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엳보인다.

즉, 한.미가 북한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불안정성을 강조하고 이를 급변사태, 북한 붕괴론과 연계시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론, 북한 붕괴론과 궤를 같이 한다는게 대부분의 인식이다. 그리고 이는 앞서 장성택 처형으로 북한이 불안정하다는 분석, 나아가 북한 국방위원회의 상호 비방중상 중단 제안은 곧 북한이 붕괴할테니 거부해도 된다는 판단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남쪽에서 통일대박론이 나온다. 이건 누가봐도 북한 붕괴론에다가 모자를 씌운 것에 불과하다"며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정권 안정성 획득인데, 그걸 정부가 자꾸 거꾸로 해석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북한의 제의에 '상호 비방중상 중단을 적극 환영한다'라는 정답이 있었다. 이를 통해 관계개선, 화해증진을 이뤄가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며 "그런데 현 정부는 1년밖에 안됐는데 북한 붕괴론을 기반에 깔았다. 앞길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교수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권력투쟁이 불안하다? 일종의 정치적 분석아니냐"며 "결국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통일이 아니라 급변사태, 붕괴, 흡수통일론이다. 정부가 솔직히 진정성을 보이려면 흡수통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말로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구축이 목표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면 북한의 제안이 진정성이 있든 없든 사전에 재단하지 말고 만나서 확인하고 접점을 찾는게 올바른 방안"이라고 이번 거부를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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