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이 말하지 않는 연금약자 ③] 보험료 부담 큰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짜 3.3 노동자
박상혁 기자/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4.07.06. 05:03:33
#인천에 위치한 대형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고 있는 50대 권종희 씨는 경력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 즐겁다.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손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인생의 교훈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몸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장년의 캐디에게 서비스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들이 많아서다. 사업장은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골프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권 씨는 때로 씁쓸함을 느낀다.
권 씨의 고민은 자연스레 노후 생활로 이어진다. 현재 그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은 20대 시절 회사 생활을 포함해도 10년 남짓. 정년까지 납부해도 20년을 채우기 어렵다.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해야 소득대체율의 40%를 보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후 권 씨가 받을 연금으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30여 년간 일해왔음에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턱없이 짧은 이유는 단 하나, 삶이 빠듯해 소득의 9%에 달하는 보험료를 지불하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가입자는 보험료 중 절반만 부담하면 나머지 절반은 사업체가 대신 내주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분류된 캐디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권 씨는 "국민연금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비수기가 되면 소득이 크게 줄어 보험료를 견디기 어려웠다"라며 "우리(캐디)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사업장이 보험료를 분담해 주면, 골프장에 소속감이 생겨 좀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캐디처럼 특고로 분류되지 않는 직종인데 보험료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4대보험을 부담하기 싫은 사업주에 의해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3.3%의 소득세만 내는 일명 '가짜 3.3 노동자'들이다.
50대 여성 이정연(가명) 씨는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두 자녀를 번듯하게 키워냈다. 그는 역량을 쌓아 좋은 대우를 해주는 직장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을 주면 다행인 직장들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경력단절여성'이 됐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자녀들을 사회로 내보낸 이 씨에게 노후 생활은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다. 쉼 없이 일해온 이 씨지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5년 남짓. 앞으로 60세까지 쉬지 않고 일하거나 추후 납입 방식으로 보험료를 몰아서 내야 겨우 최소 가입 기간인 10년을 맞출 수 있다.
일부러 보험료를 피해 온 건 아니다. 도리어 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오래 납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씨에게 4대보험을 가입시켜주는 사업장은 많지 않았다. 이 씨는 4대보험이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인 줄 알면서도, 이를 요구하면 '아줌마'인 자신을 해고할까봐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한 편의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주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해 유급휴가, 연장수당 등을 피하고 4대보험도 내지 않으려 이 씨를 가짜 3.3 노동자로 만들었다. 이 씨는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사장님과 가족 사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실히 근무했다. 그렇게 2년 6개월이 지나자 점주는 이 씨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이 씨는 자신을 비롯한 많은 중년 여성들이 가짜 3.3 노동자로 살아가며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거기에 보험료까지 전부 감당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며 "나 같은 가짜 3.3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4대보험의 강제력을 높이고 감시를 더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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