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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해방신학은 어떻게 생겨났나

 

 

 

남미의 해방신학은 어떻게 생겨났나
 
[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17) 오랜 수탈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
 
유태영 박사
기사입력: 2012/11/20 [04:1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스페인과 영국 앵글로 색슨의 식민통치
그리고 미국의 경제적 침략으로 종속된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남미 해방신학”

400년간의 스페인의 식민주의와 영국 앵글로 색슨의 식민 제국주의 통치에서 남미는 겨우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또 다시 미국이 경제적 통합이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식민지 정책으로 방향을 바꿈으로써 남미는 여전히 서방에 경제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식민통치하에 묶여 있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피침략 피지배 국가들은 수 백년 동안 서구 식민제국주의 열강들과 어떤 관계였을까? 간단히 말하면, 아르헨티나는 밀과 고기였다. 브라질은 커피였고, 칠레는 보석과 구리였으며,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바나나와 자원. 쿠바는 설탕, 베네수엘라는 석유자원이 탈취되고 있었다.

1900년-1960년대에 이르자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경제적 통합의 억압이 본격적으로 불어 닥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이 주장하는 발전은 남미의 모든 나라들에게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하는 역사적 악몽뿐이었다.

이와 같은 악몽과 환멸이 증가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카톨릭교회에서 서구의 자본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분노와 분석이 자연발생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 처음 발생했다.

하지만 남미 해방신학의 근원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 유럽의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던 “위기신학”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아야 마땅하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기독교의 “위기신학”은 그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면상 제약으로 중세기 기독교의 유구한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요점을 요약해서 말을 한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유럽문명의 세계가 전반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데 대하여 유럽 기독교신학의 대응책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유럽의 기독교신학이 유럽의 시대적 혼란에 대응하여 종교와 정치철학적인 면에서 설 자리를 전혀 마련하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유행하는 실존주의 철학과 과학주의적 시대적 요구에 대하여 유럽 기독교신학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유럽의 기독교신학은 칸트만큼도 못하게 속수무책이었으며 무기력하여 오히려 유럽의 시대적 혼란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도피적인 기독교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카톨릭교회는 수 백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 서구의 식민통치 악행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속수무책이었으며 그 악행에 대해 오히려 외면하고 현실도피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의 민중들의 머리속에는 카톨릭교회의 신학은 박물관에 처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때 라틴아메리카의 대다수의 교회들은 민중들의 혁명세력에 가담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무도 잠잠해 늙어 버린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므로 남미 기독교의 신학은 교회로부터 완전히 이탈되어 있는 상태였다. 교회가 신학이 없다는 말은 교회가 권력자의 지배원리에 순응하여 교회 자체의 현상유지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수 세기 동안 서구의 식민통치의 문제는 오직 경제적 착취와 빈부의 격차의 문제뿐이었을까? 경제적 착취문제로만 보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서구의 침략적 세력이 수 세기 동안 남미에서 식민통치를 강행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죄악의 문제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심리적이며 정신적 문제이며, 가치관의 문제이며, 정의에 관한 문제이며,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며 동시에 라틴아메리카 기독교신학의 빈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회에 대한 사명을 완전히 포기한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카톨릭교회는 민중들이 당면하고 있는 억울한 고난과 근본적인 삶의 문제와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역사에 동참하는 과업을 절대적인 사명으로 인식해야만 했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는 이 절대적인 사명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어떠했는가를 살펴본다.

1. 남미 해방신학의 신학적 기원과 그 진행 과정

남미 해방신학의 신학적 기원은 1962년 10월 11일에 로마에서 바티칸 제2차 공의회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강력하게 영향을 제공해 주었다. 로마교황 요한 8세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사회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교회가 사회적으로 참여할 것을 시도했다. 이러한 바티칸 제2차 공의회가 끼친 영향은 남미 해방신학의 기원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또 1968년에 콜롬비아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제2차 총회에서 로마 교황의 가르침에 대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 적용할 것을 결의했다. 이러한 결의는 남미에서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미국의 흑인신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해방신학은 어떤 특정한 방법론을 주장하지 않고 다만 고유한 사회-문화와 정치적인 관점에서 신학의 출발점을 모색하고 신앙과 민중적 삶의 양식을 성서에서 찾아 나간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민중들이 억압적인 환경속에 살고 있는데 대하여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도록 영양분을 성서에서 발견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교회의 실천과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 사회를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1962년 로마 교황의 바티칸 제2차 공의회에서 라틴아메리카 카톨릭교회의 문제를 제기한 기회가 바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발생 기원의 요소로 볼 수밖에 없다. 라틴아메리카 카톨릭교회 해방신학자들이 공헌한 다양성을 살펴본다.

ㄱ. 까밀로 또레스(Camilo Torres)는 콜롬비아에서 대학의 교목으로 강력한 해방신학을 추진한 행동파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혁명적 행위는 기독교적이며 성직자적인 삶의 투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와 기독교인의 믿음에 대한 실천은 혁명적 삶의 실천뿐이라고 주장했다.

ㄴ. 브라질 태생의 루벤 알베스(Ruben Alves)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평하는 저서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기독교 신앙은 이념의 추상적인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효과적인 진리의 행동으로서만 역사적인 신앙 공동체가 인간해방에 공헌하며 효력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신학 사상은 메시아적 인본주의라고 요약 할 수 있다.

ㄷ. 페루 출신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는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거목적인 존재이며 세계적인 신학자로서 “해방신학과 사회변혁”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는데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신학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남미 해방신학의 과제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1) 억압당하는 민족과 민중을 위한 정치적 해방과 (2) 역사적 이해로서의 해방을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책임을 져야함을 뜻한다. (3) 모든 종류의 억압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해방은 죄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 힘은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사에 있음을 통해서 교회의 의무를 역설한다.

ㄹ. 우루과이 출신 휴고 아스만(Hugo Assmann)은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등 여러 곳에서 추방을 당하는 해방신학의 선봉자였으며 코스타리카에 정착하여 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의 장편 저서 <Opresion-Liberacion> 등 여러 책을 출판했다. 그의 신학적 사상을 요약하면 (1) 민족해방의 방법으로써의 계급투쟁 (2) 해방의 중심적 요소로써 실천과 실행에 대한 Praxis 개념과 함께 (3) 해방의 과정에서 중요시되는 창조와 구속의 의미로서 교회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이다.

ㅁ. 남미의 해방신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절대적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우루과이 출신으로 예수회의 회원인 후안 세군도(Juan Segundo)가 있다. 그는 그의 대작 저서 다섯 권을 출판했는데 해방신학의 조직신학적인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군도의 해방신학을 요약하면 다음 4개의 신학적인 순환의 단계가 있다. 그 4 단계는 (1) 민중들이 현실을 체험하는 신앙적 방법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없는 신앙심은 비현실적인 죽은 신앙이다. (2) 라틴아메리카의 반제반미 이데올로기는 유럽의 정치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3)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남미의 현실을 체험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방법론적 해석을 적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경해석 방법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음을 시인한다. (4) 남미의 해방신학의 새로운 해석학은 근본적으로 신앙의 원천인 성경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시대적 성분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길을 가진다.

ㅂ.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 운동에 동참한 스페인 출신의 신학자 혼 소브리노(Jon Sobrino)가 있다. 그는 유럽의 신학자로서 남미의 해방신학과 해석학적으로 중요성을 가진다.

유럽의 신학은 이성과 합리성을 근본적인 관심으로 삼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미의 해방신학의 근본적 관심은 고난으로부터 현실적 자유화에 근본적인 관심을 가진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이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변형이다. 유럽의 신학은 철학으로부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남미의 해방신학은 사회과학으로부터 해결책을 모색한다. 유럽의 신학은 현실문제에 손대지 않은 채 현실문제를 내버려두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럽의 신학과 남미의 해방신학 사이에 놓여져 있는 <이론의 문제>와 대립되는 <실천의 문제>를 서로 접촉하려고 노력한 신학자가 바로 혼 소브리노였다. 그는 유럽의 “정설”(orthodoxy)과 대립하는 남미의 “정행”(orthopraxis)의 이론이 상호 얽혀 있는 것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유럽의 위기신학이 <신의 죽음>이라고 하는 명제가 유신론적 문화권 안에서 대두되고 있는데 반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시대적으로 제국주의의 위기시대를 상징하는 <인간의 죽음>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ㅅ. 남미의 해방신학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독점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남미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이 1961년에 페루의 리마에서 <라틴아메리카 복음협회, CELA> 제2차 회의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69년에 제3차 회의, 1971년에 제4차 회의 등이 열려 개신교 주도의 <남미 개신교 해방신학>운동이 전개됐다.

남미 개신교 해방신학을 벌인 CELA의 중요한 요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남미 개신교교회가 엘리트 중심으로 성장한 것을 시인하고, 이제부터 전적으로 민중속으로 들어가는 실천적 선교를 결심한다.

B. 남미의 사회계급과 경제적인 불균형의 존재를 시인하고 그 뿌리를 분명하게 발견하고 시정에 헌신한다.

C.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이 변두리로 밀려난 사회제도를 개혁하여 이들을 사회의 주류에 합류하도록 선교정책을 펴나간다.

남미 개신교의 해방신학의 흐름이 카톨릭교회의 흐름과 점점 더 공통적인 주제와 목적에 합류하게 됨으로써 이전에 상상도 못한 큰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해방신학은 전인(the whole man) 즉 모든 인간 현실적 구원을 주장하는 신학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인적 구원이라 부른다. 전인적 구원이란 세상 역사 안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이며 그 투쟁에 대한 구원의 성취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인적 구원은 단순히 내세적인 요소나 어떤 영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강조하는 것이며 영이든 육체든 어느 한 부분이 아니고 전인적인 구원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생활과 경제적인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

해방신학이 사회구원을 추구함에 있어서 구원이 필요한 대상은 압제받는 계층의 사람들이며 그러한 압제의 요인이 무엇인가를 추적한다. 그러한 압제의 요인이 부유한 독재국가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즈(Gutierrez)는 말하기를 부유한 국가들이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착취와 차별과 불화를 조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적 구원의 대상이라고 했다. 사회구원의 영적 의미는 “이웃의 모든 사람들, 압제받는 사람, 착취당하는 사회 계층, 멸시받는 종족, 지배받는 국가”를 위한 구원의 관심을 집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해볼 때 사회 구원의 사명은 죄로부터의 구원인데 죄 중에 제일 큰 죄의 출처는 근본적으로 “인간 소외, 부정부패, 착취와 강탈”이다. 해방신학자들이 보는 개인 구원이란 인간이 이웃과 세계와 상호관계를 떠나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볼 때 개인의 전체성을 성취하는 것이 참된 구원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남미 해방신학이 주장하는 사회구원의 교훈은 1968년에 라틴아메리카 제2차 주교회의가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개최되었을 때 발표한 성명에서 분명히 밝혀졌다. “교회는 가난한 자들에 부여하는 선택과 그들의 전체적인 해방을 위함이다.”

해방신학의 새로운 사회구원론은 인간을 높이 올려서 인종차별, 식민주의, 자본주의 등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에 있어서 해방신학은 구원을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인 요구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종류의 속박을 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의 참된 깊은 뜻은 마음으로부터의 개인적인 개종보다 더 넓은 사회적인 구조들과 대중을 향한 외적인 봉사 중요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교회를 스스로 구원의 독점적 장소로 여기는 보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교회는 민중들에 대한 새롭고 광범위한 봉사의 방향으로 영육의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2.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구원론 개념에 대하여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전통적인 성경해석 방법의 입장에서 벗어나 사회적 요인들과 상황에 대처하는 철학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모든 약탈, 모든 비참함과 비극, 모든 불의와 죄악, 모든 소외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정치적인 해방과 사회적 구원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구원관은 개인적 죄의 용서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매여져 있다. 하지만 참된 구원은 역사를 통한 불의와 죄악에 대항하여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속박에서의 해방과 구원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해방신학은 사회적 구원을 강조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해방신학은 죄악의 문제를 개인적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보다 넓고 근원적으로 집단적 죄악과 사회적인 죄악으로 인식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사회악의 근원에 대하여 그 요인을 부유한 국가들의 압제를 가하는 계층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불의한 정치적 죄악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의 영성은 별것이 아니라 이웃, 압제 받는 민중, 착취당하는 사회 계층, 약소 민족과 종족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을 위하여 사회적 구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미의 해방신학은 정치적인 해방으로서의 구원과 사회악으로부터의 구원을 교회의 절대적 사명으로 재인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미 해방신학자들은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교회의 구원론은 결론으로 역사 안에서의 구원이다. 남미 해방신학의 거성인 페루 출신 구티에레즈는 해방신학을 정의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하게 타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과 인간들 사이의 고통 그리고 모든 인류의 현실을 포함한 것에 대하여 역사적 변혁과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남미 해방신학의 이러한 실천적 주장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의 사명을 세속역사(secular history)와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보수주의에 대한 거부와도 관계가 있다. 남미 해방신학은 역사 속에 인간을 해방시키는 구원의 과정을 전인류에 대한 사명으로 보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기독교의 신학이 이상적인 인간 세계에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외치는 것을 일명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이라고 한다. 이 정치신학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남미 해방신학>으로, 미국에서는 <흑인신학>, 한국에서는 <민중신학-통일신학>으로 등장하여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라와 민족들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주의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신학이 정치문제에 개입한다고 수군수군거리고 있다. 서구 기독교 문명국들이 벌써 폐기처분한지 오래인 낡은 보수주의신학의 형태를 한국교회는 여전히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역사의 기본적인 공명을 말하자면 기독교는 미국 자본주의가 제3세계를 침략하는 죄악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비판해야 마땅하다. 코리아반도의 분단 70년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분단의 주역자는 바로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분단의 책임과 침략의 죄악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보수주의 신앙이라고 하는 낡은 신학에 의하여 붙잡혀 있기 때문에 민족통일의 과업을 거절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소영”이라고 하는 기독교 장로의 보수주의 신앙형태를 과시한 5년 집권이 남겨 놓은 것은 꼴불견 구태의연한 부정부패뿐이다.

앞으로 1개월 안으로 다가온 2012년 대선에서 민족통일을 성취할 민주정권을 창출해야 한다.(2012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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