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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왜 문재인과 ‘담판’ 하지 않았을까

 

[분석과 전망] 안철수 후보의 전격사퇴 배경 및 향후 거취 등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24 03:12:11 | 최종:2012-11-24 04:10: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3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가히 ‘전격적’이라 할만하다. 22일 저녁 늦게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지지도+가상대결’을 제안할 때만 해도 안 캠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같은 기조는 23일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은 당초 예상됐던 실무 협상팀보다 수위를 높여 ‘특사 담판’을 시도했다. 문 후보 측의 이인영, 안 후보 측의 박선숙 특사는 이날 낮 12부터 서울시내 모처에서 무려 4시간동안 비공개 대화를 가졌다. 두 특사의 개인적 친분 등을 감안해 어떤 형태로든 ‘최후의 담판’이 점쳐졌다.

비단 이뿐만 아니다. 22일 오후부터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안 후보가 23일 오후 3시반경 돌연 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범죄경력조회서’를 발급받기 위해 종로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범죄경력조회서는 대선후보로 등록할 때 중앙선관위에 제출해야 하는 자료로 본인이 직접 경찰서에 가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다. 이를 두고 안 캠프 관계자는 “단일 후보가 될 경우를 대비해 발급받은 것으로, 다른 뜻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안 후보가 독자출마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안철수 후보가 23일 저녁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23일 오후 7시 50분, 양측의 특사는 단일화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30분 뒤인 저녁 8시 20분, 안 후보는 전격적으로 후보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갖기 10분 전에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후보 사퇴의사를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안 후보의 ‘사퇴선언문’은 A4용지 2/3분량으로 그리 길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특사 협상이 결렬된 직후 불과 30분만에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소한 사전에 초안을 잡아뒀던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22일 오후 이후 안 후보가 잠시 연락을 끊었던 때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안 후보는 왜 돌연 후보직에서 사퇴했을까? 그의 사퇴 선언 이후 나온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그 이유(배경)는 대략 네 가지로 꼽힌다. 단일화 약속, 지지율 부진, 진보진영의 비판, 후일 기약 등이 그것이다. 우선 안 후보는 “반드시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에 큰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름다운 단일화’를 표방하고 시작한 단일화 협상은 번번이 벽에 부닥쳤고 양측간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사퇴선언문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데서 그런 고민이 읽힌다.

단일화 룰을 둘러싼 양 캠프의 극한 대립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도 한 몫을 했다. 지난 14일 협상중단을 선언한 이후 안 후보의 지지율은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처럼 정당 지지기반이 없는 안 후보로서는 국민들의 지지율이 무엇보다 큰 힘이 돼주었다.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 ‘안철수 효과’ 역시 전적으로 지지율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지지율이 최근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예로 21일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후보는 다자구도 2위 다툼, 야권단일후보 지지도,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 등에서 모두 안 후보를 이겨 ‘3관왕’을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진보진영 인사들의 안철수 비난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경우 두 후보의 ‘아름다운 단일화’를 기대하던 입장에서 특정후보 편들기에 말을 아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2일 저녁 안 캠프에서 ‘지지도+가상대결’을 ‘마지막 제안’이라며 내놓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몇몇 인사들은 “너무하다”는 반응을 내놓으면서 안 캠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진보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3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잘라 말하죠. 안캠이 잘못하고 있습니다”며 안 후보 측을 질타하고 나섰다. 또 있다. 23일 오후 필자와 만난 한 정치권 인사는 “재야가 대부분 ‘안철수 반대’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용퇴를 선택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의 승패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권에 남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출마 선언 이후에 “강을 건넜고 건넌 다리 불살랐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 안철수’로서는 후일을 기약해야 할 입장이었던 셈이다. 그는 오늘 사퇴 기자회견에서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시대와 역사의 소명 결코 잊지 않겠다”며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 가겠다”고 밝혔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볼 수도 있겠다.
 

안철수 후보 사퇴선언 후 판화가 이철수 씨는 안 후보의 사퇴를 높이 평가한 작품을 선보였다.

 

결국 안 후보의 이날 사퇴는 복합적인 배경에서 나온 결정이지만 그의 사퇴를 높이 평가(혹은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물론 새누리당은 23일 논평에서 “안철수식 새로운 정치의 실험이 결국 프로정치집단인 민주당의 노회한 벽에 막혀 무산된 것”이라며 평가절하 했다) 우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한 것이 이어 두 번이나 양보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이로써 그는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서의 위상은 더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그가 이번 대선에서는 그의 선언대로 ‘백의종군’을 하겠지만 장차 정치권에서 정치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다만,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안철수는 왜 문재인과 직접 ‘담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대목이다. 23일 오후 ‘특사 담판’이 결렬되면서 여론조사는 사실상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문-안 두 후보 간의 ‘최후 담판’을 예상했었다. 만약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담판’을 요청했다면 성사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 후보는 ‘담판’ 대신 ‘독단’으로 후보 사퇴선언을 했다. 왜일까? 추정컨대 두 가지로 판단된다. 하나는 문 후보와 담판을 하면 자신이 양보를 해야 할 상황으로 판단했거나 아니면 담판보다는 독자적 사퇴선언이 더 자신에게 유리할 걸로 봤던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단은 안 후보 자신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하나 더 보태자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문 후보 측에 대한 아쉬움이 커 담판 자체를 회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길지 않은 ‘사퇴선언문’이긴 하지만 안 후보는 여기서 대부분을 자신과 관련한 얘기로 채웠다. 문 후보와 관련해서는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 저를 꾸짖어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한 대목뿐이다. 보기 나름으로는 문 후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묻어난다고 하겠다. 결국 오늘 안 후보는 자신이 사퇴함에 따라 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만들어줬음에도 ‘흔쾌한 지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오늘 안 후보의 사퇴는 냉정하게 말해 ‘아름다운 단일화’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결과적 단일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지난해 박원순 후보와의 담판을 통한 단일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오늘 안 후보가 문 후보와의 담판을 거쳐 그 결과로 ‘양보’를 발표했더라면 그간 단일화 정국에서 불거진 잡음들도 해소하고 또 최근 양측의 냉랭한 분위기도 반전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아울러 안 후보 자신은 ‘통근 양보’의 주역으로서 향후 입지확보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 ‘감동적인 단일화’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점은 분명 아쉬움이자 동시에 향후 문 후보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하겠다.
 

지난해 9월 6일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박원순 후보와 활짝 웃고 있는 안철수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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