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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에 대한 평가, 야박한 이유 무엇인가

 
 
김대중 서거 6주기에 부치는 글
 
김갑수 | 2015-08-18 09:00: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8월 18일 오늘은 김대중 서거 6주기가 되는 날이다. 하지만 여전히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김대중만 한 저항가가 있는가? 김대중은 생전에 사형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대중은 차량 테러와 납치 그리고 가택연금과 망명 등 보통 정치인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감내하기 힘든 고난을 두루 겪었다. 이 모두가 자신의 영달과는 무관한 이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

 

 

김대중은 매카시즘과 지역패권주의라는 시대의 괴물과 맞서 싸웠다. 김대중은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던 IMF 환란을 극복했다. 아울러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한 데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지도자로서 민족 화해를 성사시켰다. 이렇듯 김대중의 수난은 세계의 어떤 저항가보다 혹독했으며, 그의 성취는 어떤 국가 지도자보다 풍성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평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적 인물을 사심을 가지고 평가하는 나라의 역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1948년 이래 대한민국은 여러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승만에서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그들 나름대로의 공과가 있었다. 하지만 ‘저항과 성취’라는 양면에서 김대중만 한 업적을 이룬 지도자는 없다. 김대중은 저항하면서도 과격해지지 않았으며 성취를 이루면서도 교만해지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침략과 분단으로 인한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의 시련을 겪었다. 이러는 사이 한국인들에게 ‘자기 것의 우월함’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파의 입장에서 볼 때 백범 김구가 40년 식민지시대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인물이라면, 김대중은 70년 분단시대를 남과 북 통틀어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인물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손을 마주잡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김대중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00년 6월 15일 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이것은 그의 부친 김일성 주석이 살아생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이었다. 김대중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평양으로 가서 북의 지도자를 만났겠는가?

 


김대중은 이미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4대국한반도평화보장론’이나 ‘3단계평화통일방안’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통일정책들을 제시했다. 1972년 김대중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김대중의 주장들은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6자회담 등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런 선견지명 때문인지 그는 용공주의자라는 음해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전라도 차별의식을 가진 자들은 김대중을 부단히 깎아 내렸다. 민주화를 두려워하거나 통일을 원하지 않는 수구세력은 그의 주장을 부풀리거나 날조하여 그에게 ‘좌빨’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지금도 여전히 조갑제처럼 한심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많다. 수구 보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 진보들조차 김대중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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