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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친일 청산’의 꿈...반민특위 위원장 아들의 ‘광복 70주년’

[인터뷰]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김정륙 씨

양지웅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8-17 21:05:20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TV로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TV로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다.ⓒ양지웅 기자
 
 

광복70주년인 15일 아침 독립운동가 김상덕(1891~납북) 선생의 아들인 김정륙씨는 집 앞에 태극기를 걸었다.

올해 나이 80인 김정륙 씨는 고령으로 인해 수원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식 참석은 포기했다.

TV에서는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흘러나왔고, 김정륙 씨는 말없이 화면만 바라봤다.

김정륙 씨의 아버지 김상덕 선생은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했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해방 후 귀국해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반민특위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해 조직된 특별기구였다. 김상덕 선생은 이광수와 최남선 등 유명인사와 노덕술 등 친일파 경찰까지 조사했지만 경찰의 습격을 받으면서 결국 해체됐다. 이후 김상덕 선생은 한국전쟁때 납북되었고, 남아있던 김정륙 씨는 납북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좌제에 묶여 고통 받았다.

김정륙 씨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지만 연좌제로 인해 취업을 하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연좌제의 꼬리표는 1990년 정부가 김상덕 선생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한 이후에 뗄 수 있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민은행 주차장 입구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의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민은행 주차장 입구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의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일용직 전전한 고단한 삶

김정륙 씨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독립운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2대에서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어떻게든 자식들은 교육시켰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의 자녀들은 직장생활을 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김정륙 씨 가족사를 보면 독립운동가 가족의 고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정륙 씨의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어머니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세 살이던 막내도 배를 곪다가 세상을 떠났다. 김정륙 씨의 부인도 십여 년 동안 신장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김정륙 씨의 소원은 조용한 교외에 아버지와 어머니, 부인, 여동생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언젠가 그도 그자리에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미 제 나이 80이지만 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느님이 허락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김정륙 씨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70년 전 독립운동가 아버지 손을 잡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열 살 소년은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김정륙 씨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모임을 갖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홍보대사 임명식에 참석해 영화 '암살'에 출연한 배우 조진웅을 만나기도 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아버지 김상덕 선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아버지 김상덕 선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아버지 김상덕 선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아버지 김상덕 선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양지웅 기자

“젊은 세대 위해 독립운동 역사 제대로 기록해야”

김정륙 씨는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아버지를 요원이라고 쓴 문장 하나를 고치기 위해 1년 가까이 국가보훈처를 드나들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그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이에 그는 아버지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7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회고록을 쓰고 있다.

"반민특위가 해산되면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친일로 흐트러진 민족정기가 정리되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가버리니 독립운동가가 테러범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요. 게다가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이 자라나는 우리 후대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어 걱정됩니다. 이들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심판해야 합니다"

광복 70년 8월 15일 김정륙 씨가 남긴 말이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태극기를 계양하고 있다.
김정륙 씨가 1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태극기를 계양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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