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의 선정성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조치를 계속하고 있지만 막말과 편파 방송은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편이 심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벌점이 아무리 쌓여도 재승인에 탈락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종편 막말·편파방송에도…재승인 탈락 불가능

지난해 5월 방통위는 종편3사 TV조선, JTBC, 채널A에 대해 3년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대신 6개월에 한번씩 △방송의 공적 책임 및 공정성 확보 방안 △콘텐츠 투자 △재방송 비율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조화로운 편성 등 사업계획 이행실적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종편의 ‘막장’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방통위가 발표한 종편의 2014년 이행실적에 따르면 종편의 오보·막말·편파방송은 2배 이상 증가했다. TV조선의 경우 2013년 대비 2014년의 오보와 막말, 편파방송이 3배나 급증했다. 채널A의 관련 심의조치 건수역시 2013년 20건에서 2014년 4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MBN은 올 하반기부터 이행실적을 점검 받는다.

사업계획 이행실적도 ‘낙제점’이다. 지난 7월 JTBC와 TV조선, 채널A 등은 콘텐츠 투자와 재방비율 등의 재승인 조건을 지키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았다. 사업계획은 자체적으로 설정한 목표액에 근거하므로 애초에 낮은 목표액을 잡아도 문제를 삼을 수 없다.

   
▲ 종편 채널 방송사별 제재 의결 현황(2011~2014년)

막말 수위가 높은 일부 종편에 대한 심의조치가 급증하더라도 방송사업자 재승인 탈락은 피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재승인 탈락도 가능하다. 그러나 탈락한 방송 사업자에 대한 사후 조치가 규정에 존재하지 않아 사실상 탈락은 염두에 두지 않은 제도인 셈이다. 재허가 거부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도 탈락보다는 재허가를 내리는 대신 사업 실적 이행 경과를 보는 조건부 재승인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한 허점도 존재한다.

현행 재허가 의결 방식에 따르면 심사 결과 총 1000점 만점에 650점 이상을 받은 방송 사업자에 대해서는 재허가를 의결한다. 650점 미만인 방송사업자는 조건부 재허가 조치를 내리거나 재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관행적으로 모든 사업자를 조건부 재허가로 의결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재허가 심사로 방송사 사업 취소가 이뤄진 사례가 없고 사업취소까지 이어질 경우 방통위가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재허가 심사 결과 방송사업자가 탈락됐을 때를 대비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사실상 없다. 재허가 심사가 방송사업자 취소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사기준도 위원 구성도 종편 편향

재허가 심사항목 역시 종편에게 유리한 평가방식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가 심사기준을 일부 수정했음에도 여전히 ‘기울어진 평가’가 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재승인 심사 결과 TV조선과 JTBC, 채널A, 연합뉴스TV 등은 각각 684.73, 727.01, 684.66, 719.76점을 받았다. 모두 재허가 승인 가능 점수를 넘었다.

실제로 세부 심사항목 중에는 계량적 평가대신 비계량 평가항목이 많다. 비계량 항목의 경우 세부 심사항목 별 최고점수와 최저점수를 준 심사위원의 심사 점수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사항목 별로 수, 우, 미, 양, 가 등으로 등급을 부여한 후 각 등급 별로 평점을 환산하는 방식이다. 5단계 별 등급 환산에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A. 방송평가B.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C.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D. 경영·재정·기술적 능력E.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의 이행 및 방송법령 등 준수 여부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전체 배점의 10% 이하에서 반영). 출처=방송통신위원회

올해 5월 방통위는 내년 이후 실시될 지상파방송 재허가와 종편·보도전문방송채널사용사업 재승인 심사기준이 포함된 사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전공표된 방송사업자 재허가·승인 심사기준에서도 기존 심사기준처럼 비계량 항목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전히 주관적 판단의 개입이 가능한 구성인 셈이다.

방통위가 발표한 내년 이후 ‘종합편성방송채널사용사업 재승인 심사기준’은 심사사항은 크게 △방송평가 △방송의 공정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경영·재정·기술적 능력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의 이행 및 방송법령 등 준수 여부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 등 총 6개다. 각각의 항목 아래에는 중분류 항목이 포함돼있다. 전체 14개 소항목 중 비계량 평가는 10개에 달한다.

   
▲ 재승인 심사 점수 총 1000점 중 방송평가 400점 제외한 나머지 600점 중 비계량 항목의 비중. 관계 법령 위반 정도나 시정명령 건수 및 이행여부 등에 의해 추가 감점 가능. 출처=방송통신위원회

기준뿐 아니라 재승인 심사위원 구성도 자의적이다. 방송사업 재승인 심사 규정 중 사실상 심사위원의 비계량적 평가가 많아 특히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재승인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여야의 비율이 크게 기울어져있다. 지난해 여당 추천 12명, 야당 추천 3명이 심사위원을 구성했다. 이렇게 심각하게 기울어진 구성을 갖게 된 데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재허가 승인에서 종편이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심지어 지난해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 선정 과정 중 결격 인사가 포함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TV조선과 채널A에서 각각 공정보도특별위원회 위원이나 외부 전문가 교육을 했던 이들이 포함된 것이다. 재승인 심사위원 결격사유에는 ‘신청법인(종편) 또는 지분 5% 이상 구성 주주에서 자문을 한 자’가 포함돼 있다.

또한 방송평가 중 ‘방송심의 제규정 준수’ 항목도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종편이 막말과 편향성 짙은 방송으로 논란이 됐음에도 방송심의 제규정 준수 항목에서 제재 조치에 따라 최고 5점밖에 감점이 되지 않는다.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가 4점, 방송편성책임자·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4점 등이다. 이외에 경고 2점, 주의 1점,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는 5점을 받는다.

방송평가는 총 700점 만점이며 400점으로 환산돼 재승인 심사에서 1000점 만점 중 40%가 반영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재 조치를 받은 감점 결과가 결국 환산 점수로는 재승인 탈락에 이르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이유다.

같은 항목 이중심사 ‘중복규제’ 논란도

재승인 심사 제도의 문제는 종편뿐만아니라 같은 심사 기준을 적용받는 지상파 방송사 재승인 심사에서도 불거질 우려가 있다. 심사 기준이 엄밀하게 짜여지지 못해 항목 간 중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승인 심사 항목 중 하나인 방송평가와 재승인 심사 항목은 일부 중복된다. 재허가 심사에서 방송평가 점수의 반영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방송평가에서 이미 이뤄진 평가 중 상당부분이 재허가 심사에서 다시 점수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통위의 ‘2014년 방송평가 세부기준 전문’에 의하면 △내용영역 △편성영역 △운영영역 등의 큰 분류 하에서 소분류 항목으로 총 41개를 평가한다.

방송평가 세부 기준 중의 편성영역 분야 평가기준과 재허가 승인 심사기준 중 편성 제작의 적절성 평가 항목도 중복우려가 있다. 방송평가 세부 기준 중 편성 영역의 △주시청시간대 균형적 편성 증가 △지역방송사 자체제작 비율 평가 △지역성 구현 프로그램 편성현황 종합 평가 △제작 프로그램 편성 평가 △어린이 및 장애인 시청지원 프로그램 편성 평가 등의 내용은 방송사 재허가 승인 심사기준 중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분야와 겹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미 방송평가로 점수를 매긴 후 같은 항목으로 다시 재승인 심사에서 점수를 매기는 셈”이라며 “공정성과 편성 등 방송 내용 평가는 방송평가에서만, 방송사 전반의 운영 상태 점검 등 더 넓게 평가해야할 부분은 재승인 심사에서만 반영해야 한다. 두 평가를 분리하거나 내용 중복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센티브’ 도입과 타당성 있는 평가 개선 필요

재승인 심사제도가 방송사의 개선을 이끌기 위해서는 심사제도의 평가결과가 방송사업 취소라는 ‘패널티’에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평가 결과 좋은 점수를 받은 방송사에게는 재승인 기간을 최대 7년까지 보장해주고, 나쁜 평가를 받은 방송사는 최소 2년만 보장하거나 아예 조건부 재승인을 주는 것이다.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방송사의 경우 조건을 제대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꼼꼼한 확인이 뒷따라야 한다.

또한 보고서 작성이라는 요식행위에 매몰되지 않도록 향후 계획과 같은 형식보다는 방송 본연의 목적과 내용에 집중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계획을 내놓는 방송사보다 실제로 노력의 흔적이 많은 방송사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환 교수는 “종편의 경우 지상파보다 사업 계획서 작성에서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업 계획에 더 높은 평가가 이뤄지면 종편이 훨씬 유리하다”며 “계획보다 실제 실적이 높은 방송사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평가가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타당성을 잃은 평가에서조차 각종 특혜로 평가기준을 간신히 유지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부소장은 “평가제도의 개선과 적절한 제재조치의 부과가 이뤄져야 하며 우선적으로 (종편에 대한)과도한 특혜가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