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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행사의 의미

김정은이 선보인 애민정치와 G2외교<초점> 북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행사의 의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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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1  23: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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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및 군중시위가 진행됐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및 군중시위, 청년들의 횃불시위가 성대하게 진행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열병식 및 군중시위에서 육성연설을 통해 90여회나 ‘인민’을 언급하는 등 애민정치를 강조했으며,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과 나란히 주석단에 올라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외부의 우려와 달리 당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인공위성 발사나 핵실험 등을 하지 않았고, 김 1비서 연설에서도 ‘핵무력’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다고 미국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김정은 연설 핵심 키워드는 ‘인민’

   
▲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당창건 70주년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캡쳐사진 - 조선중앙TV]

통일부는 김 1비서의 연설에 대해 “노동당의 인민제일주의에 방점을 두고 ‘인민사랑’ 강조에 대부분을 할애”했다며 “연설 서두부터 ‘인민에 대한 깊은 감사’로 시작해서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 다짐’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고 요약했다.

실제로 김 1비서는 “사랑하는 전체 인민들에게 당창건 일흔돐을 맞으며 조선로동당을 대표하여 깊이 허리숙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라고 인사했고, “조선로동당은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룬 불패의 당”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이며 우리 당의 존재방식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이라면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라고 정식화했다.

김 1비서는 조선노동당 70년사 총화를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며 “우리 당은 앞으로도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의 3대전략을 제일가는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매진할것이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할것”이라고 인민중시를 당의 3대전략의 하나로 천명했다.

앞서, 김 1비서는 당창건 70주년에 즈음해 지난 4일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동지 당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를 발표,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전당적으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 주체의 혁명적당, 어머니당의 본태를 고수하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보장하여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이번 육성연설에서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김정은은 축하연설에서 ‘인민사랑’을 반복하여 언급함으로써 애민지도자 이미지 구축 계기로 적극 활용”했다고 평가하고 “당창건 행사 노력동원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 우려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총서기 친서 전달, 북중 ‘당대당 우의’ 복원

   
▲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9일 평양 백화원에서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을 접견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김정은 제1비서의 연설이 ‘인민’으로 일관했다면, 이번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는 중국공산단 대표단을 이끌고 온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행보를 통한 북중관계 개선이 하이라이트였다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취임을 앞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실시 등으로 어그러진 북중관계는 최근까지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상태로 지속됐고, 중국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 방문은 김정은 시대 중국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다.

중국공산당 서기처 서기를 겸하고 있는 류윈산은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과 장예쑤이(張業遂) 외교부 당 서기(상무부부장) 등을 대동하고 9일 밤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1비서를 접견하고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비서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당 대 당’ 우의를 복원한 셈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친서를 통해 “양측 지난 세대 지도자들이 만들고 길러온 중조(북) 전통우의는 쌍방 공동의 귀중한 재부로서, 우리는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면서 “중국 당과 정부는 중조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전략적 높이와 장기적 각도에서 중조관계 발전을 대하며, 양국관계를 지키고 다지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총서기가 친서에서 김정은 1비서의 중국 방문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류윈산 상무위원도 “우리는 조선과 한 길에서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 정신에 따라 양측 고위층 교류를 강화하고 각 계층 및 영역 교류를 증진하며, 양자 경제무역 실무협력을 촉진하여 중조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길 바란다”고 말해 북중 우의관계를 상징하는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 16자 정신을 재확인했다.

김정은 1비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가 남긴 최대의 외교 유산은 중조우의”라며 “조선은 중국과 함께 긴밀한 고위층 교류를 유지하고 각 영역의 교류와 실무협력을 강화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북측에서는 김기남, 김양건 당 비서 등이 배석했다.

류윈산 상무위원은 카운터파트 격인 최룡해 당 비서와 회담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면담했으며, 10일 오후 열병식 및 군중시위 때 김정은 1비서 바로 옆자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등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미국과 어떤 전쟁도 가능”

   
▲ 당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첨단무기들이 선보였지만 2012년 4월 열병식보다 규모가 축소됐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이번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인공위성 발사와 같은 특별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고, 열병식에서도 위협적 무기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병력은 2012년 김일성 생일 100돌 열병식보다 대규모이면서 장비 규모면에서는 적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김 1비서는 류윈산 상무위원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조선은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에 노력하고 있어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환경이 필요하다”며 “조선은 계속 남북관계 개선과 반도 정세의 안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관련국들의 공동노력을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1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도 ‘핵무력’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삼갔다. ‘혁명적 무장력’이나 ‘경제 국방 병진노선’ 등은 거론했지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것.

다만, 개량형 KN-08에 대해 대내용 방송인 중방에서는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한 위력한 전략로케트들”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 1비서는 연설 중 군대중시 분야에서 “우리 당은 오늘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으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는것을 당당히 선언할수 있다”고 미국과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또한 “세계제패야망에 환장한 미제는 참혹한 전쟁을 강요”했고,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로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비난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대체로 대외관계가 조용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며 “북중관계 개선을 토대로 중국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려는 구상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중국과 전통적인 ‘당 대 당 우의’를 회복해 관계개선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의 전략적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G2(Group of 2, 미국과 중국) 시대에 부응하는 ‘김정은식 G2 외교’의 시작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표단도 기자단도 없었다

   
▲ 재미동포 신은미씨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당창건 70주년 행사를 취재해 현지에서 사진을 송고했다. [사진출처 - 신은미 페이스북]

이에 비해 김 1비서는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 당은 일심단결과 선군의 위력으로 외세의 온갖 방해책동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적극적이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재천명했다.

지난 8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한 ‘8.25합의’가 마련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한숨을 돌린 측면도 있지만, 남측 보수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아진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창건 기념행사로 ‘올 스톱’되다시피 한 남북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교류도 서서히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로 민간에서는 12일부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회의가 금강산에서 열리고 13일부터 개성 만월대 발굴 유물 남북 공동전시가 시작된다. 남북 불교도들은 15일 금강산 신계사 복원 8주년 합동법회를 신계에서 개최하고, 10월말 남북노동자통일축구, 11월 7대종단 수장 방북 등으로 이어진다.

남북 당국간 회담은 아직 가시화된 것이 없지만 8.25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22~26일 금강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돌발변수가 없는 한 남북 당국간 접촉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원선 2단계 DMZ(비무장지대) 구간 복구공사를 위한 남북 군당국 간 협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의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20여개국 대표단과 10여개국 20여개 언론사가 초청된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정부의 대표단이나 기자는 단 한명도 방북하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쓴 재미동포 신은미 씨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행사 취재에 나서 현장사진들을 현지에서 송고해 남북 언론교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김정은 식 애민정치와 G2외교가 본격화될 경우 자칫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을 통해서만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수세적 위치에 처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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