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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마음 없앨 수 없다”

최규화 북DB 칼럼니스트 somecrud@interpark.com  2016년 03월 03일 목요일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이정희의 말, 말, 말

-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

- "(민중연합당을)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프리즘②]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

- 이정희는 누구? : 
혹시 그 이정희? 맞다. 그 이정희다. 2012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집권여당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라고 말하던 사람.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대표. 정당 해산 이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아까운 진보 정치인’과 ‘시대착오적 운동권 정치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좀 천천히 삽니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어떤 책을 냈나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진보를 복기하다>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과제로 추진됐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것, 또는 주목받게 되어 비난을 불러온 것”들 가운데, "진보의 대안을 담고 심어진 새싹"들을 골라 담았다. 참신하거나 근본적이거나 절박한 것들부터. 그렇다고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직시해야 할 잘못과 한계가 깊은 반성과 함께 담겨 있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한 줄 서평을 남겼다. “딱 이정희 같다."

- 지금 왜 이정희를 만났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던 2014년 겨울부터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고 봄을 바라보기까지, 1년 2개월 동안 정치판과 언론에서 이정희는 사라졌다. 그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가 2월 20일 보도된 ‘주간경향’ 인터뷰다. 그리고 이번이 그녀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두 번째 인터뷰. 정치인 이정희를 ‘저자 이정희’로 만나, 그녀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뼈아픈 패배를 곱씹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남긴, 이정희식의 사죄를 따라 읽기 위해서였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진보정책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녀는 정치평론가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독자들 앞에서 서서 반성문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할 때도 대답을 하기 전에 한참씩 말을 멈추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 그 점을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사죄의 대상만큼이나 분명한 질타의 대상도 있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2월 20일, 진보당 해산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 머리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라는 대답을 읽었는데, 살아보려고 애쓰는 와중에 이 책을 쓰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혼자 이것들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소멸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 정책들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있는데, 적어도 그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내가 가지게 된 것들만큼은 그분들께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Q. 그 주인공들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통상절차법에 대해 이 책에 썼는데요, 그 법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나서 만든 거였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영감을 준 촛불소녀와 촛불시민 같은 주인공들이 있죠.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은 온전히 농민들이 만들어내신 거라 그분들이 주인공이고요. 기업살인처벌법은 산재로 고통 받은, 지금도 위험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만든 법인 거죠. 그분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들께 "당신들의 목소리가 이런 법안을 만드는 데까지 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때쯤 되면 지역구 주민들께 의정보고서를 돌리기도 하고 정책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그런 일을 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해산 결정에 따라서 강제된 스스로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작년 10월 중순에, 갑자기 잊혀가는 정책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오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웃음) 책에는 맺음말로 들어가 있지만 일단 그 글을 먼저 썼고, 그 뒤로 두 달 반 정도 쓴 것 같아요.

Q. 책에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반성도 많이 있습니다. 뼈아픈 기억을 되짚어야 했기 때문에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쓰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몇 분을 뵐 일이 있었어요. 당이 해산당하고 나서, (세월호 가족처럼) 고통을 겪고 계신 당사자 분들을 잘 못 뵙겠더라고요. 너무 죄송해서. 그러다가 작년 11월쯤에 기회가 있어서 뵀어요. 뵙고 나서 한참 몸살을 앓았어요. 그분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제가 너무 싫더라고요. ‘잘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건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이 책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많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Q.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각 장마다 있는 농민화가 박홍규 화백의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구성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박홍규 화백님의 ’무제’라는 그림,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을 다룬 장에 실린 그림을 책에 꼭 넣고 싶었어요. 농민들이 앉거나 서 있는 뒷모습을 그렸는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이 꽂힌 대상은 화폭에 등장하지 않아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백님의 설명은 "농민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안다"라는 말이었어요. 박 화백님도 농민이기 때문에 차마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태풍이 오고, 정부는 무관심하고, 그해 농사지은 것들을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한 해가 다 날아가는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 그림을 책에 싣고 싶다고 화백님께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면서, 당신이 그리신 그림 가운데 책과 맞는 것이 있으면 더 써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굉장히 짧은 기간에 네 작품 정도를 새로 그려주셨어요. 굉장히 마음이 찡하고 참 감사하더라고요. 책 편집도 한 달 정도로 굉장히 빨리 한 것인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 출판사에서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주셨다는 게 느껴져서 참 고마웠어요.

Q. 각 장마다 다른 책에서 찾은 시구나 감성적인 글귀들이 인용돼 있습니다. 전부 직접 읽고 찾은 것인가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시죠.

지금도 독서노트를 쓰는데요, 거기서 골라낸 글들이에요. (기자 : 얼마나 된 습관인가요?) 몇 년 안 됐어요. 삼사 년?(웃음) 평소에도 좋아하는 글귀는 1장 기업살인처벌법 부분에 실린 김해화 시인의 ’이렇게 나뉜 사랑-상사화’라는 시예요. 김해화 시인께서 철근 일을 지금도 하시는데, 당신이 일하시면서 느끼는 생생한 감성들이 날 것 그대로가 아닌, 한번 아픔을 겪으면서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으로 담겨 있어서 무척 감사하게 읽었어요. 시를 책을 싣도록 허락해주셔서 애독자로서 매우 영광이었어요.

 

 
"혁명을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 헌법 안의 진보만 생존 가능"

 

Q.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기업살인처벌법에 대한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은 너무 비극적이고, 한 순간도 연장돼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또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진보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해요.

Q. 기업살인법 부분을 보면 ’정명(正名)’이라는 단어와 함께 "진보정당이 만들어내는 대안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말을 만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시급하게 만들어내야 할 말, "말하지 못했던"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진보도 혁명이라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가 됐잖아요.(웃음) 인류의 역사는 혁명으로 진보해온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고 ’헌법 안의 진보’만을 생존 가능한 것으로 만들잖아요. 세상을 정말 근본에서 바꾸고 싶다면 그 말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저항권이고, 저항권이야말로 헌법의 핵심이고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민주주의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책에서 "평화를 이상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평화정책을 법안의 형식으로 제안하자면요?

아마 ’한반도 평화협정 비준동의안’쯤 되겠죠. 제가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한반도 4자 평화선언’에 대해 책에 한 꼭지를 넣으려다가 넣지 못했어요. 한반도에서 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 정전(停戰) 상태가 아니라 평화 상태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종전(終戰)선언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드린 바 있는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평화협정 이야기가 중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고 북-미 간에도 의논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그 이야기를 책에 쓰려다가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회의원 일을 하면서도 늘 고민스러웠는데요, 평화통일 문제를 다룰 때 국회의 논의만으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대외관계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정당 입장에서도 정책을 제안할 수는 있는데 당장 국회에서 뭔가를 통과시키기가 어려워서, 이 책에 하나의 장으로 담지는 못했어요. 다만 국회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분단의 올가미에 사로잡혀서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일만은 없게 하는 것은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차별금지법과 대체복무법에 담겨 있는 거죠. 이 정도라도 국회가 해준다면 분단에 발목 잡히지 않는 진전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비슷한 맥락에서 군데군데 국가보안법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철폐가 답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만약에 제가 ‘꼭 없애야 할 법 열한 가지’ 이런 책을 썼다면 국가보안법이 첫 번째로 들어가겠죠.(웃음)

Q. 통상절차법을 다룬 부분에서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국회 들어오기 전에 제가 기지촌 여성 문제부터 주한미군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뤘어요.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인권 문제들을 보게 됐는데 그때 가진 의문이 있어요. ’우리 정부가 아무리 나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적어도 외국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안에서는 투닥투닥 서로 싸워도 밖에 나가면 우리 식구가 좀 번듯하게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인 거죠.(웃음)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대외적 독립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국민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한미관계부터 우려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는 그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나가고 싶었어요. 특히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잖아요. 그 에너지가 성과를 남기기를 바랐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원하는 게 진보, 결국 남는 건 사랑"

 

Q. 책의 마지막은 ‘사랑’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어찌 보면 좀 뻔하고 뜬구름 같은 사랑이란 말을 마지막에 한 이유는 뭔가요?

유행가 가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죠.(웃음)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이 잘 안 잊히기 때문이었어요. 진보라는 것이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의 현실도 계속해서 바뀌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해법도 계속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사회를 좋게 바꾸고 싶고 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진보라면, 결국 고갱이로 남는 건 사랑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걸 표현한 겁니다.

Q. 최근 민중정치연합(인터뷰 이후 민중연합당으로 정식 창당)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이 목격됩니다.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을 이유로 “재건 통진당”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어떤 순간에는 민주노동당으로, 또는 통합진보당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모일 수 있는 거죠. 보수언론들에서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사람의 말할 권리와 모일 권리가 보장돼야 민주주의 사회인 건데요,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덕분이라는 것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Q. 과거 한 강연에서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추천하시는 걸 봤습니다. 당 해산 이후, 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당 해산 이후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봤어요. 네루다가 1945년에 칠레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광부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죠. 그 장면을 쓴 대목이 있어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 한 대목을 읽음)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노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에서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제조업 공장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여기저기 불꽃도 튀고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정신없어요. 비닐장갑도 끼고 목장갑도 두 겹씩 끼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그 장갑을 하나하나씩 벗고 손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짜릿해요.(웃음) 네루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다시 생각나서 많이 와닿았어요. 누군가에게 ‘맞아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군가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런 마음을 주는 대상이 되는 건 참 행복한 일이겠죠.

Q. 읽어주신 대목 중에서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라는 문장이 와닿았던 것은, 이 전 대표님 스스로가 ‘아픔을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득 드리고 싶은 질문인데요,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안 남아도 괜찮아요.(웃음) … 그게 욕심인 것 같아서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Q. 마지막 질문은 대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언제쯤이면 ’앞으로의 계획’을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준비가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북DB 기사 보기)

 

 
 

 

 

 

사진 : 신동석 · by 글/사진 최규화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이정희의 말, 말, 말

-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

- "(민중연합당을)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프리즘②]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

- 이정희는 누구? : 
혹시 그 이정희? 맞다. 그 이정희다. 2012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집권여당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라고 말하던 사람.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대표. 정당 해산 이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아까운 진보 정치인’과 ‘시대착오적 운동권 정치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좀 천천히 삽니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어떤 책을 냈나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진보를 복기하다>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과제로 추진됐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것, 또는 주목받게 되어 비난을 불러온 것”들 가운데, "진보의 대안을 담고 심어진 새싹"들을 골라 담았다. 참신하거나 근본적이거나 절박한 것들부터. 그렇다고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직시해야 할 잘못과 한계가 깊은 반성과 함께 담겨 있다. 어떤 독자는 이렇게 한 줄 서평을 남겼다. “딱 이정희 같다."

- 지금 왜 이정희를 만났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던 2014년 겨울부터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고 봄을 바라보기까지, 1년 2개월 동안 정치판과 언론에서 이정희는 사라졌다. 그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가 2월 20일 보도된 ‘주간경향’ 인터뷰다. 그리고 이번이 그녀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두 번째 인터뷰. 정치인 이정희를 ‘저자 이정희’로 만나, 그녀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뼈아픈 패배를 곱씹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남긴, 이정희식의 사죄를 따라 읽기 위해서였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진보정책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녀는 정치평론가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독자들 앞에서 서서 반성문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할 때도 대답을 하기 전에 한참씩 말을 멈추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 그 점을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말에는 분명한 사죄의 대상만큼이나 분명한 질타의 대상도 있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2월 20일, 진보당 해산 이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 머리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라는 대답을 읽었는데, 살아보려고 애쓰는 와중에 이 책을 쓰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제 것이 아니라서요. 진보정당이 해온 일들 가운데 의미 있다고 평가될 만한 일들이,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어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혼자 이것들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소멸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 정책들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있는데, 적어도 그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내가 가지게 된 것들만큼은 그분들께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Q. 그 주인공들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통상절차법에 대해 이 책에 썼는데요, 그 법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나서 만든 거였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영감을 준 촛불소녀와 촛불시민 같은 주인공들이 있죠.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은 온전히 농민들이 만들어내신 거라 그분들이 주인공이고요. 기업살인처벌법은 산재로 고통 받은, 지금도 위험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만든 법인 거죠. 그분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들께 "당신들의 목소리가 이런 법안을 만드는 데까지 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때쯤 되면 지역구 주민들께 의정보고서를 돌리기도 하고 정책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그런 일을 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해산 결정에 따라서 강제된 스스로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작년 10월 중순에, 갑자기 잊혀가는 정책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오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웃음) 책에는 맺음말로 들어가 있지만 일단 그 글을 먼저 썼고, 그 뒤로 두 달 반 정도 쓴 것 같아요.

Q. 책에 단순히 정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반성도 많이 있습니다. 뼈아픈 기억을 되짚어야 했기 때문에 집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쓰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몇 분을 뵐 일이 있었어요. 당이 해산당하고 나서, (세월호 가족처럼) 고통을 겪고 계신 당사자 분들을 잘 못 뵙겠더라고요. 너무 죄송해서. 그러다가 작년 11월쯤에 기회가 있어서 뵀어요. 뵙고 나서 한참 몸살을 앓았어요. 그분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제가 너무 싫더라고요. ‘잘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건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이 책을 내놓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많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Q.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각 장마다 있는 농민화가 박홍규 화백의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구성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신 건가요?

박홍규 화백님의 ’무제’라는 그림,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을 다룬 장에 실린 그림을 책에 꼭 넣고 싶었어요. 농민들이 앉거나 서 있는 뒷모습을 그렸는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이 꽂힌 대상은 화폭에 등장하지 않아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백님의 설명은 "농민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안다"라는 말이었어요. 박 화백님도 농민이기 때문에 차마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태풍이 오고, 정부는 무관심하고, 그해 농사지은 것들을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한 해가 다 날아가는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 그림을 책에 싣고 싶다고 화백님께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면서, 당신이 그리신 그림 가운데 책과 맞는 것이 있으면 더 써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굉장히 짧은 기간에 네 작품 정도를 새로 그려주셨어요. 굉장히 마음이 찡하고 참 감사하더라고요. 책 편집도 한 달 정도로 굉장히 빨리 한 것인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 출판사에서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주셨다는 게 느껴져서 참 고마웠어요.

Q. 각 장마다 다른 책에서 찾은 시구나 감성적인 글귀들이 인용돼 있습니다. 전부 직접 읽고 찾은 것인가요? 그중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시죠.

지금도 독서노트를 쓰는데요, 거기서 골라낸 글들이에요. (기자 : 얼마나 된 습관인가요?) 몇 년 안 됐어요. 삼사 년?(웃음) 평소에도 좋아하는 글귀는 1장 기업살인처벌법 부분에 실린 김해화 시인의 ’이렇게 나뉜 사랑-상사화’라는 시예요. 김해화 시인께서 철근 일을 지금도 하시는데, 당신이 일하시면서 느끼는 생생한 감성들이 날 것 그대로가 아닌, 한번 아픔을 겪으면서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으로 담겨 있어서 무척 감사하게 읽었어요. 시를 책을 싣도록 허락해주셔서 애독자로서 매우 영광이었어요.

 

 
"혁명을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 헌법 안의 진보만 생존 가능"

 

Q.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열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기업살인처벌법에 대한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은 너무 비극적이고, 한 순간도 연장돼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또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것.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가장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진보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해요.

Q. 기업살인법 부분을 보면 ’정명(正名)’이라는 단어와 함께 "진보정당이 만들어내는 대안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말을 만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시급하게 만들어내야 할 말, "말하지 못했던"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진보도 혁명이라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시대가 됐잖아요.(웃음) 인류의 역사는 혁명으로 진보해온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것을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고 ’헌법 안의 진보’만을 생존 가능한 것으로 만들잖아요. 세상을 정말 근본에서 바꾸고 싶다면 그 말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저항권이고, 저항권이야말로 헌법의 핵심이고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죠.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 태도예요. ’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요 정도만 말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을 벗어나서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민주주의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책에서 "평화를 이상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평화정책을 법안의 형식으로 제안하자면요?

아마 ’한반도 평화협정 비준동의안’쯤 되겠죠. 제가 제안한 정책 가운데 ‘한반도 4자 평화선언’에 대해 책에 한 꼭지를 넣으려다가 넣지 못했어요. 한반도에서 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 정전(停戰) 상태가 아니라 평화 상태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종전(終戰)선언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드린 바 있는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평화협정 이야기가 중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고 북-미 간에도 의논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그 이야기를 책에 쓰려다가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회의원 일을 하면서도 늘 고민스러웠는데요, 평화통일 문제를 다룰 때 국회의 논의만으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대외관계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정당 입장에서도 정책을 제안할 수는 있는데 당장 국회에서 뭔가를 통과시키기가 어려워서, 이 책에 하나의 장으로 담지는 못했어요. 다만 국회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분단의 올가미에 사로잡혀서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일만은 없게 하는 것은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차별금지법과 대체복무법에 담겨 있는 거죠. 이 정도라도 국회가 해준다면 분단에 발목 잡히지 않는 진전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비슷한 맥락에서 군데군데 국가보안법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철폐가 답이라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만약에 제가 ‘꼭 없애야 할 법 열한 가지’ 이런 책을 썼다면 국가보안법이 첫 번째로 들어가겠죠.(웃음)

Q. 통상절차법을 다룬 부분에서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국회 들어오기 전에 제가 기지촌 여성 문제부터 주한미군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뤘어요.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인권 문제들을 보게 됐는데 그때 가진 의문이 있어요. ’우리 정부가 아무리 나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적어도 외국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안에서는 투닥투닥 서로 싸워도 밖에 나가면 우리 식구가 좀 번듯하게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인 거죠.(웃음)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대외적 독립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국민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한미관계부터 우려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는 그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나가고 싶었어요. 특히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잖아요. 그 에너지가 성과를 남기기를 바랐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원하는 게 진보, 결국 남는 건 사랑"

 

Q. 책의 마지막은 ‘사랑’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어찌 보면 좀 뻔하고 뜬구름 같은 사랑이란 말을 마지막에 한 이유는 뭔가요?

유행가 가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죠.(웃음)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이 잘 안 잊히기 때문이었어요. 진보라는 것이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의 현실도 계속해서 바뀌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해법도 계속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사회를 좋게 바꾸고 싶고 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진보라면, 결국 고갱이로 남는 건 사랑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걸 표현한 겁니다.

Q. 최근 민중정치연합(인터뷰 이후 민중연합당으로 정식 창당)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이 목격됩니다.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을 이유로 “재건 통진당”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어떤 순간에는 민주노동당으로, 또는 통합진보당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모일 수 있는 거죠. 보수언론들에서 ‘통합진보당의 재판(再版) 아니냐’ 얘기하는 건,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은 영영 정치적 결사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정치적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사람의 말할 권리와 모일 권리가 보장돼야 민주주의 사회인 건데요,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덕분이라는 것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Q. 과거 한 강연에서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추천하시는 걸 봤습니다. 당 해산 이후, 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당 해산 이후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봤어요. 네루다가 1945년에 칠레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광부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니죠. 그 장면을 쓴 대목이 있어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 한 대목을 읽음)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노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8장 ‘암담한 조국’ 중에서

제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제조업 공장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여기저기 불꽃도 튀고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정신없어요. 비닐장갑도 끼고 목장갑도 두 겹씩 끼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그 장갑을 하나하나씩 벗고 손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짜릿해요.(웃음) 네루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다시 생각나서 많이 와닿았어요. 누군가에게 ‘맞아 나는 외롭지 않아. 누군가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런 마음을 주는 대상이 되는 건 참 행복한 일이겠죠.

Q. 읽어주신 대목 중에서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라는 문장이 와닿았던 것은, 이 전 대표님 스스로가 ‘아픔을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득 드리고 싶은 질문인데요,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안 남아도 괜찮아요.(웃음) … 그게 욕심인 것 같아서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Q. 마지막 질문은 대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언제쯤이면 ’앞으로의 계획’을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준비가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북DB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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