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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봄소풍은 세월호 유족 곁으로

 

[아이들은 나의 스승 61] 세월호가 빠르게 잊히는 현실...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16.03.20 16:36l최종 업데이트 16.03.20 17:5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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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기억과 약속의 305일' 캠페인 일정표 매일 세월호 희생자 한 명씩 얼굴과 사연을 공유하며, 끝까지 기억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올해 말 12월 3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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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SNS 앱)의 알람 소리와 함께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3월 15일) 스마트폰 화면에는 몸이 불편한 아빠를 위해 간호사가 되겠다던 단원고 2학년 1반 김영경양이 눈인사를 건넨다. 아래 적힌 사연을 읽기도 전,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만 봐도 울컥해진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상주모임(아래 상주모임)'에서는 지금 '세월호, 기억과 약속의 305일'이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과 인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님을 함께 기억하자는 의미로 새로이 마련한 행사다. 지난 3월 1일을 시작으로 올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총 305일 동안 이어갈 예정이다. 밴드나 단체 카톡방에 이름과 얼굴, 사연 등을 공유하며 진실 규명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또 하나의 다짐이다.

첫째 날, 아이들과 함께 아직 배 안에 남아있는 고창석 선생님의 가슴 먹먹한 사연을 시작으로 9일간 미수습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후 2학년 1반부터 수업시간 출석을 부르듯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호명되고 있다. 하루에 한 명씩, 고작 한 학급 아이들을 기억하는 데만도 얼추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니, 얼마나 큰 대형 참사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촛불을 밝히는 그들

이 행사를 기획한 상주모임은 2014년 11월 15일부터 지금껏 천일순례도 이어가고 있다. 천일을 헤아려 보면 내년 여름인 2017년 8월 11일까지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고, 돈보다 사람을, 이윤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광주 시내 마을 곳곳을 걷고 있다. 우선 이곳 광주에서부터 안전한 마을 만들기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별로 추모와 기억을 위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달 말이면 어느덧 100회째를 맞는다. 이젠 부모와 함께 고사리 손으로 촛불을 들고 선 아이들의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면 이렇듯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었을 테다.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며 다짐했던 '잊지 않겠다'는, '행동하겠다'는 약속이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와 연대의 힘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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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회째를 맞는 마을 촛불모임 광주의 마을 곳곳에서는 매주 한 차례씩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자발적인 촛불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일곡마을 촛불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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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순례 홍보물 내달 2일, 안산으로 떠나는 천일순례 참가자를 모집하는 홍보물. 내용 중 '세월호력 718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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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팽목항을 찾아가고, 내달 2일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즈음해 안산을 찾아 천일순례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남남처럼 지냈을 상주모임 회원들은 어느덧 그 수가 400명을 넘어섰고, 이제는 웬만한 시민단체를 능가하는 마을 자치와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호가 가져온 작은 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곳 남녘의 훈훈한 온기와는 달리, 단원고가 자리한 안산의 공기는 몹시 차가운 것 같다. 듣자니까 아이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교실이 조만간 '깨끗하게' 치워질 거라고 한다. 교실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원고에 배정된 신입생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그 말에 유가족들의 피맺힌 가슴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린다.

급기야 화랑유원지에 있는 정부 합동분향소마저 머지않아 철거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들린다. 모르긴 해도, 분향소를 찾는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일 게다. 분향소를 철거하자고 주장하려면, 세월호 참사의 완전한 진실 규명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노란 리본 보고 '이게 뭐냐' 묻는 학생...

정부와 여당은 수백만 국민들이 서명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그토록 몽니를 부리더니, 그나마 '차포 다 떼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조차 대놓고 방해하고 있다. 유가족들 앞에서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났고, 흐르는 세월을 무기 삼아 되레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들이 지쳐 나자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무기력한 야당 정치인들도 도긴개긴이다. 한때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던 그들 역시 진실 규명이라는 당위 앞에서 어느덧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공천과 당선에 목매단 후보자들의 기억 속에는 이미 세월호는 지워지고 없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2주기의 사흘 전인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선거가 끝나면, 과연 우리 정치는 유가족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그런 섣부른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당장 언론에서 4.13 선거 결과를 놓고 몇 날 며칠 경마 중계하듯 보도하게 될 경우,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외려 세월호 참사 2주기라는 사실마저 묻히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 땅의 주류 언론들은 애초 유가족들 '편'이 아니었다.

점심시간 교정을 산책하던 한 고1 신입생이 가로수에 매단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냐고. 정말 몰라서 물었을까 싶다가도, 나 역시 지난 1년 반이 넘게 그 자리에 매달려 있던 노란 리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음을 반성하게 됐다. '계기 수업'을 통해 각자 리본 위에 다짐을 적고, 하나하나 매달았던 선배들의 '진심'을 그가 느낄 수 없는 건, 바로 그러한 망각 때문일 테다.

기성세대들은 대한민국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며 아이들 앞에서 호언장담했지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허언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밝혀진 것 하나 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가 빠르게 잊히는 현실은 되레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돌이켜보니 "이게 뭐냐"는 그의 외마디 질문은, 그것이 세월호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교정에 천여 개의 노란 리본을 매달면 뭐하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라는 푸념이자 기성세대를 향한 질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4월 16일 역시 1년에 한 번씩 하루 잠시 기억되고 마는 그저 그런 '슬픈 날'로 전락하게 되는 것일까.

그 아이와 헤어진 후 간만에 노란 리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리본마다 모서리가 헤지고, 펜으로 쓴 글귀는 어느덧 거의 지워져 그때 아이들의 다짐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오랫동안 비바람 맞아 희미해진 리본 위의 글씨처럼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도 그렇게 옅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순간, 더 지워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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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의 빛바랜 노란 리본 매단 지 1년 반이 지나 빛바랜 노란 리본은 다짐을 적은 글귀마저 지워져 읽을 수조차 없다. 희미해져 가는 세월호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이렇지 않을까. 안산으로의 봄 소풍을 기획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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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으로의 봄 소풍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안산으로 봄 소풍을 떠나기로 했다. 우선 고등학교 2학년 5개 학급의 담임교사들이 이심전심 뜻을 모았다. 학교 교실을 벗어나 신나는 하루를 꿈꿨던 아이들도 기꺼이 함께하기로 했다. 벌써 가슴에 달 노란 리본을 구하러 다니는가 하면, 하루짜리 짧은 방문이지만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대견스럽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사실 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소풍이나 체험학습 등 야외 활동을 할 경우 학년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걸 가급적 금하고 있다. 물론, 소규모일수록 야외 활동의 교육적 효과가 커서 오래전부터 학교마다 학급별로 주제를 정해 따로 가는 것이 일반화됐다. 다만,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는 사항이 됐다. 

그럼에도 굳이 교육청의 '지침'까지 거스르며 안산에 가려는 이유는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편'이 아직 많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발길 끊긴 황량한 분향소에 여러 대의 대형버스가 멈춰서고 200여 명의 또래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 동시에 분향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유가족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다. 그것도 천릿길 광주에서 온 아이들이라면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입시 공부에 매몰돼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는 아이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분향소에서 하늘의 별이 된 '선배'들의 영정 앞에 서면, 누구든 예외 없이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거듭 다짐하게 될 테니 말이다. 수업시간 이번 소풍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수능이 끝나야 세월호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던 밉상 아이조차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학교마다 아직 봄 소풍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조금 멀고 불편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안산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그 어느 곳, 어떤 주제보다 교육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 확신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이라면, 올봄 안산보다 더 좋은 소풍 장소는 없을 것이다.

매화를 시작으로 조만간 개나리, 진달래 등 봄꽃들이 남풍을 타고 빠르게 북상할 것이다. 그 훈훈한 바람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끝까지 기억하려는 우리들의 마음을 실어 보내듯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안산으로 길을 떠나보자. 고백하건대,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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